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작 : 강민주 PD
■ 진행 : 서정암 ANN
■ 대담 : 박경수 필장, 박상현 이수자
◇서정암> 붓은 '내 인생 그 자체다'라고 말하는 분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들에게도 붓을 만드는 법을 전수해 전통을 잇고 있는데요. 강원도 춘천에서 '붓 이야기 박물관'을 운영하며 붓 공예를 이어가고 있는 강원도 무형문화재 24호 박경수 필장과 박상현 이수자 모셨습니다.
◇서정암> 안녕하세요.
◆박경수, 박상현> 안녕하세요.
◇서정암> 제가 박경수 필장이라고 소개를 했는데요. '필장', 말 그대로 '붓을 만드는 장인'입니다. 붓을 언제부터 만들기 시작하셨나요?
◆박경수> 제가 1974년부터 붓을 만들어 왔는데 그간 한 50년간 붓을 만들어왔습니다.
◇서정암> 50년! 그러면 아들인 박상현 이수자께서는 얼마나 되셨죠?
◆박상현> 저는 어렸을 때부터 아버지께서 붓 만드는 것을 조금씩 도와드리긴 했지만, 이제 본격적으로 필장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는 건 거의 한 10년 가까이 되죠.
◇서정암> 여러 가지 공예들도 많은데 붓을 선택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박경수> 제가 어렸을 때에는 여러 가지 직종이 있었어요. 제 주변에 보면 자개를 하시는 분들, 또 나무 공예도 하신 분들도 있었고요. 또 우리 아버님은 대나무도 만지시다가 붓도 만들고 하셨어요. 그때 저는 주종목은 별로 없었는데 이상하게 붓 만드는 게 이끌리는 거예요. 나도 모르게 붓 만드는 게 제일 재밌고요. 그래서 항상 '붓 만들고 싶다, 붓 만들고 싶다' 생각했고 제가 시간만 있으면 붓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당시에 여러 사람들이 붓을 만들었지만 이제는 저 혼자 만들고 있어요. 제가 못 하는 게 당구 칠 줄 모르고 바둑 둘 줄 모릅니다. 왜냐하면 저는 그 시간이면 작업하고 털 가지고 연구를 했어요.
◇서정암> 보통 놀이로 하는 것들을 하지 않으시고 붓 만드는 것이 놀이셨군요.
◆박경수> 작업 끝나고 사람들은 다 즐기러 가면 저는 털 가지고 연구를 해본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이렇게 푹 빠져 있었습니다.
◇서정암> 어떻게 보면 붓을 즐기시다가 계속 하시게 된 거군요. 우리 아드님은 혹시 선택권이 없었나요? 하하.
◆박상현> 아버지 주위에 공예 하시는 분들은 굉장히 많습니다. 목공예, 칠공예 등 또 인맥이 넓으셔서 주변에 어렸을 때부터 삼촌이나 아저씨라고 부르면서 주변에 공예 하시는 분들은 많았는데 눈 뜨면서 잘 때까지 보는 게 항상 붓 만드는 것이다 보니까 어렸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붓이랑 가까워졌던 것 같습니다.
◇서정암> 아드님이 두 분 계신데 지금 두 분 다 붓을 선택해서 지금 계승을 하고 계세요. 이렇게 붓은 꼭 사람이 만들 수밖에 없는 건가요?
◆박경수> 첫 공정부터 대부분 한 100여 번을 손질해야지 붓 하나가 완성이 됩니다. 그런데 기계는 하나도 안 들어가요. 다 수작업이라서 기계는 쓸 수가 없기 때문에 인원수가 엄청나죠. 기계가 만들 수가 없기 때문에 공장도 없어요.
◇서정암> 그러면 간단하게 붓을 좀 만드는 과정을 조금 설명을 좀 해주시죠.
