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다가 지난해 최악의 경제 침체를 겪었던 국내기업들은 코로나 기저효과를 타고 사상 최고의 수출호황을 누리고 있지만, 늘어만 가는 델타변이 확진자도 모잘라 또다른 변이 오미크론까지 맞닥뜨린 자영업자들은 망연자실한 모습이다.
오미크론에 좌절하는 영세 상인들
끝간 데 없이 이어질 것 같은 코로나 감염과 사회적 거리두기 규제에 그들의 희망은 산산이 부서지고 있다. 코로나에 일터를 잃어버린 자영업자에게 하늘을 날아갈 듯한 대한민국의 수출호황은 어떤 모습으로 비쳐질까."부럽다는 생각 밖에 안 들어요. 노래방을 개업하기 전 은행에 다녔거든요. 1997년 IMF가 왔을 때 고환율에 시달리던 사장님들이 은행창구를 서성이던 생각이 많이 나더라구요. 그땐 남의 일이었는데 제 일로 다가올 줄은 몰랐죠".
서울 대학로에서 A 노래연습장을 운영하다 임대료 부담을 견디지 못하고 폐업을 결정한 김 모씨는 7일 CBS노컷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힘겨움을 토로했다.
목 좋은 곳에 위치해 월 매출이 1천만~1500만원을 오르내렸고 이대로면 꿈도 이룰 수 있겠다 싶었다. 2019년 5월 시작한 무인노래방 사업은 재미가 쏠쏠했다. 그러나 호황은 지난해초 코로나가 엄습하기 전까지였다.
"코로나가 닥친 2월부터 매출이 급감했어요 평소 매출의 10%수준인 150만원 안팎으로 곤두박질 쳤어요 계약기간만 간신히 채우고 가게를 뺄수 밖에 없어요".
김 사장의 말이다. A노래방은 정확히 153일을 코로나 영업정지 행정명령으로 문을 닫을 수 밖에 없었다.
"2~3개월 문을 닫으면 1달에 100만원을 지원금이라고 줬어요 정부를 탓하고 싶지만 저만 그런건 아니니 일방적으로 정부를 탓할 수 만도 없었어요".
이 노래방의 월세는 700만원. 행정명령으로 문을 닫게된 달에는 100만원을 받아도 가만히 앉아 600만원 손실이 발생하는 상황을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정부 조치 일관성 없는게 가장 힘들어요"
무엇이 가장 힘들고 어려웠느냐고 취재진이 물었더니 2가지를 꼽았다."정부의 조치에 일관성과 형평성이 없어요. 그런거(전염병) 있으면 저도 국민이니까 타인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요 근데 주먹구구식으로 닫아라고 하니까 그게 불만이에요".
둘째는 건물주가 노래방을 다른 업종으로 바꿔서 임대를 놓는 바람에 '노래방 권리금'은 고사하고 내부 시설 철거비를 부담하는 어이없는 상황을 맞았다는 것이다.
김 사장은 "철거비와 권리금의 일부라도 받기 위해 내용증명을 보내고 있지만 계란으로 바위치기 같아요"라고 토로했다.
자영업자들이 정부의 방역행정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큰 불만은 그때 그때 다르다는 것이다. 국민으로서 당연히 방역수칙을 지켜야 한다고 얘기하지만, 왜 우리만 놓고 그러느냐는 불만이 팽배했다.
비근한 예로 노래방과 식당, 게임방 같은 업소들이 영업제한을 받을 때 대기업이 운영하는 백화점이나 대형마트, 아울렛 같은 시설은 왜 행정명령을 받지 않느냐는 것이다. 사람이 몰려도 더 많이 몰리고 그러다보면 전염병 전파의 위험이 오히려 더 큰데 왜 우리만 못살게 구느냐는 문제의식이다.
