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한 번째 정규앨범 '영원한 사랑'의 두 번째 트랙 '영원한 사랑' 소개 글을, 김윤아는 이렇게 썼다. 여덟 번째 앨범을 만들던 중 뇌 신경마비가 찾아왔고, 이 앨범이 마지막 앨범이 될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건강을 조금씩 회복하고 나서, 그는 "더 이상 전에 했던 식으로 음악 해서는 안 되겠다"라고 생각했다.
지난달 26일 발매된 자우림 11집 '영원한 사랑'은 김진만(베이스), 이선규(기타), 김윤아(보컬) 세 사람이 모두 '만족'했기에 세상에 나올 수 있었다. 올해 데뷔 24주년을 맞은 밴드 자우림의 커리어가 이것으로 마침표를 찍는다고 해도 좋을, 후회 한 점 남지 않은 앨범. 앨범 발매를 앞두고 진행한 화상 인터뷰에서, 자우림은 앨범을 향한 애틋함과 자부심을 숨김없이 드러냈다.
1997년 '퍼플 하트'(Purple Heart)로 데뷔한 이래 자우림은 주로 정규앨범을 냈다. 가끔 싱글과 미니앨범도 있었지만 자우림 음악의 근간은 열 곡 이상, 많게는 열다섯 곡이 실렸던 꽉 찬 정규앨범에 있었다. 고민이 없던 건 아니었다. "한두 곡 정도 사랑받으면 운이 좋은"(이선규) 정규앨범의 운명에 회의도 느꼈고, 속도 상했다. 그럼에도 다시 돌아, 열두 곡이 만들어졌다.
"앨범에서 한두 곡만 알려지고 나머지는 소모적인 느낌이다 하는 것은 데뷔했던 20세기에도 마찬가지였던 거 같아요. 어떤 얘기가 (앨범으로) 나와도 대중분들 아시는 곡은 거의 한두 곡, 그거면 운이 좋은 거죠. 만드는 입장에서는 정규앨범이 역시 즐거워요. 제가 하는 모든 직업적인 일을 통틀어서 곡 작업과 앨범 구상에 담겨요. 물론 굉장히 힘든 작업이지만 이게 재밌어서 그만둘 수 없는 부분도 있고요. 작은 앨범, 두 곡짜리나 세 곡짜리 EP(미니앨범)를 내려면 '이게 지금 최고의 곡이야!' 하는 확신이 있어야 추릴 수 있는데 저희가 그걸 못해요. 그래서 한두 곡 써서 '이거 내면 되지' 하면 너무 성의가 없고 여러 곡 만들어서 추려야 하는데 그때 뭘 골라야 하는지… (일동 웃음) 가능성이 많은 열두 곡짜리 앨범을 내는 느낌이에요." (김윤아)
'조그마한 앨범'을 내려고 해도, 결국 '열두 곡 아니면 안 돼!'가 되는 과정이 궁금했다. 김진만은 "이 노래 다음에 이건 안 돼 하는 게 있고, 다들 무조건 그(곡)거네 하는 게 있다. 정해지는 흐름이라는 게 있다"라고 말했다.
이를테면 앨범의 시작은 꼭 '페이드 어웨이'(FADE AWAY)여야 했다. 김윤아는 직접 쓴 앨범 소개 글에서도 '페이드 어웨이'가 자우림 11집의 첫 단추라는 점을 명시했고, 인터뷰에서도 "앨범의 시작을 만든 곡 중 하나"라고 밝혔다. '페이드 어웨이'에 나타난 단어는 2번 트랙 '영원한 사랑', 3번 트랙 '스테이 위드 미'(STAY WITH ME), 11번 트랙 '에우리디케'(EURYDICE)로 이어진다.
"11번 트랙이 '에우리디케'라는 곡인데 그리스 신화 오르페우스-에우리디케 이야기에서 주제를 얻은 거예요. 에우리디케는 죽었잖아요. 사랑하는 아내를 찾으러 오르페우스가 지옥으로 내려가요. 영계의 왕 앞에서 에우리디케 지상으로 오는 듯했지만 한순간의 실수로 사랑하는 사람을 잃게 되는 이야기인데 이 이야기는 죽음을 관통하는 사랑이라고 생각해요. 그다음에 이어지는 곡이, 김진만 선생님의 결혼식을 위해 제가 축가로 만든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이고, 이어져 있어요. 이 노래는 '더 이상 우리는 혼자가 아니고, 손을 맞잡고 이 손을 놓지 않고 같은 길을 걸어갈 거야, 불행한 일도 있겠지만 우리는 함께 있을 거야,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하는 노래인데, 영원하단 뜻이에요. 이 노래의 마지막은 '세상이 끝날 때까지'고, 다시 ('페이드 어웨이'로) 돌아오면, 화자가 '사랑한다고 말해줘 어떤 외로움들은 혼자선 삭일 수 없어'라고 해요. 이야기를 연결하면서 저희끼리는 굉장히 즐거웠어요. (웃음)" (김윤아)
타이틀곡 '스테이 위드 미'는 "아카펠라 후렴구에 이어 리드와 기타가 함께 엮어나가는 인트로 파트가 밤의 해안도로를 드라이브하는 것 같은 사운드를 내는 곡"이자 "일렉트로니카도 순수한 밴드 사운드도 포크나 팝 사운드도 모두 다 잘 어울려서 여러 버전의 편곡을 하고 고민하다가 지금의 형태로 완성"(모두 김윤아가 쓴 앨범 소개 글)한 곡이다.