◆박경수> 먼저 털을 선별을 하죠. 붓 만드는 게 너무너무 힘들어요. 정말 힘듭니다. 붓을 한 자루 만들 려면요. 기름기도 잘 빼야 돼요. 동물들이 우리 사람 같이 샴푸나 린스를 써본 적이 없기 때문에 엄청 기름기를 빼야 되는데 너무 많이 빼면 수명이 너무 짧고 기름기를 안 빼면 먹물이 안 묻는 거예요.
◇서정암> 기름의 비율을 잘 맞춰야 되는군요.
◆박경수> 기름기를 잘 빼야죠.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고 모양도 좋아야 만이 글이 잘 돼요. 둔탁해버리면 글씨가 안 나오고 끝이 좀 잘 빠져야지 글씨도 잘되고 그림도 잘 나옵니다.
◇서정암> 주로 어떤 동물의 털을 쓰나요? 제 머리카락 이런 걸로도 붓을 만들 수 있나요?
◆박경수> 그럼요. 같은 쉐프여도 어떤 사람은 음식을 잘 만들고 못 만들 듯, 저도 마찬가지예요. 전통 기법으로 붓을 만들다 보면 어떤 털이든 어떤 재료든지 다 붓을 만들 수 있어요. 아까도 말씀을 드렸지만 붓 만들 때 최고 중요한 것은 기름기를 어떻게 빼느냐 에요. 저희 집에 오시면 볼 수 있는 게 깃털붓이 있어요. 깃털붓은 제가 기르던 앵무새가 죽어가지고 그걸로 연구를 하다가 탄생했는데요. 그 연약한 털이 기름기를 잘못 빼버리면 그냥 녹아버리고 안 빼면 먹물이 안 묻는 거예요. 그걸 제가 5년에 걸쳐서 연구 끝에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서정암> 앵무새의 깃털이라고 하면 색깔도 굉장히 예쁘겠어요.
◆박경수> 그렇기 때문에 제가 만든 거예요. 나중에 소설가 이외수 선생님을 가져다가 드리니까 "박 선생님! 털이 좀 길었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말씀하시기에 춘천하면 또 닭갈비잖아요? 그래서 제가 닭털로 또 연구를 시작한 거예요. 그래서 참 고생 많이 했습니다. 정말 지금이야 웃고 이야기할 수 있지만 정말 고생들을 많이 했습니다. 우리가 기르던 강아지도 닭을 잡아서 고기를 주면 고기를 안 먹을 정도였어요. 저는 털에만 미쳐서 닭털을 좀 만들어보고 싶다고 그 고기는 신경도 안 쓰고 그랬죠. 지금 다시 만들려면 못 만들겠어요. 우리나라에서 저 혼자서 닭털붓을 만들고 조류털 붓을 만들고 있는 거예요.
◇서정암> 시도를 하다가 이거는 진짜 안 되겠다 하는 털도 있었나요?
◆박경수> 닭털붓도 제가 했고 배냇머리붓도 했었어요. 여기 우리 이수자가 나와 있지만 이수자의 배냇머리로 제가 31년 전에 만들어 놓은 붓이 있어요. 머리카락은 끝에 호가 있어요. 처음에 나왔던 머리카락은 호가 있는데 자르니까 계속 호는 없고 그냥 머리만 자라는 것일 뿐이죠. 참 근데 생각해보면 제가 어떻게 우리 아이 머리카락으로 할 생각을 했을까요. 하하. 나중에 우리 큰 아들이 논문을 쓰다 보니까 배냇머리붓이 이미 문헌에 나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너무 억울하잖아요. 처음부터 문헌에 나와 있다고 알았으면 그것을 봤으면 쉬울 건데.
◇서정암> 최초인 줄 알고 하셨는데 이미 있었던 거였군요.
◆박경수> 그래도 제가 이제 어떻게 보면 복원을 했다고 그럴까요. 하하.
