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 '형사책임 감면' 여전한 이견…일선 "기대" vs 시민단체 "남용 우려"

'인천 흉기 난동' 사건 이후 급물살 탄 경찰 '형사책임 감면'
일선 경찰관 "현장에서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될 것"
시민단체 "경찰 권한 남용에 대한 면죄부로 귀결될 수 있다"
법안 일단 제동…국회 법사위 이견 못 좁히고 '계류'

흉기 난동이 벌어진 인천의 한 빌라. 연합뉴스
최근 '인천 흉기 난동' 사건에서 경찰관들이 현장을 이탈해 '부실대응' 비판이 제기되는 가운데, 국회에서는 경찰의 직무 수행 중 발생한 피해에 대해 형사책임을 폭넓게 감면해주는 법안에 대한 논의가 이어지고 있다. 사건 발생 이후 소관 상임위인 국회 행정안전위원회에서 여야 큰 이견 없이 통과돼 '급물살'을 탈듯 했던 법안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이견을 좁히지 못하며 일단 계류된 상태다.

법안을 둘러싼 논쟁은 불붙고 있다. 일선 경찰관들은 "법안으로 보호받는다면 현장에서도 적극적으로 대응하게 될 것"이라며 환영하는 분위기지만, 시민단체 등 일각에서는 "논란이 된 경찰의 대응이 형사책임 감면 조항이 없어서 발생한 것은 아니"라며 "경찰 권한 남용에 대한 면죄부로 귀결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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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대 경찰관 "1년에 한 번 꼴 독직폭행으로 피소…소극적일 수밖에"


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전체회의를 열고 '경찰관직무집행법'(경직법) 일부 개정안을 안건으로 상정한 뒤 논의를 이어갔지만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에 참석한 김창룡 경찰청장은 "고의·중과실이 아닌 불가피하고 필요 최소한도 내에서 경찰 직무 행위의 형사 책임을 감경하거나 면제하는 조항을 통해 현장 경찰관들의 적극적 법집행을 할 수 있게 뒷받침하는 취지에서 법안이 제안됐다고 생각한다"고 밝혔다.

반면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면책 범위를 넓혀야 한다는 시대적 정당성은 있다"면서도 "인권이 과도하게 침해될 위험성은 항상 경계해야 하기 때문에 신중한 입장"이라고 밝혔다.

법사위는 개정안을 계류하고 다음 전체 회의에서 논의하기로 했다. 개정안 통과가 일단 제동이 걸리면서 법무부, 시민단체 등과 논의를 이어가야 하는 상황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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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안은 경찰의 직무집행 중 발생한 피해에 대해 고의적 중과실만 없다면 형사 책임을 면제해주는 것이 골자다. 구체적으로 '경찰관이 범죄가 행하여지려고 하거나 행하여지고 있는 긴박한 상황을 예방하거나 진압하기 위한 직무를 수행하는 과정에서 타인에게 피해가 발생한 경우'에 한해 형사책임을 면제 받을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일선 경찰관들은 환영하는 분위기다. 한 지구대 A순경은 "근무하다 보면 많은 사람이 체포 과정에서 경찰관을 독직폭행 등으로 고소하곤 한다"며 "파출소나 지구대마다 일 년에 한 번 꼴로 그런 일이 있다. 그런 걸 한번 당하면 사기가 매우 저하되고 이후 현장에서 대응하기가 쉽지 않다. (개정안이 통과되면) 부담을 좀 덜 것 같다"고 말했다.

형사과장 B경정 또한 "형사책임 면책에 대해 전체적으로 찬성하는 분위기다. 사실 지금보다 더 세게 법 개정을 원하는 목소리도 있다"며 "현재는 '형사 책임을 면할 수 있다'고 돼 있는데, 이는 자의적으로 해석될 수 있고 검사가 검토할 때 바뀔 수도 있는 부분이다. 민사책임은 그대로 남는 것도 현장 경찰관들에겐 부담스럽다"라고 토로했다.

서울 지역의 한 경찰서 강력계장 C경감 역시 "실질적으로 우리나라의 공권력은 매우 약하다. 현장 나가면 주취자들이 경찰관을 우습게 알아서 법 집행하는 데 어려움이 많다"며 "마음 편하게 법 집행을 할 수 있게끔 힘을 주면 좋겠다"고 토로했다.

다만 '형사책임 감면'만으로 실질적인 변화를 이끌긴 어렵다는 지적도 나왔다. A순경은 "만약 테이저건을 쓰게 될 경우 이후 어디에 쐈는지 등 다 적어야 하고 제출해야 할 서류도 많다"며 "고소 같은 것을 당했을 때도 조직에서는 방어를 잘 안 해주는 편이기도 하다. 검사한테 불려가서 조사받을 때 개인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등도 부담으로 작용한다"고 털어놨다.

