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국립정동극장 연극시리즈 '더 드레서'를 통해 배우로 돌아온 송승환(64). 최근 국립정동극장에서 CBS노컷뉴스와 만난 그의 표정과 말에선 오랫만에 무대에 서는 설렘과 기쁨이 고스란히 묻어났다.
'더 드레서'는 지난해 11월 초연했지만 코로나19 상황 악화로 조기 종연(총 48회차 중 19회차 공연)했다. 1년 만에 재공연에 임한 송승환은 "아쉬움이 컸는데 다시 무대에서 연기하니까 너무 좋다. 인터미션(중간휴식)을 없애고 코믹요소를 강화해 지난 시즌보다 관객 반응도 훨씬 좋다"고 웃었다.
'더 드레서'는 로널드 하우드의 동명 희곡을 무대화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리어왕' 공연을 앞둔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 분장실이 배경이다. 악조건 속에서 연극을 올리기 위해 분투하는 연극인들의 모습을 통해 관계의 의미, 삶과 죽음을 통찰한다.
극중 송승환은 셰익스피어 전문 극단 대표이자 삶의 끝자락에 선 노배우 '선생님'을 연기한다. "복잡미묘한 캐릭터에요. 뛰어난 예술가이지만 속물적인 면도 있는 인물이죠. 극단 내 여러 사람과 복잡한 관계로 얽혀 있고요." 특히 평생 그의 곁을 지켜 온 드레서(의상 담당자) '노먼'(오만석·김다현)과의 이야기가 관객에게 생각할 거리를 던져준다.
"선생님은 여러 고비를 겪으면서도 늘 무대에 올랐어요. 노먼에겐 이번에도 그럴 거라는 믿음이 있는 거죠. 또 하나는 자기 존재감을 확인하고 싶은 거겠죠. 노먼은 선생님이 무대에 올라야 자기 존재감이 사는 사람이니까요." 송승환은 "배우들도 공연하기 싫은 날이 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일단 무대에 서면 하기 싫은 감정이 사라지고 그 상황에 몰입해서 연기하게 된다"고 했다.
2막 엔딩 반전 부분에서 노먼이 분노를 분출하는 이유도 "자기 존재감을 상실했기 때문"이라는 해석이다. "선생님이 없으면 노먼은 이 곳에서 존재의 이유가 없잖아요. '매치, 당신은 선생님을 사랑했어요? 난 어떨 거 같아요?' 라는 대사에서 보듯 노먼은 선생님을 사랑하기까지 했어요. 좌절감과 상실감을 분노라는 방식으로 표출한 거죠." 송승환은 "이 장면을 연기하고 싶어서 선생님 역은 이순재, 오현경 선생님에게 부탁하고 나는 노먼 역을 맡고 싶었다"고 웃었다.
'더 드레서'는 송승환이 60대 들어 처음 서는 무대다. 노(老)역의 출발점인 셈이다. 송승환은 "연기하면서 노역이 불편하지 않은 걸 보니 저도 늙었나 보다. 대본이 좋으면 장르에 상관 없이 계속 노역을 하고 싶다"며 "현재 이탈리아 희곡 '라스트 문'을 검토하고 있다. 양로원에 들어가는 날 아침 아들과 대화로 시작하는 연극"이라고 했다.
송승환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개폐회식 총감독 임무를 완수한 뒤 시력이 급격히 악화했다. 현재 시각장애 4급이다. "시력이 더 이상 나빠지지는 않고 있지만 늘 안갯속에 있는 느낌이에요. 30cm 앞에 있는 물체만 겨우 보여요." 그럼에도 그는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간다.
낮에는 21개월 만에 공연을 재개한 '난타' 공연장(명동난타극장)에서 리허설을 챙기고 저녁에는 국립정동극장에서 '더 드레서' 무대에 오른다. 짬짬이 유튜브 채널 '송승환의 원더풀 라이프'(원로예술인의 인생이야기)를 진행하고, 성균관대 문화예술미디어융합원 원장(비상임)으로도 활동한다. 2022년 베이징 동계올림픽 개회식 해설(KBS)도 맡을 예정이다.
꺾이지 않는, 지치지 않는 비결은 뭘까. "제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이왕 하는 일이면 최선을 다합니다. 지금까지 그렇게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렇게 살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