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식당 이용도 쩔쩔매는 고령층…코로나 '디지털 디바이드' 심화

'디지털 디바이드'…예방접종 종이 들고 다니는 노인들
전자기기 사용 서툴러…기계 설치했지만 와이파이 연결할 줄 몰라
비대면 업무 탓에 은행 줄어…"노인들, 은행 이용할 권리 박탈"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만난 유모(77) 할아버지는 백신을 3차까지 접종했다는 걸 증명하기 위해 '종이 증명서'를 들고 다닌다. 임민정 기자
"휴대폰으로 하는 건 모르겠고 병원에서 준 종이가 있어요. 젊은 사람들이 자주 가는 식당은 잘 안 가요."


20일 서울 종로구 탑골공원에서 CBS노컷뉴스와 만난 유모(77)씨는 백신을 3차까지 접종했다는 사실을 증명하기 위해 종이 증명서를 들고 다닌다고 밝혔다. 유씨의 가방엔 마스크 5장과 '예방 접종 증명서'가 들어있었다. 식당에 갈 때마다 펼치지만 스마트폰 QR코드가 주로 쓰이는 음식점은 왠지 가기가 꺼려진다.

정부가 '방역패스'(접종증명서·음성확인서)를 확대한 가운데 전자 기기 사용에 미숙한 노인들이 카페, 식당 등을 이용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터넷 이용이 어렵거나 스마트폰을 사용하지 않는 디지털 소외계층이 사회와 단절되는 '디지털 디바이드(정보 격차)' 현상이 심화하고 있다.

방역당국에 따르면 방역패스로 사용이 가능한 것은 질병관리청 COOV(쿠브)앱이나 전자출입명부(네이버, 카카오, 토스)의 전자 증명서, 신분증에 붙인 예방접종 스티커, 접종기관에서 받은 종이 접종증명서 등이다. 정부는 백신접종 이력과 마찬가지로 PCR 검사 음성확인서도 '방역패스'로 인정한다.

하지만 대부분 업장에서 백신패스 증명 방법으로 스마트폰 QR코드를 사용하는 탓에 스마트폰 이용이 서툰 노인들은 백신을 접종 여부를 증명할 방법이 막막한 실정이다.

QR코드 접근성이 떨어지는 노인들은 주민센터나 병원의 도움을 받지 않고는 방역패스 이용이 어려운 경우가 많다고 토로했다.

서울 종로구 낙원상가 인근 식당에서 만난 서모(71)씨는 "식당 들어올 때 QR코드를 보여줬다"면서도 "(종이)증명서를 들고 핸드폰 대리점을 가니 직원이 (전자 증명서 발급을) 도와줬다"고 말했다.

곁에 있던 일행은 "나도 전자증명서 등록은 딸이 해줬다"며 "3차까지 백신을 맞았으면 질병관리본부에서 자동으로 다 발급해주는 줄 알았는데, 알아서 해야 하니 쉽지 않다"라고 토로했다.

종로3가역에서 만난 60대 A씨는 "휴대폰으로 하는 게 있다는데 오늘 주민센터에 신청하러 간다"며 "백신 접종을 한 병원에도 부탁해볼까 했지만, 간호사가 1명 뿐이라 바빠 보여 부탁을 못 했다"고 밝혔다.

전자기기 사용이 서툰 자영업자들도 방역패스가 골칫거리다. 종로구 탑골공원 인근의 한 음식점. 점심시간이 되자 하나둘씩 손님이 들어왔지만, QR코드를 찍는 이들은 없었다. 가게 한켠에 자리한 기기는 와이파이 연결이 되지 않아 먹통인 상태였다.

사장 김모(74)씨는 "아들이 와서 기계 설치를 해줬는데 나는 전혀 사용할 줄 모른다"며 "나이 먹은 사람은 아무것도 모른다"라고 말했다.

이어 "주로 한명씩 오는 손님이 많아 방역패스 확인은 넘어간다"며 "손님들이 두세명 오면 접종 확인서 종이나 주민등록증 뒷면을 확인한다"고 했다.

종로 3가에서 밥집을 운영하는 전모(74)씨는 스마트폰을 이용한 방역패스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노인들 중엔 휴대전화도 없는 사람도 많다"며 "QR코드 찍는다고 우리가 핸드폰 구해다 줄 것도 아니지 않나"고 되물었다. 임민정 기자

종로3가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전모(74)씨 역시 스마트폰을 이용한 방역패스 확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노인들 중엔 휴대전화도 없는 사람도 많다"며 "QR코드 찍는다고 우리가 핸드폰 구해다 줄 것도 아니지 않나"고 되물었다.

그는 또 "노인들은 QR코드 찍을 줄도 모른다"며 "우리가 QR코드 찍는 거 알려 주느니 차라리 밥 한 그릇 더 팔고 그 사람은 안 받는 게 낫다"라고 답답해했다.

그러면서 "방역패스 전에는 수기 명부를 작성했는데 손님 중에 휴대전화 없는 사람도 있어 애를 먹었다"며 "백신을 맞았는데 명부를 뭐하러 쓰냐고 성질을 내는 사람도 더러 있었다"고 말했다.


'비대면'으로 줄어드는 은행 점포…디지털 소외계층 또 양산



코로나19로 인한 디지털 소외 현상은 이뿐만이 아니다. 비대면 업무량이 늘면서 은행 각 지점이 점포 수를 줄여나가고 있어 인터넷 뱅킹 등 휴대전화를 활용한 금융에 익숙지 않은 계층은 불편을 호소하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로 신한은행은 내년 2월 서울 노원구 월계동 지점을 폐쇄할 계획인데, 최근 주민들이 집단으로 영업점 폐쇄에 반대하고 나섰다. 특히 노인들은 은행을 이용할 권리를 박탈당했다며 '금융 소외'를 호소했다.

16일 오전 서울 중구 신한은행 본점 앞에서 열린 '신한은행 월계동지점 폐쇄 규탄 주민 기자회견' 참석자들이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황진환 기자
월계동 신한은행을 자주 이용한다는 80대 노인 A씨는 "우리는 은행이 없어지면 안된다. 노인들은 디지털 기기를 다루지도 못한다"며 "특히 여기 주변 상가에 국민은행도 없어진다는 소식을 들었다. 동네에 있는 은행이 거의 없어지는 격이라 걱정이 많다"고 말했다.

그는 "특히 이곳 주변 아파트 주민들 절반이 다 노인이다"며 "현금자동입출금기(ATM)를 사용할 줄 아는 사람도 있지만 사용에 어려운 노인도 많아서 직원들 도움을 많이 받는 상황이었다"고 덧붙였다.

주민대책위원회 김진숙 간사는 통화에서 "폐지 예정 점포는 특히 어르신 비중이 높은 지역이고 어르신 중 많은 분이 아직도 종이 통장이나 현금 갖고 다닌다"며 "세금이나 공과금도 직접 은행 가서 처리하기 때문에 점포 폐쇄가 어르신들에겐 치명적"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특히 ATM기를 이용 못 하는 어르신들이 많아 청원경찰에 늘 도움 요청을 한다"며 "그런 상황에서 키오스크와 같은 기기들은 더 이용에 어려움을 겪을 것이고 시간이 오래 걸릴 텐데 노인분들은 더욱 위촉되고 소외될 것"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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