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미국, 일본의 정관계 인사들과 석학 등과 함께 동북아를 둘러싼 각종 현안에 대한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최종현학술원이 출범시킨 1.5트랙(반민반관)의 집단지성 플랫폼으로 이번이 첫 행사였다.
학술원이 주최한 행사지만 학술원의 이사장을 겸하고 있는 최 회장이 이번 포럼을 기획하고 준비도 진두지휘했다고 한다.
대기업 총수가 미국에서 비즈니스와 무관해 보이는 포럼을 연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사실 SK는 미국에서는 생소한 기업에 속한다.
삼성, 현대차, LG와 달리 소비재를 판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최 회장 조차도 이번 포럼 환영사에서 "SK 회사명이 사우스 코리아(South Korea)에서 따온 것이냐는 질문을 가끔 받는다"는 우스갯소리로 회사명을 각인시키려 했다.
그런데도 이번 포럼에 미국 정관계의 내로라하는 사람들이 모였다.
커트 캠벨 백악관 NSC 조정관 등 현직 백악관 고위 인사들, 존 오소프 상원의원 등 정치권 인사들, 척 헤이글 전 국방부 장관과 리처드 아미티지 전 국무부 부장관 같은 전직 고위 관료 등 한자리에 모이기 힘든 유력 인사들이 대거 참석했다,
최 회장이 이번 행사를 위해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짐작케 하는 이름들이다.
행사 준비 때문이었는지 최 회장의 입술도 부르터 있었다.
그는 워싱턴 한국 특파원들과 잠시 만난 자리에서 "힘들었다"고 인정했다.
그는 "오미크론 때문에 제대로 행사가 진행될까 상당히 우려했는데, 많이들 참석해 주셨다. 코로나 시국에 이 정도 규모의 모임은 워싱턴에서 처음이라고 들었다"고 말했다.
이번 포럼은 △미중 경쟁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 △북한 비핵화 △과학기술 혁신이 국제 질서에 미치는 영향 △글로벌 공급망의 미래 등 5개의 주제를 세션으로 나눠 다뤘다.
대체 최 회장은 왜 이런 묵직한 행사를 기획했을까?
"30년간 회사를 경영하면서 지정학적 리스크를 느낀 때가 많았다.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여기에 기후변화 같은 예정된 리스크와 코로나 사태 같은 예상하지 못한 리스크도 닥치고 있다. 그렇지만 지정학적 리스크는 사람이 만든 거니까 사람이 해결할 수 있다. 다만 정부, 기업이 따로 기능하는 지금의 체재로는 어렵다. 기업과 국가가 서로 협력해 해결책을 모색해 볼 필요가 있다. 우리의 책임이기도 하다"
그가 말한 '지정학적 리스크'가 SK 기업 경영에 실제로 영향을 주느냐는 질문에도 그는 주저 없이 답했다.
미중간 갈등으로 생긴 반도체 공급망 문제를 예로 들었다.
그는 국가간 갈등에 기업이 역할하는 것은 다시 국가에 도움이 된다는 논리를 전개했다.
"기업들은 온갖 종류의 시나리오를 만들고 그런 상황(국가간 갈등)이 생기면 그에 대응할 방법을 찾는 것 밖에는 전략이 없다. 이번 TPD(환태평양 대화) 같은 자리에서 그 해법을 찾을 수도 있다. 서로를 최소한 이해하기 시작하면 갈등은 줄어들지 않겠나. 그 것은 기업이 사회적 가치를 만드는 것과도 비슷하다. 이런 가치를 이웃국가, 동맹들과 같이 만들어내면 대한민국도 훨씬 더 좋아질 기회가 있다고 생각한다."
한미동맹 같은 국가간 동맹처럼 한미 재계 차원의 동맹도 구상하고 있느냐는 질문이 뒤따랐다.
그는 "(구상이) 없는 것은 아니다"며 "기업끼리도 서로 채널이 있거나 아이디어가 있으면 같이 움직여 서플라이 체인을 구성하고 변화를 주는데 훨씬 효과적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대답했다.
SK가 이렇게 미국에 '올인'하면, 혹시 중국에 밉보이는 건 아닐까?
이런 의문에 대해서도 최 회장은 "북경포럼, 상해포럼 등 중국과는 이미 더 많은 교류를 해왔다"고 전했다.
사실 최 회장은 두 딸을 베이징에서 고등학교를 졸업시켰을 정도로 일찌감치 중국의 부상을 준비(?)해왔다.
최종현학술원은 이번 '환태평양 대화'를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고 정기적으로 이어간다는 계획이다.
한편, 이번 포럼 첫날 만찬장에서 최 회장은 영어로 환영사를 했다.
그의 영어는 유창했지만 "영어를 못한 아버지 때문에 영어가 변변치 않다"고 농담을 던지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