◆박경수> 우리가 안하면 전통의 맥이 끊겨버려요. 예전에 전라도에 가보면요. 김을 채취하시는 분들이 하얀 염소 고기를 먹으면 추위를 안 탔답니다. 그래서 예전에 우리 어렸을 때 들판에 가보면 하얀 염소가 많이 있었어요. 근데 지금은 '흑염소, 흑염소' 하니까 전부 다 흑염소로 바꿔 버렸잖아요. 또 개량을 하다 보니까 염소가 고기는 많아지고 털은 짧아지는 거예요. 그러니까 너무 애로사항이 많습니다. 저도 그래서 염소도 길러서 털도 써보기도 했는데요. 염소가 좀 전라도 말로 '부잡스러워요'. 그러다 보니까 키우지를 못해요. 그래서 안타깝고 털은 아예 중국에서 들어와야 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합니다.
◇서정암> 박상현 이수자께도 제가 좀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붓 제작 원래 이어받고 싶으셨겠지만 경제적으로나 이런 게 조금 걱정이 되지 않으셨는지, 어떤 사명 때문에 하신 건지요?
◆박상현> 붓을 이어받고자 하는 마음이 어렸을 때부터 있었던 건 아닙니다. 저도 (아버지가) 워낙 힘들게 만드시는 모습을 계속 보고 하다 보니까, 거의 항상 밤을 새고 한 달 내내 밤새시고 만드세요. 그러다 보니까 어머니의 바람대로 여느 다른 일반 학생들처럼 그냥 인문계 고등학교 가고 그냥 일반적인 학생들처럼 계속 공부만 하고 계속 붓은 안 만들고 학창시절을 보냈는데요.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게 운명일 수도 있겠는데, 형도 부여의 문화재청 산하 한국전통문화대학교라는 학교로 가서 전통문화에 대해서 공부를 하고 저도 어떻게 하다 보니까 이제 형 뒤를 따라서 문화재 보존과학을 전공하러 한국전통문화대학교에 들어가게 됐습니다.
가서 배우다 보니까 우리나라 전통 문화의 전통 소재들이나 전통 도구나 이런 맥이 끊겨가더라고요. 저번에 숭례문 방화 사건 때문에, 화재 사건이 일어났을 때 복원을 하는데 우리나라 안료나 아교 이런 게 맥이 끊겨 있으니까, 일본산 수입해서 쓰고 결과물도 좀 안 좋았어요. 이렇게 안 좋은 상황들이 많이 벌어졌었잖아요. 그래서 저희 학교에서 전통 아교를 복원하고 뭐 하다 보니까 시간이나 인력, 예산이 엄청 많이 투입되더라고요.
또 제가 논문 쓰려고 전국을 조사하고 하다 보니까 우리나라의 붓 만드시는 분이 예전에는 많았는데 지금 한 10분 내외 정도밖에 안 계시는 거예요. 또 대부분 나이가 거의 7~80대 분들이세요. 아버지가 그나마 좀 젊으신 편에 속하세요. 그리고 저희 또래는 진짜 아무도 없어요. 그러다 보니까 '우리가 하지 않으면 아예 우리 전통 붓도 맥이 끊겨버리겠구나', '우리나라의 전통 문화를 표현하는데 중국이나 일본 붓을 수입해 와서 써야 되는 상황이 오겠구나' 이렇게 생각해서 저는 이제 석사까지 마무리하고 '전통 장인으로 계속 나가야겠다, 그래도 우리나라의 명맥이 끊어지지 않게 이어 나가야겠다'하는 좀 사명감을 가지고 하게 됐던 것 같습니다.
◇서정암> 사실 형제가 좀 상의를 해서 '둘 중에 한 명만 하자. 그래도 계승은 되니까' 이런 생각은 안 해보셨나요? 둘이 이렇게 상의는 안 하셨나요? 하하.
