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터의 차원을 뛰어넘은 스테판 커리, 3점슛의 왕 되기까지

스테판 커리의 통산 2974번째 3점슛. 연합뉴스


2007-2008시즌 미국대학체육협회(NCAA) 남자농구 1부리그의 데이비슨 대학에는 간판슈터 스테판 커리가 있었고 그의 곁에는 안정된 포인트가드 제이슨 리차즈가 있었다.

커리는 그해 NCAA 64강 토너먼트 최고의 신데렐라였다. 4경기 평균 32.0득점, 3점슛 성공률 44.2%(경기당 5.8개 성공)를 기록하며 약체라 평가받았던 팀을 8강에 올려놓았다.

당시 커리는 '레지 밀러(2008년 기준 NBA 통산 3점슛 1위 기록 보유자, 레이 앨런이 2011년 2월 새로운 기록 보유자가 됐다)'에 가까웠다.

직접 드리블을 하다가 과감하게 던지는 3점슛도 있었지만 시즌 평균 어시스트 8.1개를 기록한 4학년 가드 리차즈와 몸을 아끼지 않는 스크리너들의 도움을 많이 받았다.

2학년이었던 커리의 주가는 치솟았다. 그런데 그는 놀라운 결정을 한다. 미국프로농구(NBA) 조기 진출 대신 3학년 잔류를 선택한 것이다.

NCAA 선수들은 자신이 NBA 신인드래프트에 뽑힐 것 같다는 정보를 입수하면 대부분 조기 진출을 선택한다. 커리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커리가 대학에 잔류한 이유는 분명했다. 포인트가드로서 기량을 발전시키고 싶다는 의지를 나타낸 것이다.

커리의 신장은 191cm. 지금에 비해 포지션 파괴가 덜 진행됐던 당시 NBA에서는 슈팅가드로 뛰기에는 다소 작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었다. 비슷한 신장의 NCAA 최정상급 슈터들이 NBA에 도전했다가 '트위너'라는 소리를 들으며 실패한 사례는 너무나 많았다.

커리는 2008-2009시즌 포인트가드로 변신했다. 직접 드리블을 하면서 자신과 동료들의 공격 기회를 만드는 역할을 했다. 전반적인 슛 효율은 1,2학년 때에 비해 떨어졌다. 기존 역할과 달랐고 상대의 집중 수비도 강해졌기 때문이다.

소득도 있었다. 3학년 때 기록한 평균 어시스트는 2학년 시절의 2.9개보다 2배 가까이 많아진 5.6개였다.

하지만 2009년 NBA 신인드래프트 당시 커리를 정통 포인트가드로 보는 시선은 많지 않았다.

그럼에도 커리의 주가는 높았다. 스타성이 컸기 때문이다. 전체 8순위 지명권을 확보한 뉴욕 닉스가 커리를 주목하고 있었다. 그러나 뉴욕은 바로 앞에서 커리를 놓쳤다.

골든스테이트 워리어스가 전체 7순위 지명권을 행사해 커리를 낚아챈 것이다. 당시 사령탑이었던 돈 넬슨 감독은 "사람들은 커리의 볼핸들링이 약하다고 말하지만 나는 그에게서 포인트가드의 재능을 봤다"고 말했다.

커리의 첫 3시즌은 평범했다. 평균 17.5점을 올렸다. 구단의 기대대로 3점슛 성공률은 뛰어났다. 경기당 2.1개를 성공하며 44.1%라는 높은 적중률을 보였다.

커리는 팀의 중심이 아니었다. 당시 골든스테이트에는 뛰어난 공격형 가드 몬타 엘리스가 있었다. 커리 역시 공격 성향이 강한 선수라 둘의 공존은 어려워보였다.

하지만 커리의 3년차 시즌부터 골든스테이트 지휘봉을 잡은 마크 잭슨 감독이 2012-2013시즌 도중 중대한 결정을 내린다. 구단 수뇌부와 상의해 엘리스를 트레이드하고 팀 공격을 커리 중심으로 재편한 것이다. 그리고 그에게 포인트가드를 맡겼다.

이후 커리는 날아올랐다. 마침내 포인트가드로 확고히 자리를 잡으면서 포지션 경쟁력이 나아졌고 스스로 득점을 창출할 기회도 많아졌다.

