"2년간 버티고, 총도 제대로 지급 못 받고 완전히 코로나 전쟁에서 싸워왔는데 정부에서는 뭐 하나 지원해준 게 없다. 우린 결국 총알받이로 끝나는 거다."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정부가 도입한 방역패스(접종증명·음성확인)와 영업제한 규제를 철회하라며 자영업자와 소상공인들이 단체행동에 나섰다.
코로나19 방역조치 강화에 따른 후속 조치로 정부가 소상공인·자영업자에게 1인당 100만원의 방역지원금을 지원하기로 했지만 소상공인들은 실제 손해를 보전하기엔 '새발의 피'라고 입을 모았다. '대목'인 연말 장사가 막혔다는 점도 소상공인들의 분노를 키웠다.
22일 오후 3시 서울 종로구 광화문 시민열린마당에서는 코로나19 대응 전국자영업자비상대책위원회(비대위)' 주최로 자영업자 총궐기가 열렸다. 전국 각지에서 올라온 자영업자들은 정부에 △방역패스 철회 △영업제한 철폐 △소상공인 지원금 확대 △손실보상법 대상 확대 △근로기준법 5인 미만 확대 적용 반대를 요구했다.
집회에 참석한 PC방 업주 이성태(48)씨는 "지금 빚이 엄청나다"며 "빚으로 살고 있는데 자영업자들은 정상적인 삶을 살고 있지 않다"라고 토로했다. 이씨는 "매달 440만 원의 임대료와 200만 원에 달하는 전기세 등 고정 지출만 2천원 정도인데 지원금 100만 원은 말이 안 된다"라고 했다.
정부는 방역 조치 강화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 320만 명에 대해 손실보상금과 별개로 1인당 100만 원씩을 연내 지원한다. 방역물품 구매비용 최대 10만 원은 이르면 오는 29일부터 지원할 예정이다.
집회 참석을 위해 부산에서 올라왔다는 카페 사장 50대 이모씨는 "2년 동안 K-방역 자화자찬했지만 이게 다 자영업자 희생으로 이뤄지는 것 아니냐. 나도 매장이 두 개였는데 한 개는 폐업했다"며 "코로나 동안 돈 하나도 못 벌고 적자 보고 대출을 버티라고 하면 월급쟁이들은 견딜 수 있겠냐"고 했다.
이어 "정부는 영업 제한에 방역 패스라는 것까지 이중으로 안겨줬다"며 "그동안 속고 또 속아 여기까지 달려왔다. 정부 정책에 대한 신뢰감이 바닥이 되니 이제는 견딜 수 없다"고 울분을 토했다.
빚은 늘어가지만 잇따른 거리두기로 경영난이 회복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는 것도 문제다. 경영난에 몰린 자영업자 중 상당수가 대출을 통해 위기를 넘기려 한다는 통계도 있다. 올해 3분기 자영업자가 은행에서 빌린 돈이 11조 원 이상 늘어나면서 역대 두 번째 높은 증가폭을 기록했다.
폐업을 희망하는 자영업자 수가 문재인 정부 임기 4년 동안 9배 가까이 증가했다는 조사 결과도 나왔다.
인천에서 파티룸을 운영한다는 고모(35)씨는 "위드 코로나가 시작되고 12월 예약을 꽉차게 받았었다. 그러다 방역패스가 들어오고 4인으로 제한되면서 이제는 예약이 없다"고 무겁게 입을 열었다.
고씨는 "파티룸은 연말 장사로 1년을 산다"며 "예약이 들어왔을 땐 이제 월세 걱정 안 해도 되겠다고 했는데, 다시 적자"라고 속상해했다.
지원금에 대해서도 "차라리 안 받고 싶다. 도움이 안 되는데 돈 안 받고 장사하고 싶다"라고 답했다.
오세희 소상공인연합회장은 이날 단상에 올라 "오늘 말한 것들이 이뤄지지 않으면 강력히 대응할 것"이라며 "(사회적 거리두기가 종료되는) 1월2일 방역 강화를 예정대로 종료하지 않으면 전국에서 동시다발로 행동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소상공인 지원 특별위원장을 맡는 이성만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참석해 "코로나 와중에도 대한민국이 다른 나라에 뒤지지 않고 발전할 수 있었던 건 소상공인과 국민들이 똘똘 뭉쳤기 때문"이라고 발언하자 주변 자영업자들은 "더는 속지 않는다", "말하지 말고 내려와라" 등 날 선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해도 해도 이런 일이 있나" 청량리농수산물시장 화재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연말 자영업자들에게 악재(惡災)가 이어졌다. 지난 19일 새벽 서울 동대문구 청량리농수산물시장에서 불이나 점포 17개, 주택 3채, 창고 2곳이 재산피해를 봤다.
22일 찾은 청량리농수산물시장은 화마가 할퀸 흔적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소방 출입 통제선 안쪽으로 잿가루에 덮인 무와 배추 등이 굴러다녔고 매캐한 냄새도 여전했다. 시장 내부까지 번진 불길에 가게 지붕은 내려앉았고 유리창은 깨져있었다.
마늘가게 주인 이모(70)씨는 "볼수록 속상하다. 해도 해도 이런 일이 어디있냐. 울고 싶다"라며 "한 포대에 17만 원하는 마늘을 20포대 이상 버리게 생겼다"라고 토로했다.
이어 "올해는 코로나19 때문에 안 그래도 힘들었는데 속 터져 죽겠다"고 말했다. 이씨는 불길이 휩쓴 가게 내부에는 들어갈 엄두고 못내고 시장거리에 나와 장사를 이어가고 있었다.
장을 보러 온 손님들도 불난 흔적을 보면서 "다 탔다. 어떡하냐"하며 안타까워했다.
잿더미 속에서 건질만 한 물건을 찾아 연신 닦아내는 상인들도 있었다. 가족들을 동원해 물품을 닦고 있던 식자재 업주 서모(61)씨는 "뭐라도 살려볼까 하는데 참기름부터 간장, 된장 비싼 식자재가 다 탔다"며 "연말이라 물건도 많이 들여놨는데 보상이라도 될까 싶다"고 말했다.
서씨는 유독 힘들었던 한 해였다고도 했다. 그는 "식당에 식자재 납품하는 일을 하는데 올해 코로나로 자영업자들도 어려워서 주문이 안들어왔다. 그런데 이런 일 생겼다"며 답답해했다.
인근 상인 남모(58)씨도 "우리 가게는 화재 피해는 없었지만 올해 코로나로 힘들었는데 불난 것을 보니 갑갑하다"고 토로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