◆박상현> 상의를 했는데요. 하하. 붓 만드는 게 혼자 하면 굉장히 힘들어요. 하지만 과정을 나눠서 하면 예를 들어서, 혼자서 하면 진짜 1인분 밖에 안 되는데 둘이서 하면 이런 3~4인분의 일까지 할 수 있더라고요. 분업을 하다 보니까 워낙 능률도 많이 올라가고요. 또 저희가 만드는 것뿐만 아니고 이런 학술적인 연구도 하고, 또 박물관이 설립되어 있으니까 오시는 분들께 안내도 해드리고 큐레이터 역할도 해야 돼요. 이게 혼자서 절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더라고요. 그러다 보니 아버지랑 어머니랑도 상의를 해서 '너네 둘 다 이렇게 하면서 학술적인 것도 하고 박물관도 하고 해서 아예 공예도 좀 키우고 이어나가 보자' 했고 좀 더 크게는 이 마을까지도 전통 붓을 넘어서 공예 마을까지 활성화할 수 있게 최대한 '한번 키워보자'라는 그렇게 상의를 했던 것 같습니다.
◇서정암> 저는 아버지도 아니지만 제가 이 모습을 보면서 뿌듯했거든요. 어떠셨나요, 두 아들이 계승을 하겠다고 했을 때?
◆박경수> 요즘에 최저임금은 대략 한 200만 원 되잖아요. 월급으로 200만 원을 돈을 줘본 적이 없어요. 그렇게 힘든데 고맙고 참 미안하죠. 돈도 안 되는 직업을 전통을 이어보겠다고 자기들이 지켜보겠다고 따라오는 걸 보면 너무너무 내가 미안하지만 그래도 참 고마워요. 그리고 '아빠 안돼요' 하기보다는 가르쳐주면 자기들이 '아빠 이건 어떻게 했어요? 어떻게 해보면 더 좋겠는데요?'라고 합의를 하려고 하죠. 독단적으로 안 하니까 참 고마워요. 요즘에 젊은 사람들 안 그러잖아요. 막 뛰어넘어가려고 하잖아요. 그러면 전통을 맥을 다 끊겨버리고 현대 공예 돼버리는 거예요. 전통을 다 이어나가야만 거기서도 창조력이 나오고 닭털붓도 나오고 배냇머리 붓도 나오고 하는 거에요. 우리 집은 띠풀붓도 있고 여러 가지가 많이 있어요. 그렇게 이어지는 것이지 하나만 고집해서는 절대 안 되는 거예요. 전통을 알아야 합니다.
◇서정암> '붓 이야기 박물관'을 운영하고 계세요. 이름을 '붓 박물관' 이렇게 간단하게 지을 수도 있는데 '붓 이야기' 이렇게 지으신 이유가 있을까요?
◆박경수> 사람들이 참 의아하게 생각을 하죠. 보통 박물관에 보면 간단하게 예전 거 모아놓고 '붓 박물관' 이렇게 했을 건데 어떻게 저 집은 '붓 이야기 박물관'일까하고 생각을 하실 거예요. 제가 곰곰히 생각해 보면 우리 아이들이 저를 따라주고 있기 때문에 전통 붓이 '이야기'가 되는 거예요. 또 붓이 한두 가지가 있는 게 아니고 족제비 털인 황모로 하다가 양모, 염소 털로 하곤 하는데 그 붓만 있으면 이야기 안 되지만, 그 외에 닭털, 로드킬 당해서 죽은 노루털이든지 사람 털이라든지 웬만한 털을 다 가져와요. 그리고 그런 걸 모아서 제가 전부 다 붓을 만들어 놓으면 그런 게 이야깃거리가 되는 거예요. 그래서 '붓 이야기 박물관'으로 제가 해놨습니다.
◆박상현> 여기 좀 추가적으로 말씀드리면 아버지가 만든 만드신 붓뿐만 아니고 아버지랑 관련이 있으셨던 분들, 작가와 필장은 뗄래야 뗄 수 없는 관계잖아요? 그러다 보니까 이제 아버지와 관련된 작가분들의 그림이나 작품들도 있고 붓이랑 문방사우, 서예 용품들도 장인분들이 만드신 이런 것과 같이 다 같이 전시되고 있어서요. 그런 것까지 해서 붓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를 담을 수 있는 박물관이 되고자 '붓이야기 박물관'으로 짓게 되었습니다.
