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직장 동료가 주식 투자에 성공했다는 소식을 듣고 "돈을 빌려달라"고 요구했다가 거절 당하자 돈을 뺏기 위해 잔인하게 살해한 이른바 '마포 오피스텔 살인사건'의 피의자가 범행 두 달 전부터 치밀하게 계획을 세웠던 것으로 드러났다.
그는 인터넷으로 '살인 후 해외도피', '정화조 사체유기' 등을 검색하는가 하면, 흉기와 시신을 옮길 차량을 미리 구입했다. 범행 직후엔 피해자의 주식을 팔아 챙겼고, 사체를 정화조에 유기하기도 했다.
이 같은 잔혹 범죄에 검찰은 '사형'을 구형했지만, 1심 법원은 징역 40년을 선고하는 데 그쳤다. 일각에서는 "항소심에서 형량이 더욱 줄어들 것"이라며 "법정형보다 아래인 작량감경상의 양형기준을 적용하는 관행이 지나치게 범죄자들에게 관대하게 작용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전기충격기 기절' 등 범행수법 검색하고 시신 옮길 중고차량 구매
서울서부지법 형사합의11부(문병찬 부장판사)는 강도살인·사체유기·방실침입·방실침입미수·재물은닉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진 서모(41)씨에 대해 지난 15일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앞서 검찰은 서씨에게 사형을 내려달라고 구형한 바 있다.법원에 따르면 서씨는 운영하던 인형 판매 사업이 3년 전부터 경영난에 빠지자 여러 금융기관으로부터 총 4억 5천만원 상당의 빚을 지게 됐다. 그러던 중 과거 서씨가 근무하던 ㄱ증권회사의 입사 동기로 14년 전부터 알고 지내던 피해자 A씨가 최근 주식 투자에 성공해 30~40억원 상당의 돈을 번 사실을 알게 됐다.
이에 서씨는 A씨에게 연락해 돈을 빌려달라고 수차례 부탁했으나 거절 당했다. 기존 채무를 신규 대출로 돌려막기 하는 등 채무 변제에 대한 압박을 받던 서씨는 A씨를 살해하고 돈을 뺏은 뒤 해외로 도피하기로 마음먹었다.
서씨는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다. 범행 두 달 전인 지난 5월 18일쯤부터 인터넷을 통해 '전기충격기 기절', '수갑' 등을 검색하는가 하면, 전기충격기와 망치, 흉기 등 범행 도구와 사체를 운반하는데 사용할 중고 스타렉스 차량을 구입하기도 했다.
또 A씨의 증권 계좌에 있는 돈을 본인의 계좌로 이체하기 위해 '증권계좌 비밀번호 초기화 방법', '실종신고 이후 계좌사용' 등을 검색했고, '살인 형량', '살인 후 해외도피', '돈 때문에 살인', '파나마 이민 절차', '정화조 사체유기' 등을 검색하면서 살인 및 사체 유기 후 해외 도피를 계획했다.
서씨는 범행을 계획·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수차례 A씨에게 연락해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하기도 했다. 서씨는 7월 12일 구입해 놓은 범행 도구와 피해자를 옮길 수레 등을 스타렉스 차량에 싣고 경산시에서 A씨의 사무실이 있는 서울시 마포구로 향했다.
사무실 침입 핑계 만들려고 소지품 두고와…락스·도배로 흔적 지우기도
오후 5시쯤 도착한 서씨는 비어있는 사무실에 몰래 침입하려고 했다. 과거 A씨와 함께 해당 사무실에 방문하면서 알게 된 비밀번호를 이용하려고 한 것이다. 하지만 A씨가 비밀번호를 변경해 놓는 바람에 들어가지 못했다고 한다.그러자 서씨는 사무실에 들어갈 명분을 만들기 위해 오피스텔 출입문 앞에 본인의 '목걸이형 USB'를 놓아뒀다. 다음 날 A씨가 이를 발견한 뒤 본인에게 연락하도록 유도하기 위함이었다. 실제 다음 날 출근하면서 USB를 발견한 A씨는 서씨에게 연락해 "USB를 가지고 가라"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이날 점심시간이 끝날 때쯤 서씨는 USB를 찾으러 온 것처럼 위장한 뒤 A씨의 사무실에 침입했다. 서씨는 그 자리에서 또 돈을 빌려 달라고 부탁했으나 거절 당했다.
