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읽기]꼬여만 가는 여수세계박람회장 사후활용

메가이벤트인 2023년 COP28 유치 무산 '충격'
2022년 정부 예산에 박람회장 운영비 지원 '0원'
뜻 모아도 어려운데 정치권 사후활용 해법 '제각각'
내년 10주년인데 박람회장 바라보는 시민은 '답답'

2012여수세계박람회 당시 화려한 불꽃이 여수 바다 위를 수놓고 있다. 여수시 제공
전남 여수 바다를 배경으로 펼쳐진 2012여수세계박람회는 석달 동안 800만 명이 넘게 다녀가는 등 전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켰습니다.
 
화려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진행된 폐막식에서 우리나라는 '여수선언'으로 기후변화에 따른 전지구적 위기에 대한 전 세계인의 경각심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여수를 찾는 관광객은 박람회 이전 600만 명에서 700만 명 수준이었지만 박람회 이후 1300만에서 1500만을 넘나들었습니다.
 
박수와 갈채 속에 끝난 박람회는 여수를 일약 관광도시의 반열에 올려놓았고 석유화학 산단이 이끌던 지역경제는 이제는 관광산업이 당당하게 한 축을 담당하게 됐습니다.
 
여수세계박람회장 항공사진. 여수시 제공
그런데 그토록 화려한 조명을 받았던 여수세계박람회장은 9년이 지난 지금 현실은 암울하기만 합니다.
 
여수시는 오는 2023년 28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8) 유치를 통해 메가이벤트를 활용한 박람회장 활성화를 모색했습니다.
 
여수지역 시민사회는 기후변화협약과 관련한 국제적인 최고 의사결정 기구인 COP총회 유치를 위해 10년 이상을 준비해왔습니다.
 
여수시는 2009년 11월 정부에 전국에서 처음으로 유치를 건의했고 12월 16일 전남 여수, 순천, 광양, 고흥, 구례와 경남 진주, 남해, 하동 등 8개 시·군 단체가 참여하는 COP18 여수유치 운동본부를 결성했습니다.
 
2010년 2월 기후변화 협약 당사국 총회 광역여수엑스포권 유치 건의문을 발표했고 범시민 유치위 창립총회, 유치지지 서명운동 등의 활동도 펼쳐졌습니다.
 
그러나 2012년 열린 COP18은 산유국들이 기후변화 문제에 기여할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는 이유로 개최국이 카타르로 결정됐고, 한국은 장관급 준비 회의인 Pre-COP18을 개최하기로 하면서 여수 유치는 불발됐습니다.
 
10년 만인 2018년 5월 지난 지방선거 당시 권오봉 여수시장이 COP28 남해안남중권 유치를 공약으로 내걸었습니다. 김영록 전남지사와 김경수 경남지사도 지방선거 당시 민선 7기 전남·경남 상생발전 정책협약을 추진하면서 COP28 유치를 약속했습니다.
 
이재명 경기도지사(왼쪽에서 두번째)가 여수시를 찾아 권오봉 여수시장(왼쪽에서 첫번째)과 손잡고 COP28 남해안 남중권 유치 지지를 약속하고 있다. 여수시 제공
2019년 11월 박원순 서울시장, 지난해 1월 이재명 경기지사가 각각 남해안남중권 유치 지지를 약속했고, 2019년 12월에는 남해안남중권 유치위원회가 출범하고 본격적인 활동에 들어갔습니다.
 
이 같은 노력의 결과로 정부는 지난해 7월 COP28 국내 유치를 공식 승인했고, 다른 도시들이 유치 경쟁에 뛰어들기도 했지만, 지역사회에서는 10년만에 돌아오는 메가이벤트에 대한 기대감이 한층 높아졌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지난 10월 그간 유치를 추진해온 COP28 총회를 아랍에미리트(UAE)에 돌연 양보했습니다. 그리고 5년 뒤인 2028년 33차 총회 유치에 나서겠다고 밝혔습니다.
 
정부는 갑작스런 유치 포기에 대해 △한-UAE 특별 전략적 동반자 관계 △중동 지역 산유국의 녹색전환(Green Transition) 지원 등 글로벌 기후변화 대응 노력 촉진 △향후 COP33 개최 추진과의 연계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했다고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UAE가 한국의 2030 부산 엑스포 개최 추진 노력을 환영한다는 입장을 밝히면서 COP28 총회 유치를 추진해온 지자체들 사이에서는 정부가 부산 엑스포 유치를 위해 COP28을 포기한 것이라는 평가가 나왔습니다.
 
더불어민주당 김회재 의원(여수을)은 입장문을 내어 "정부의 갑작스런 입장 변경과 유치 양보로, 13년간 이어져온 전남과 경남도민의 염원은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됐다"며 "국민을 무시하고 국가의 자존심을 떨어뜨리는 이번 결정에 대해 강력히 규탄한다"고 밝혔습니다.
 
