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는 고발 사주 의혹의 핵심 피의자인 손준성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전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에 대한 영장 청구에서 거의 KO패를 당했다. 공수처는 지난 10월 말 처음으로 체포 영장이 기각되자 소환 조사 없이 구속 영장 청구를 했고 이마저 기각됐다. 당시도 체포 영장이 기각되고 바로 구속 영장 청구한 것과 관련해 비판이 쏟아졌지만, 공수처는 "선례가 없는 일이 아니"라고 선을 그었다.
첫 번째 구속영장이 기각된 후 손 검사에 대한 소환 조사를 실시하며 수사가 속도를 내는 듯 했지만 유의미한 진술이나 증거가 나오지 않은 것으로 전해지면서 힘이 빠졌다. 야권의 대선 후보를 입건한 사건이라 12월 초에는 마무리 지을 것이라는 관측이 나온 가운데 공수처는 손 검사에 대한 2차 구속영장을 청구했다. 손 검사와 판사 사찰 문건 의혹으로 소환 일정을 조율하는 과정이어서 다소 이례적이라는 반응이 나왔다.
1차 영장 청구서때보다 혐의가 구체화 됐지만, 2차 영장에서도 공수처는 고발장 작성 주체를 특정하지 못한 것으로 파악됐다. 2차 영장 심사에서 '고발장 작성 주체가 누구냐'는 재판부의 질문에 공수처는 "수사정보정책관실 소속 검사", "임모 검사인 것 같다", "특정하기 어렵다"는 등으로 답변을 계속해서 바꿨다고 한다. 그러다 여운국 차장검사가 "임모 검사가 (고발장을) 작성하고, 성모 담당관이 감수한 것으로 의견을 정리하겠다"는 식으로 답변을 마무리했다고 한다.
여 차장은 증거 인멸과 관련한 설명을 하던 중 "우리 공수처는 아마추어"라거나 "피의자는 특수수사 경력만 10년만 넘는데 증거 인멸을 훼손하려는 시도를 보인다"는 말을 한 것으로 전해졌다. 또 손 검사 측이 인권위원회에 진정을 제기한 것을 두고 "수사를 방해한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공수처 스스로 전문성 부족을 자인하고, 인권친화적인 수사를 강조했던 것과 반대로 피의자의 권리마저 인정해주지 않은 셈이다.
결국 법원은 2차 구속영장도 기각하면서 "방어권 보장이 필요한 것으로 보이는 반면 구속 사유와 필요성·상당성에 대한 소명이 충분하지 않다"고 판단했다. 직권남용 등의 혐의에 대해 사실 관계는 물론 법리적으로 소명이 안됐고 증거 인멸 우려도 없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손 검사는 서울 구치소에서 나오며 "거듭된 공수처의 무리한 구속영장 청구에 대해 현명한 결정을 내린 재판부에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공수처의 수사력 부족 논란이 거세지면서 야권 일각에서 제기됐던 공수처 존폐론은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다. 당장 국민의힘 전주혜 선대위 대변인은 "청부수사처 공수처는 존재 이유를 상실했다"며 "즉각 대선 개입 행위를 멈추지 않으면 이 땅에 설 자리가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법조계에서도 공수처의 무용론 또는 폐지론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김한규 전 서울지방변호사회 회장은 "준항고 인용에 잇따른 영장 기각은 최근 경찰이나 검찰에서도 볼 수 없는 모습"이라면서 "단순 수사 경험이 없다는 말로는 부족하다. 퇴로가 없어 폐지론이 대두될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전 회장은 "과거 검찰이 특수수사를 할 때 영장이 기각되면 언론 플레이를 하고 그러다 무죄가 나와 망신을 당하는 일을 되풀이 했다"면서 "그게 검찰의 폐해라서 공수처를 만든 것인데, 공수처도 아마 기소를 할 것으로 보인다. 검찰을 개혁하려고 공수처를 만든 건데 공수처가 그대로 흉내내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공수처는 필요 없다는 얘기가 나올 수 밖에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참여연대 공익법센터 소장을 지낸 법무법인 이공 소속 양홍석 변호사는 "고발 사주 수사가 세 달이나 진행되면서 공수처는 대외적인 신뢰와 권위를 잃었다"면서 "공수처의 신뢰를 무너뜨려 공수처의 수사가 필요없다는 여론이 높아진 데 대해 현재의 공수처 인적 구성원들이 책임을 져야 한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