서울 지역의 한 지구대 팀장 D경감 또한 "면책 조항이 생긴다고 하더라도 전부 소극적일 것으로 보인다"며 "우리가 총을 쏠 때 겁나는 것은 범인이 죽고 살고의 문제가 아니다. 구경하거나 지나가던 사람들이 그 유탄에 맞기라도 하면 감당이 안 되는 것이다. 법이 바뀌어도 아무 소용이 없을 것 같다"고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이어 "결국 무력 교육 등을 실전적인 방향으로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체포술을 매트 위에서 하루 종일 수천번씩 하더라도 소용없다. 액션을 다 짜놓고 하는 것이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도움이 안 된다"며 "계단에서 부딪혔을 때, 복도에서 마주쳤을 때, 작은 사무실에서 탁자를 사이에 두고 마주쳤을 때 등 상황별로 어떻게 해야 할지를 교육하는 게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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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단체 "면책 범위 포괄적, 경찰 자의적 판단 위험…물리력 남용 우려"


시민단체 등은 해당 조항이 통과될 경우 경찰의 권한 남용에 대한 '면죄부'가 될 것이라며 거세게 우려하고 있다.

인권운동사랑방, 참여연대 등 10개 시민단체가 모인 '경찰개혁네트워크'는 전날 국회 정문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국회와 경찰은 경직법 개정안을 충분한 사회적 논의 없이 일사천리로 추진하고 있다"며 "해당 개정안은 감면대상인 직무범위와 피해의 범위가 포괄적으로 규정돼 있어 경찰의 물리력 남용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법사위에 올라간 경직법 개정안은 경찰의 자의적인 판단으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으로 가득하다"며 "'범죄가 행하여지려고 하거나 행하여지고 있는 긴박한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가. 교통단속·순찰 등 초동조치부터 대테러·정보수집 등 시민의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관계된 모든 영역에서 경찰에 의해 어떤 피해가 발생해도 면죄부를 받겠다는 의미"라고 지적했다.

이어 "형사책임 감면에 대한 재량권의 범위가 과도하게 포괄적"이라며 "심지어 그 세부내용을 경찰이 스스로 시행령으로 구성하겠다고 하니 가당치 않다"고 덧붙였다.

특히 최근 발생한 '인천 흉기 난동 부실 대응' 사건에서 보듯 형사책임 감면의 문제가 아니라 교육 등을 통한 '현장 대응력 강화' 방안이 먼저 논의돼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참여연대 권력감시팀 최재혁 선임간사는 "경찰의 직무집행이라는 것이 물리력뿐만 아니라 여러 가지 강제가 동원되기 때문에 조금만 지나치더라도 인권침해나 재산·신체·생명에 대한 피해로 귀결이 될 수 있다"며 "현장에서 상황을 얼마나 정확하게 판단하고 어떻게 현장에서 적법하게 법을 집행할 수 있는지 등 전문성을 갖추기 위한 교육 등이 선행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이런 훈련·교육에 대한 인원 충원, 조직차원에서의 업무 지원 등이 논의가 충분히 되고 갖춰진 다음에야 (물리력 행사 등에 대한) 논의가 이어질 수 있는 것"이라며 "물리력 행사가 최우선으로 논의되는 대안이 될 수는 없다"고 지적했다.

이미 현행 법률만으로도 경찰관의 정당한 직무수행은 면책되기 때문에 별도의 규정이 필요하지 않다는 의견도 있다. 형법은 '법령에 의한 행위 또는 업무로 인한 행위는 벌하지 아니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법무부 또한 행안위에 제출한 의견에서 "현행법상으로도 직무상 행위는 면책될 수 있다. 유사 직역 공무원들과의 관계에서 경찰에게만 형사책임 면책·감경 규정을 두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검토가 필요하다"고 밝힌 바 있다.

한편 형법상 면책의 범위에는 '일부 과실'은 인정되지 않는 등 한계가 있다는 반론도 있다. 전국경찰직장협의회 민관기 대표는 "범인에게 '총·칼 버려'라고 세 번 이상 경고한 뒤 총을 쏴야 한다는 매뉴얼이 있다고 치자. 만약 경찰이 한 번만 외치고 총을 쏴서 범인이 죽었을 경우 손해배상 청구 소송이 들어오면 30%의 경찰 과실이 잡힌다"며 "이때 국가는 20%만 내주고 10%는 결국 경찰 개인이 배상해야 한다. 누가 적극적으로 현장 대응을 하겠나"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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