그러자 서씨는 미리 준비한 전기충격기를 이용해 뒤돌아 앉아 있는 상태의 피해자를 기절시키려고 했다. 하지만 피해자가 기절하지 않고 저항하자 미리 준비한 흉기들을 수차례 휘둘러 살해했다.
범행 직후 서씨는 미리 준비한 락스를 뿌려 혈흔을 지우고, 시트지를 이용해 흔적을 가리는 등 범행 현장을 정리했다. 또 피해자의 컴퓨터를 이용해 피해자의 주식 계좌에 접속한 뒤 약 30회에 걸쳐 10억 원 상당의 주식을 매도했다.
이 과정에서 서씨는 A씨가 살아있는 것처럼 가장하기 위해 대리운전 기사를 불러 A씨의 승용차를 운전해 대구의 한 지역으로 이동하게 하기도 했다.
서씨는 A씨의 휴대전화·노트북·컴퓨터 본체·신분증·카드·보안카드 등을 챙긴 후 시신을 미리 준비한 여행용 캐리어에 넣고 스타렉스 화물차에 실은 뒤 본인이 운영하는 경산시 인형 물품 창고로 운반했다. 서씨는 시신과 범행 도구 등을 모두 정화조 안에 넣고 뚜껑을 닫았다.
40년 선고한 法 "돈 빌려주면 범행 안 했을 수도…확정적 목적은 없어"
서씨는 A씨의 아내가 실종 신고를 하면서 범행 이틀 만에 경찰에 붙잡혔다. 조사 결과 서씨는 과거에도 A씨로부터 여러 금전적 도움을 받아 온 것으로 드러났다. 본인에게 호의를 베풀어줬던 입사 동기에게 끔찍한 범죄를 저지른 것이다.하지만 1심 재판부는 서씨에게 징역 40년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서씨가 두 달 전부터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한 점, 경제적 이익을 얻을 목적으로 대체 불가능한 존귀한 사람의 생명을 수단으로 삼은 반인륜적인 범죄라는 점, 사체 유기로 피해자를 오욕한 점 등을 모두 인정했다.
재판부는 또 "한창 젊은 나이의 피해자를 잃게 된 유가족들의 슬픔과 고통, 이 사건 범행의 의미를 이해하지도 못하는 피해자의 어린 자녀가 향후 성장 과정에서 마주할 충격과 상처는 쉽게 짐작조차 되지 않는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면서도 "피고인이 피해자 사무실에 들어간 후 30분 정도 머물다가 살인 범행에 이른 점에 비춰 피고인은 피해자를 살해하겠다는 확정적인 목적을 가지고 있었다기보다 피해자가 자신의 금전 차용 요구를 받아주면 살해하지 않을 마음도 한편에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고 판단했다.
이어 "강도살인 범행을 통해 실질적으로 취득한 이익도 미미하다. 피고인에 대한 범죄전력, 청구 전 조사서에 의하면 피고인이 재범할 위험성이 크다거나 교화의 가능성이 없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또 "구속되기 이전까지 가족들과 친밀한 유대관계를 형성하고 있었던 점 등을 고려하면 피고인의 생명을 박탈하는 것이 정당화 될 수 있는 특별한 사정이 있다고 누구라도 인정할 만한 객관적인 사정이 분명히 존재한다거나, 피고인을 사회로부터 영구히 격리시키는 것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이에 일각에서는 법원이 범죄자들에게 양형기준을 너무 관대하게 적용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이번 사건의 경우 '진지한 반성' 외에는 특별히 참작할만한 유리한 양형사유가 없음에도 '작량감경'을 통해 선고형의 범위를 낮췄다"고 비판했다.
작량감경이란 범죄의 정상에 참작할 만한 사유가 있을 때 법관의 재량으로 이뤄지는 형의 감경을 말한다. 서씨에게 적용된 강도살인죄의 경우 법정형은 '사형 또는 무기'가 전부다. 여기서 '무기'를 작량감경 하면 10~50년 형 사이로 선고할 수 있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40년 자체도 이례적으로 높은 형이라고 볼 수는 있다"며 "아마 2~3심을 거치다 보면 형량이 25~30년 정도로 줄어들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법원이 중범죄에 있어서는 일반적으로 법정형보다 아래인 작량감경상의 양형기준을 적용하는 관행이 있다"며 "이러한 관행이 안 그래도 다른 나라에 비해 법정형 자체가 낮다고 비판을 받는 한국에서 더욱 법정형을 형해화하고 있으며, 범죄자들에게 지나치게 관대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