◇서정암> 제가 지금 말투를 살짝 들어보니까요. 강원 지역 분이 아니신 것 같아요. 다른 지역에서 오셨죠?
◆박경수> 저는 고향이 전라도예요. 우리 아버님이 저한테 붓을 이수를 해 주실 적에 붓 만들기에는 '추운 지방 털이 좋다' 그래서 제가 춘천에 온 지 37년이 됐습니다. 그러고 나서 제가 강원도 털을 이용해서 붓을 만들었죠. 그러다 보니까 너무너무 아버님 말씀이 맞는 거예요. 그래서 내가 강원도 털로 붓을 만들기 시작하니까 대한민국에 제 붓은 쓴 사람들은 다른 붓을 못 씁니다. 너무너무 저도 재밌고요.
◇서정암> 그러면 박경수 필장이 만드는 붓의 장점이 뭔가요?
◆박경수> 모르겠어요. 저는. 하하. 전통 그대로 만들고요. 예를 들어서 학생 붓을 누가 만들어달라고 주문이 들어옵니다. 그러면 다른 데서 만든 학생 붓은 좀 쓰다 보면 술술 빠지고 막 그런단 말이에요. 그런데 제 것은 안 빠지죠. 왜 전통 방식으로 만들기 때문에 그런 건 없죠.
◇서정암> 숱이 또 안 빠지고 그리고 또 필기감도 좋고?
◆박경수> 예. 그럼요.
◇서정암> 마지막으로 청취자분께 한 말씀 좀 드리면서 마무리를 좀 듣고 싶은데요. 먼저 박경수 필장부터?
◆박경수> 붓을 사용해 주시면 좋아요. 왜냐면요. 우리가 내 마음과 정성을 담아서 글씨를 쓰다 보면요. 내 마음도 차분해집니다. 붓펜 같은 건 인조털이에요. 인조털은 같은 거지만 인조로 만드니까 안 눕잖아요. 털은 눕기도 하고 세우기도 하고 그래야지 내 마음이 차분해진다는 느낌으로 정말 붓을 사용해줬으면 좋겠어요.
◇서정암> 또 박상현 이수자도 한 말씀 부탁드리겠습니다.
◆박상현> 지금 요즘 현대사회가 너무 변화가 빠른 사회라서 저도 젊지만 너무 적응하기 힘든 사회인 것 같아요. 그러다 보니까 지금 워낙 새로운 것만 쫓다 보니까 옛 것이 많이 잊혀지고 하는데 좀 옛것까지 같이 돌보면서 새로운 것을 같이 했으면 좋겠어요. '온고지신(溫故知新)'이라고 하잖아요. 옛 것을 좀 알고 이렇게 잘 되어 있는 상태에서 새로운 것까지 발전한다면 더 없이 좋은 상황이 될 거라고 보니까요. 옛 전통이 끊어지지 않게 좀 다 같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저도 계속 전통을 이을 테니까 또 다 같이 관심을 가지고 했으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서정암> 그러면 오늘의 대화를 좀 정리하면서 마지막으로 우리 박경수 필장이 추천하는 곡 한 곡을 들으면서 좀 마무리를 할 건데요. 어떤 곡을 좀 들으면 좋을까요?
◆박경수> 가수 김성환 씨의 '인생'이라는 노래가 있어요.
◇서정암> 이 곡을 추천하신 이유는요?
◆박경수> 내가 세상에 나오고 싶어 나온 것도 아니잖아요. 그 노래를 들으면 다 사연이 담겨 있어요. 내 마음 외로울 때는 한 곡씩 그냥 흥얼흥얼 합니다.
◇서정암> 그러면 김성환의 '인생' 저희가 마지막 곡으로 들으면서 저는 오늘 우리 강원도 무형문화제 24호 박경수 필장과 또 그 이수자 박상현 이수자와 함께 이야기 나눠봤습니다. 오늘 귀한 시간 내주셔서 고맙습니다.
◆박경수, 박상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