'가능성이 많은 열두 곡' 중에서 타이틀곡은 어떻게 선정됐을까. 우선 멤버들은 다 빠진다. 김진만은 "500번 이상 들었기 때문에 판단이 불가하다. 주위 분들이 듣고 어떤 곡이 좋은지 모니터하는데 젊은 20대 여성분들이 압도적으로 '스테이 위드 미'가 너무 좋다, 타이틀곡이다 하는 비율이 높았다"라고 설명했다.
2번 트랙 '영원한 사랑'에도 보탤 얘기가 많다. 타이틀곡 외에 자우림이 직접 소개하고 싶은 곡을 물었을 때 이선규와 김진만은 '영원한 사랑'을 꼽았다. 두 사람은 이번 앨범에서 가장 좋아하는 가사를 물었을 때도 '영원한 사랑'의 한 구절인 "영원한 사랑 따위"를 언급했다. 이선규는 "자우림이 어떤 팀이냐 했을 때 (답)할 수 있는 곡"이라고 밝혔다.
김진만은 '영원한 사랑'과 함께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를 추가했다. 그는 "윤아가 축가로 만든 곡이다.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곡이라고 생각하는데 사람들은 차갑다고 하더라"라고 말했다. 그러자 김윤아는 "들으시는 분들 취향을 맞추는데 이분(김진만)이 시니컬하셔서 맞춤 축가였다. 그 노래가 좀 차갑긴 하다"라고 해 웃음을 자아냈다.
김윤아는 4번 트랙 '뻬옹뻬옹'(PÉON PÉON)을 꽤 어렵게 작업했던 곡으로 기억했다. '빼옹뻬옹'은 김윤아가 기르는 막내 고양이 뻬옹이를 모티프로 한 곡이다. 선천적으로 신장 조직이 생성되지 않아 기대 수명이 짧은 고양이를 주인공으로 삼았지만, 노래는 아주 힘차고 흥겹다. 김윤아가 이 앨범을 통틀어 가장 좋아하는 가사('살아있는 동안엔 춤을 추는 것이오')가 들어있는 노래이기도 하다.
"영원히 사랑할 거라고" 말해달라 요청하다가('페이드 어웨이'), "영원한 사랑 따위"라고 조소하고('영원한 사랑'), 이내 "내일은 너무 멀어 지금 바로 여기 있어" 달라고 호소('스테이 위드 미')하고는, "오늘은 연인이 되자 영원한 연인이 되자 죽을 듯 사랑해 보자"('필 플레이 러브')라고 굳세게 다짐한다. 각 곡 화자가 무어라 말하는지 귀 기울이는 것, 이번 앨범을 조금 더 깊이 감상하는 방법 중 하나다.
김윤아는 이번 앨범에 '메시지'는 없다고 말했다. 메시지를 주기 위한 앨범은 따로 있다. 지난해 낸 미니앨범 '올라!'(HOLA!)다. 그 앨범으로 '괜찮아, 그냥 오늘을 잘 지내자'라고 했고, 이번 '영원한 사랑'을 통해서는 '이게 자우림이야, 이게 지금 우리야' 하는 걸 보여주고자 했다.
"저희가 공통적으로 가진 음악적 목표가 있어요. 딱 한 가지인데, 새로 앨범이 나올 때는 전작보다 좋아야 한다는 기준이에요. 좋다, 안 좋다 하는 건 너무 주관적인 거라 수치로 측정할 순 없으니까요. 그게 세 명이 다 충족됐다고 느꼈기 때문에 그 부분이 (이번 앨범의) 가장 큰 성취라고 생각해요. 앨범 전체를 잇는 이야기의 주제, 주제를 이어가는 방식, 사운드 메이킹한다거나 처음에 그렸던 청사진이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지켜봤을 때 작업적인 만족도가 굉장히 높았어요. 송 라이팅도 포함해서요." (김윤아)
이렇게 공들여, 애정을 쏟아부어 만든 앨범이지만 자우림 멤버들은 12집이 11집보다 더 좋게 나오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자우림의 정규 11집 '영원한 사랑'에는 '페이드 어웨이', '영원한 사랑', '스테이 위드 미', '뻬옹 뻬옹', '다다다'(DADADA), '샌디 비치'(SANDY BEACH), '잎새에 적은 노래', '필 플레이 러브'(FEEL PLAY LOVE), '다 카포', '디어마이올드프렌드', '에우리디케',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총 12곡이 실렸다. 지난달 26일 각종 음악 사이트에서 공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