그 순간을 꿈 꾸며 열심히 땀을 흘려온 커리는 새 역할을 받아들일 준비가 돼 있었다. 2012-2013시즌에 평균 22.9점을 퍼부었고 6.9개의 어시스트를 올렸다. 모두 데뷔 후 최고 기록이었다.

스테판 커리. 연합뉴스

3점슛 생산 능력은 전성기를 향해 갔다. 커리는 무려 272개의 3점슛을 터뜨려 레이 앨런이 보유하던 단일시즌 최다 신기록을 세웠다.

이때부터 커리가 주도한 3점슛의 혁명 시대가 도래했다.

커리는 매시즌 300개 내외의 3점슛을 터뜨렸고 사상 처음으로 만장일치 MVP를 받았던 2015-2016시즌에는 무려 402개의 3점슛을 림에 꽂았다.

때마침 세이버 매트릭스에 정통한 단장들이 대거 등장하면서 3점슛 혁명에 기름을 부었다. 3점슛과 페인트존 득점이 결합했을 때 가장 좋은 효율이 나올 수 있다는 게 통계적으로 증명된 것이다.

정확히 10년 전, NBA 30개 구단들은 평균 18.4개의 3점슛을 던져 6.4개를 넣었다. 이번 시즌 리그 평균 3점슛 시도는 35.4개, 평균 성공 개수는 12.3개다. 득점을 만드는 방식에 큰 변화가 생긴 것이다.

2000년대까지만 해도 '캐치-앤드-슛' 유형의 3점슈터가 많았다. 2010년대 들어 큰 변화가 생겼다. 커리와 같은 '오프-더-드리블' 유형의 3점슈터가 급증한 것이다.

대미안 릴라드, 제임스 하든 등이 대표적이다. 슛 거리를 따지는 게 의미가 없을 정도로 대단한 슈터들이 각 팀의 주요 공격옵션으로 자리잡았다.

커리는 15일(한국시간) 미국 매디슨스퀘어가든에서 열린 2021-2022시즌 뉴욕 닉스와 원정경기에서 3점슛 5개를 터뜨려 NBA 통산 최다 3점슛 부문 1위로 올라섰다.

통산 3점슛 개수를 2977개로 늘린 커리는 종전 기록 보유자 레이 앨런(2973개)을 2위로 밀어내고 최다 기록의 주인공이 됐다.

커리가 지금까지 3점슛을 만들어낸 과정을 보면 시대의 변화를 읽을 수 있다. 2977개의 3점슛 가운데 '캐치-앤드-슛'에서 비롯된 3점슛이 1722개(58%), '오프-더-드리블'로 만든 3점슛은 1255개(42%)다.

이처럼 커리는 패스를 받아 던지는 기존의 3점슈터의 개념을 완전히 바꿔 놓은 주역이다.

그가 대학 시절부터 포인트가드로 성장하기 위해 반복한 볼핸들링 연습은 강한 수비수를 떼어놓고 슈팅 공간을 창출하는 기술로 진화했다. NBA가 농구 팬에게 주는 볼거리는 더욱 풍성해졌다.

이 모든 것은 노력에서 비롯됐다.

1986년부터 1998년까지 NBA에서 활약한 마크 프라이스는 신장 183cm의 작은 포인트가드였지만 통산 3점슛 성공률이 40.2%일 정도로 뛰어난 슈터였다. 그는 커리의 마음가짐과 그간 노력한 과정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일 것이다.

프라이스는 미국 언론과 인터뷰에서 "커리는 나보다 조금 더 크지만 지금 리그에서는 여전히 키가 작은 가드로 여겨질 것"이라며 "더 크고, 더 강하고, 운동능력이 더 좋은 선수 앞에서는 슈팅 공간이 많지 않다. 나도 이를 극복하기 위해 꾸준히 노력했다. 커리는 움직임이 간결하고 코트 어디에서도 똑같은 슛을 만들어낼 능력을 갖췄다"고 말했다.

커리가 주로 리차즈의 패스를 받아 외곽슛을 던지던 데이비슨대 2학년 시절 농구에 만족했다면 지금의 커리는 없었을지도 모른다. 커리는 그 농구로 센세이션을 일으켰음에도 같은 위치에 머무르지 않았다.

커리의 친동생인 세스 커리(필라델피아)는 형이 대기록을 달성한 순간 SNS에 "그는 이제 공식적인 3점슛의 신"이라는 글을 남겼다. 그게 바로 커리의 현 위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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