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통사고 현장에서 눈을 뜬 한 남자는 거울에 비친 얼굴이 낯설기만 하다. 그는 자신의 이름은 물론 자신이 누구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 그런 그에게 낯섦을 넘어 황당무계한 일이 벌어진다. 내가 누구인지조차 모르는 남자는 다시 한번 낯선 얼굴의 남자 몸에서 깨어난다.
남자는 12시간마다 몸이 바뀐다는 사실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사람들이 자신을 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들의 연결고리는 바로 하나다. 모두 '강이안'이라는 사람의 뒤를 추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남자는 모두가 쫓고 있는 강이안이 바로 '자신'임을 직감한다.
영화 '유체이탈자'(감독 윤재근)는 기억을 잃은 채 12시간마다 다른 사람의 몸에서 깨어나는 한 남자가 모두의 표적이 된 진짜 자신을 찾기 위해 사투를 벌이는 추적 액션물이다. 이 영화에서 강이안 역을 맡은 배우 윤계상은 12시간마다 몸이 바뀐다는 설정을 위해 1인 7역에 도전했다.
몸이 바뀌는 설정, 그리고 추적 액션 장르에 걸맞은 리얼 액션과 카체이싱 등 폭넓은 연기와 액션을 선보인 윤계상을 최근 화상으로 만났다. 윤계상은 처음 시나리오를 접했을 때 느꼈던 황당함과 어려움을 현장에서 동료 배우들, 스태프와 함께 헤쳐 나갔다며 '유체이탈자'에 관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모두가 함께 만들어 간 강이안
윤계상은 12시간마다 몸이 바뀌는 유체이탈을 소재로 하는 시나리오를 읽고 난 후 "글은 진짜 어려웠다"며 "유체이탈을 해? 그런데 이게 어떻게 구현되는 거지? 어떻게 설명되는 거지?" 등 여러 질문이 머릿속을 떠돌았다고 말했다. 그럼에도 그가 영화 출연을 결심한 것은 재밌었기 때문이다.
그는 "스토리라인이 너무 재밌었다. 그리고 (완성된) 영화를 봤을 때는 오히려 더 쉽게 다가왔다고 생각한다"며 "시나리오에서는 굉장히 어려운 부분도 있었는데, 배우분들과 감독님 덕분에 영화가 괜찮게 잘 나온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어찌 보면 허무맹랑할 수 있는 유체이탈이라는 소재, 그리고 처음부터 자신이 누군지도 기억하지 못하는 강이안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그렇기에 어렵고 혼란스러운 상황을 관객들이 쉽게 따라오면서도, 강이안이 갖는 혼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표정이나 감정 등으로 설득시키고 쫓아오게끔 만드는 게 중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는 "강이안의 유일한 조력자인 노숙자(박지환)를 만나는 지점도 사실 되게 많이 헤매고 난 후 지친 상태에서 마주한 거였다"며 "그에게 '내가 누군지 모르겠다'는 대사를 하는데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그 지점에서 어떤 이야기를 전달할 것인지도 고민을 많이 했다"고 이야기했다.
윤계상이 1인 7역을 맡았다면 다른 배우들 역시 강이안의 모습까지 1인 2역을 소화해야 했다. 그렇기에 적어도 일주일에 3~4회 강이안이 깨어나는 인물을 맡은 배우들과 새벽 4시 정도까지 회의하는 날도 많았다. 회의를 통해 각자 역할에 대한 이야기는 물론 서로 아이디어도 내면서 함께 만들어갔다.
윤계상은 자신이 생각한 모습과 동료 배우들이 생각한 모습이 달랐던 점들이 재밌었고, 이를 통해 강이안의 모습이 다양해졌다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그는 "강이안을 혼자 설정하고 만드는 것보다 같이 하면서 더 다양하고 풍성하게 만들었다"며 "한마디로 현장의 모든 사람이 다 강이안이었다. 그래서 외롭지 않은 현장이었고, 모두가 같이 만든 역할이었다"고 말했다.
감정도 강도도 달라지는 맨몸 액션, 대역 없이 소화하다
연기적으로도 어려운 지점이 많은 영화였지만, '추적 액션'이라는 장르에 걸맞게 다양한 액션신이 등장하는 만큼 액션 연기 또한 만만치 않은 작업이었다.
