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지조각' 되는 검찰 조서…李·尹 수혜자 되나

황진환 기자
검찰에서 작성한 '피의자 신문조서'(피신조서)가 내년부터 형사재판에 넘겨진 사건에서는 지금처럼 확고한 증거로 쓰이기가 어려워졌다. 검찰 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을 제한하는 기준이 내년 1월 1일 이후 '기소된 사건'으로 결정돼서다.

기소 시점이 기준으로 정해지면서 경우에 따라 같은 사건의 피고인들이라도 조서의 증거능력과 활용 방법은 저마다 달라질 전망이다. 특히 대장동 사건이나 고발 사주 의혹 등 해를 넘겨서도 이어질 권력형 비리 사건에서 적잖은 혼란이 예상된다.

10일 CBS노컷뉴스 취재 결과, 검찰 피신조서의 증거능력을 내년 1월 1일 이후 기소된 사건부터 제한하는 형사소송법 일부개정안이 전날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이로써 내년에 기소된 피고인이 검찰 조사 당시 진술한 피신조서의 내용을 법정에서 부인하면 재판부는 이를 증거로 사용할 수 없다. 지금까지는 적법 절차 등 일정 요건만 갖추면 피신조서를 증거로 인정했다.

그간 각계에서는 해당 규정의 시행 기준을 두고 논의가 이어졌다. 입건 단계부터 기소, 재판전 증거조사, 판결시 등 여러 기준들이 거론됐다. 그중 기소와 재판전 증거조사가 유력하게 검토됐고, 기소 시점이 최종 적용 기준으로 확정됐다.

어느 시점을 기준으로 하더라도 법 시행에 따른 초반 혼란은 불가피하지만, 기소 시점은 특히 현재 진행 중인 사건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다는 게 법조계 안팎의 시각이다. 예컨대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의 경우 이제껏 재판에 넘겨진 건 유동규 전 본부장과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 등 이른바 '대장동 4인방'이 전부다. 성남시 윗선은 기소된 사람 없이 수사만 한창이다.
대검찰청. 황진환 기자
추후 수사가 진척돼 성남시 윗선 개입이 드러나고 관련자를 재판에 넘기더라도 올해를 넘긴 때라면 피신조서의 증거 능력을 인정받기는 쉽지 않다. 피고인이 검찰에서 작성된 피신조서의 내용을 부인하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한 검찰 관계자는 "피고인이 검사 작성 조서를 받아들일 경우는 거의 없을 걸로 보인다. 사실상 검찰 피신조서가 휴지조각이 되는 셈"이라고 말했다.

결국 이 경우 검찰은 공판에서 증인신문 등 방법으로 기존에 확보한 피의자 진술을 재차 일일이 확인해야 한다. 그만큼 시간이 지체되는 건 물론이고, 유죄 입증도 어려워진다. 피신조서의 증거 능력 상실이 무죄율을 높일 수 있다는 지적의 배경이다.

공범 관계에서는 차등 적용의 논란도 발생할 수 있다. 대장동 사건처럼 하나의 범죄에 연루된 공범임에도 내년에 기소됐다는 이유만으로 검찰 피신조서에서 보다 자유로워지는 문제가 생길 수 있는 것이다. 한 형사부 판사는 "앞으로는 검찰 피신조서도 경찰과 마찬가지"라며 "내년에 기소된 피고인이 올해 기소된 공범의 피신조서를 부인하면 증거로 쓰지 못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뇌물 사건에서 준 사람은 자백을 해서 유죄가 나왔는데, 받은 사람이 재판에서 이를 부인하고 준 사람의 자백 조서마저 부인한다면 물증이 없어 결국 무죄가 나온다"며 "내년부터 뇌물, 부패, 조직범죄 등 사건에 대응이 되겠나"고 우려했다.
더불어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와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후보. 국회사진취재단
법조계에서는 이같은 시각의 연장선에서 이재명, 윤석열 두 대선 후보가 피신조서 증거 제한의 수혜자가 되는 것 아니냐는 관측도 나온다. 이 후보는 검찰이 수사 중인 대장동 사건에 연루돼 있고, 윤 후보는 고발 사주와 판사 사찰 의혹 등으로 고위공직자범죄수사처(공수처)의 수사선상에 올라있다. 두 사람 모두 혐의가 드러나더라도 올해 안에 기소될 가능성은 희박하다.

일각에서는 그만큼 검찰과 공수처가 기소든 불기소든 '올해 안에 처분'을 목표로 남은 한 달간 수사에 고삐를 죄야 한다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검찰의 대장동 의혹 수사는 현재 성남시 실무자들을 상대로 한 참고인 조사 단계에 머물러 있고, 공수처의 고발 사주·판사 사찰 의혹 수사는 손준성 검사의 구속영장 기각 이후 답보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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