김 의원은 이어 "정부가 COP33 유치와 남해안남중권으로의 선 개최지 결정에 대한 확실한 의지 표명이 있어야 한다"며 "구체적인 로드맵을 마련하고, 남해안남중권 시·군민들이 납득할 만한 대책이 시행돼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COP28 유치와 관련해 수도권 광역 지자체들의 지지와 후원이 있었지만 5년 뒤에도 이 같은 상황이 이어진다는 보장이 없는데다 정부가 이번 양보로 COP33 총회 유치 가능성이 크게 높아진만큼 유치전은 더욱 치열해질 전망입니다.
 
여수세계박람회장이 만성적인 적자 운영으로 시설 개선이 미뤄져 각종 편의시설이 흉물처럼 방치되고 있다. 최창민 기자
COP28 총회 유치 실패는 여수세계박람회장 사후활용에 직격탄이 되고 있습니다.
 
정부는 여수세계박람회 개최 10주년을 맞이하는 내년, 박람회장 운영예산을 전액 삭감했습니다.
 
2012여수세계박람회 이후 박람회재단에 대한 정부의 출연금은 2014년 60억 원이었지만 매년 10억 원 가량씩 줄어 지난해 7억 원으로 뚝 떨어졌습니다.
 
이마저도 2018년부터는 본예산에 반영이 안 돼 쪽지예산으로 근근히 충당해왔습니다.
 
국가행사에 대한 5년 지원 후 일몰제라는 기재부의 방침 때문에 올해는 7억 원 쪽지 예산이 한 푼도 반영되지 않았습니다. 내년 여수박람회 재단 관련 정부 예산은 10주년 기념행사 5억 원이 전부인 상황.
 
당장 내년에 박람회장 관리와 빅오쇼 운영이 차질을 빚어질 전망입니다.
 
지역사회는 반발하고 있습니다.
 
여수지역발전협의회, 여수상공회의소 등 7개 시민사회단체 일동은 8일 성명을 내고 "여수박람회장 예산 전액삭감과 COP28 일방양보‧정부의 지역 무시를 규탄한다"며 "지역무시 중단과 예산 편성 부활을 촉구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단체들은 "내년은 여수세계박람회 개최 10주년이 되는 해로 이를 기념하며 박람회장 활성화의 새로운 활로를 모색하던 지역사회의 염원에 정부가 찬물을 끼얹은 꼴이 됐다"고 비판했습니다.
 
일각에서는 여수세계박람회재단 강용주 이사장의 책임론을 제기하는 목소리도 나옵니다. 그동안 만성적자로 재단 운영이 어려웠던 점, 기획재정부의 일몰제 적용 등은 마찬가지 형편이었는데 국비 예산을 한푼도 가져오지 못한 건 결국 중앙부처를 효과적으로 설득하지 못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5년 뒤 유치를 준비하고 있는 COP33 유치에도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2022년 예산안을 심의 중인 전라남도의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는 최근 COP28 유치가 무산된데 따라 후속 사업비 9억 2600여만 원을 삭감했습니다.
 
전남도는 COP28 무산 후 COP33 유치로 전환했으며 추진단 규모도 축소할 계획인 것으로 전해집니다.
 
2012여수세계박람회 당시 서울시향 공원. 여수시 제공
여수 지역 정치권이 박람회장 사후활용 방식을 놓고 갈등하는 것도 사후활용을 지체시키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여수갑 선거구 더불어민주당 주철현 의원은 여수세계박람회장 사후활용 주체를 공공기관인 여수광양항만공사로 변경하는 내용의 '여수세계박람회 관리 및 사후활용에 관한 특별법' 일부 개정 법률안을 대표 발의했습니다.
 
박람회 시설 사후활용 사업 시행 주체를 '2012여수세계박람회재단'에서 재무능력과 전문성을 갖춘 '여수광양항만공사'로 변경하고 박람회 정신과 주제에 맞는 사후활용 사업을 추진할 수 있도록 제도적 근거를 마련한다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항만공사가 박람회 사후활용 사업을 수행하도록 항만공사법 일부 개정안도 함께 발의했습니다.
 
반면에 같은 당 소속의 여수을 선거구 김회재 의원과 순천·광양·곡성·구례을 선거구 서동용 의원은 정부의 선투자금을 항만공사가 떠안는 박람회장 개발 방식에 부정적 입장을 취하고 있습니다.
 
여수광양항만공사가 있는 광양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광양시의회는 성명을 내고 "박람회장 사후활용 시행 주체를 항만공사로 변경하려는 시도는 출범 10여 년 만에 겨우 재무 안전성을 갖춰가는 항만공사 재무 상태를 또다시 악화시키는 것"이라며 "여수‧광양항이 세계적 항만으로 성장하길 바라는 시민의 뜻을 무시한 일방적인 행태"라고 주장했습니다.
 
이어 "해양수산부는 용역 결과를 백지화하고, 박람회장 사후활용 변경계획을 전면 재검토하라"고 촉구하기도 했습니다.
 
COP28 총회 유치 무산, 박람회장 운영 국비 예산 미반영, 지역 정치권의 서로 다른 사후활용 해법 등. 2012년 여수세계박람회의 영광을 기억하는 시민들은 9년이 지난 후 박람회장을 답답한 마음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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