맨몸으로 선보이는 타격 액션부터 짜릿한 긴장감을 안기는 추격 액션 그리고 총격 액션까지 윤계상은 거의 모든 종류의 액션을 아우르며 연기해야 했다. 여기에 각각 액션은 '12시간마다 몸이 바뀐다'는 설정에 맞춰 캐릭터는 물론 스토리까지 단계별로 차별화된 콘셉트를 설정해야 했기에 기존 액션보다 감정적으로도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 했다.
윤계상은 "본능적으로 강이안이었을 때를 몸이 기억하고 있다는 설정을 뒀다. 어떤 위기가 왔을 때 자동적으로, 본능적으로 할 수 있는 액션을 했다"며 "유체이탈을 해서 그 사람 몸에 들어갔을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배우들과 감독님이 모였을 때 회의를 많이 했다. 능력치는 순수하게 강이안에 맞게 하자고 해서 거기에 맞게 액션 연기를 했다"고 설명했다.
국가정보요원 에이스 강이안의 액션 강도를 스토리 초반, 중반, 후반부로 나누어 변화하는 인물의 감정선과 상황을 반영함으로써 액션의 변화를 보여줬다. 극 도입부에서는 자신에 대한 모든 기억을 잃은 강이안이 갑작스러운 위기 상황 속에서 자신도 모르게 발휘하는 본능적 액션을, 중반에 이르러서는 점차 자신을 찾아가며 몸이 기억하는 프로페셔널한 액션을 펼쳤다.
윤계상은 "액션이지만 사실 그 자체가 감정을 갖고 있다고 생각했다. 무조건 감정부터 시작해야 했다"며 "예를 들어 임지연씨가 연기한 문진아가 위기 상황에 처했을 때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뛰쳐나가 본능적으로 막으려고 움직인 액션이어야 했다. 그렇게 하나하나 다 설정을 체크하면서 움직였기에 액션에 각기 다른 느낌이 나지 않았나 생각한다"고 말했다.
"대역 없는 것이 '유체이탈자' 액션의 기본 콘셉트였다. 배우들의 호흡과 힘 싸움, 서로가 주고받는 감정 위주 액션을 담아내고자 했다"는 박영식 무술감독의 말처럼 '유체이탈자'의 모든 액션은 배우들이 대역 없이 직접 소화했다. 윤계상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대역을 쓰게 되면 액션은 멋있어도 얼굴이나 느낌이 조금 다른 것 같아요. 감독님이 대역 없이 직접 액션을 하면 조금 부족해도 굉장히 리얼하다고 말했고, 저 역시 그런 생각이었죠. 진짜 그냥 '이 장면에서 내가 할 수 있을 것 같아'라는 생각이 들면 무조건 했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다 하게 됐어요. 그럴 줄 몰랐죠."(웃음)
"지금을 살고 싶고, 나를 표현하고 싶다"
이름, 나이, 사는 곳까지,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는 강이안은 자신과 관련된 흔적을 찾기 시작한다. 그리고 끊임없이 나는 누구인지 질문하고, 자신을 뒤쫓는 사람들보다도 먼저 자신이 누구인지 찾아내기 위해 노력한다.
겉모습은 서로 다른 사람의 외양을 하고 있지만, 자신조차 기억하지 못하는 '진짜 나'인 강이안의 본질은 단 하나였다. 그리고 강이안의 본질은 그가 어디에 있든, 어떤 모습으로 있든 변하지 않는 것이었다.
윤계상은 이처럼 '나는 누구인가' '지금 우리는 어디에 있는가' 등의 물음에 대한 답을 계속해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많은 사람이 현재의 나를 살지 않고 있다. 너무너무 안타까운 게 과거에 얽매이거나 미래를 걱정하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한다. 가상의 무언가와 그 가치를 돈을 주고 사고 싶어 하는 세상이 된 거 같다"고 강조했다.
그는 "나는 현재 윤계상이 갖고 있는 지금을 살고 싶고, 나를 표현하고 싶다"며 "그런 나로서 살아가고 싶다. 그런 윤계상이 되고 싶고, 현재 윤계상으로 살고 싶다. 진짜 나의 모습을 보여드리면, 그게 가장 매력적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러한 가치를 높게 평가하는 세상이 되지 않았나 싶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그에게 영화 '유체이탈자'를 한 줄로 정리한다면 어떤 영화라고 말할 수 있을지 물었다.
"유체이탈을 해서라도 꼭 이루고 싶은, 꼭 간절히 다가가고 싶은 이유가 있는 영화!"(웃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