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파산관재인으로서 부산저축은행의 채권을 인수한 예금보험공사는 그동안 엉뚱한 사람한테서 채권을 회수하려고 했다. 부동산 개발 회사인 씨세븐 등의 대표이사가 이강길 씨에서 남욱 변호사로 바뀌었는데 예보는 이 씨에게 빚을 갚으라고 요구해왔다. 바뀐 대표 이사는 연대보증 책임도 동시에 떠안게 된다.
예보는 애초 '채무 회사 안에서 발생한 대표이사 변경 내용을 알 수 없었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는 사이 대장동 사업은 민관합동 방식으로 일사천리로 진행됐고, 남 변호사는 1천억원 이상의 수익을 챙겼다. 남 변호사가 예보의 채권 추심으로부터 자유로웠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회사 주인과 연대보증인이 바뀐 사실을 몰랐다는 예보의 설명은 여러 면에서 석연치 않다.
등기·전자공시에도 나오는 '남욱 대표'…전문기관인 예보가 몰랐다?
대표 이사 변경은 법인 등기만 떼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씨세븐의 등기를 보면, 이강길 씨는 2009년 9월부터 2011년 3월까지 대표를 지냈다. 이 씨는 대출 만기 연장에 실패하자 삼성물산 출신의 김용철 씨에게 잠깐 대표이사를 넘겼다. 하지만 대출 연대보증에 부담을 느낀 김 씨 역시 대표이사 자리를 남욱 변호사에게 다시 넘겼다. 김 씨는 대표 이사로는 등기에 이름을 올리지는 않았다. 등기상에는 남 변호사가 2011년 8월부터 법인이 해산된 2018년 12월까지 대표를 맡은 것으로 나온다.
금융감독원의 전자공시를 봐도 2011년 말 기준으로 판교프로젝트금융투자(대장동 사업을 위한 특수목적 회사)의 대표 역시 남 변호사로 나온다.
이런 사실을 제시하자 예보의 해명은 다소 바뀌었다. "대표이사가 변경되더라도 반드시 연대보증인도 바뀌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예보 대리인, 남욱과 대출 감면 계약…연대보증 인수 작업도
사업권을 인수한 남 변호사는 부산저축은행의 대출에 대한 연대보증도 함께 넘겨받았다. 이는 김용철 씨가 2017년 남욱 변호사를 상대로 제기한 민사 소송 판결문에서도 확인된다.
더욱이 남 변호사는 저출은행 대출 원리금을 감면받기 위해 전문 변호사와 용역 계약을 맺기도 했다. 2012년 3월 남 변호사가 대표로 있던 판교프로젝트금융투자가 계약한 곳은 박모 변호사가 대표였던 A법무법인이다.
박 변호사가 대출 원금 감면에 성공하면 감면한 원금의 20%를 지급하고, 연체이자 전액 감면에 성공하면 감면한 이자의 8%를 지급한다는 내용이다.
박 변호사는 남 변호사가 이 씨로부터 회사 주식을 인수하고 연대보증인을 남 변호사로 변경하는 등의 작업도 맡았다.
이 때는 부산저축은행이 영업정지된 이후여서 박 변호사가 예보를 상대로 대출 탕감을 위한 활동을 했을 개연성이 크다.
특히 의심스러운 대목은 박 변호사가 예보의 소송대리인 중 한사람이라는 점이다. 예보는 저축은행 등이 파산할 경우 채권 회수 과정에서 발생하는 소송을 위해 별도의 소송대리인 후보군을 위촉하는 데 여기에 박 변호사가 포함됐다.
박 변호사는 최소한 2016년부터 예보 소송대리인으로 일해왔다. 예보가 한창 이 씨를 연대보증 책임인으로 지목하고 채권 회수를 하려고 할 때다.
부산저축은행 등의 대출금을 최대한 거둬야 하는 예보를 위해 일하고 있는 박 변호사는 누구보다도 대장동 대출의 연대보증이 누구 책임인지 명확히 알고 있었다.
'남욱=연대보증인' 증거에도 예보 "알 필요없는 사항"
박 변호사에게도 수차례 전화를 하고 문자를 남겼지만 아무런 답변을 받지 못했다.
박 변호사와 대장동 세력과의 인연은 더 있다. 그는 대장동 사업의 수익구조를 설계한 것으로 알려진 정영학 회계사의 변호인이기도 하다.
만약 공기업인 예보가 회수 가능했던 남 변호사의 대장동 수익 등을 고의로 방치했다면 박 변호사를 넘는 영향력이 작용했을 것이란 관측도 나온다. 예보는 계속 헛다리는 짚고 있으면서도 아직도 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