한국자영업자협의회 이재인 사무국장은 7일 CBS인터뷰에서 청소년 방역패스 도입(2월 1일)과 관련해, "청소년보다 몇 배 더 나온 종교시설과 요양시설 등을 잡아야지 청소년에게 방역패스를 하면 효과가 있느냐"고 반문했다.
"코로나 발병 2년이 다된 지금 그동안 축적된 빅데이터를 토대로 확진자 출처를 파악해 방역을 강화해야 할 정부가 코로나 초기의 고위험 시설만 갖고 쥐어짠다. 빅데이터는 뒀다 뭐하는 지 모르겠다"는 비판도 덧붙였다.
"코로나 초기 고위험시설만 못살게 굴어"
대학로 노래방의 경우 그나마 완전히 영세한 규모가 아니고 또 맞벌이 부부여서 노래방이 문을 닫더라도 생계의 대안이 있는 경우였다. 1일 매출이 1,2백 ~ 수백만원 수준인 영세 업소들은 영업규제가 곧바로 생존권 문제로 직결된다. 코로나가 휩쓴 지난 2년 동안 한국에는 추풍낙엽 신세의 영세 자영업자가 부지기수였다.한국기업데이터가 KB카드의 전국 260만개 가맹점 매출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숙박.음식점의 2020년 매출은 2019년 대비 86%, 여행 등 서비스업 59%, 여가스포츠 77% 수준으로 떨어졌고 2021년 역시 비슷한 수준을 보이고 있다.
중소벤처기업부 통계를 보면, 지난 2020년 사업정리 컨설팅, 점포 철거 지원을 받은 자영업자가 각각 1만 681건, 1만 1535건이었고, 올해는 9652건, 1만 2851건으로 예년에 비해 급증했다.
연간 지원된 예산도 300억원에 이른다. 정부가 폐업지원사업을 코로나 상황에서 희망리턴패키지로 확대 개편한 것도 증가 원인이지만 제도 개편 또한 쏟아지는 자영업자 때문이었다.
단계적 일상회복 조치가 오미크론 변이 출현으로 중단되자 자영업자들은 어찌해 볼 도리 없는 상황에 또다시 좌절하고 있다. 연말연시와 크리스마스, 신정연휴로 이어지는 특수가 물거품으로 변했지만 이를 벌충해 줄 어떤 수단도 없이 무기력하게 기다릴 뿐이다.
코로나가 드리운 양극화의 짙은 그림자
이들의 귓전을 때리는 최근의 수출 초호황 얘기는 먼 나라의 얘기로 들릴 뿐이다. 우리나라는 코로나 기저효과와 세계적 경기회복세에 힘입어 지난달 수출액 604억달러로 월 기준으로 사상 첫 600억 달러 고지를 넘어섰고 무역흑자는 19개월 연속 흑자를 이어갔다. 이대로라면 연말에는 또다른 역대 최고기록이 확실시되는 상황이다.
중소·중견·대기업 가릴 것 없는 수출 호황은 기업과 사원, 주주들의 혜택으로 이어지고 연말 두둑한 보너스로 이어질 것이란 기대가 나오지만, 영세 자영업자들에겐 그림의 떡이자 코로나가 만들어낸 양극화의 짙은 그림자일 뿐이다.
정부가 퍼부은 코로나 지원 예산은 2020년 4차례 추경으로 67조원이었고 이 가운데 2번은 전국민 지원 형식이었다. 자영업 협의회 지적대로 코로나시대 2년 이면 쌓인 데이터도 많고 그만큼 정부의 양극화를 고려한 지원방식도 정교해질 법하지만, 돈은 돈대로 쓰면서도 불만은 더욱 커지고 있다.
위험수위에 이른 국가부채를 감수하면서도 연초 추경 얘기가 나오는 건 그만큼 어렵고 추운 곳이 있기 때문. 그렇다면 정말 필요한 곳에 필요한 만큼 지원이 이뤄지도록 이제라도 정교한 지원책이 나와야 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