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반도체는 11월 누계로 이미 지난해 연간 수출액을 넘어서는 등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확산에도 사상 최대 무역 실적을 주도하고 있다. 다만 "미국의 반도체 주도권 강화에 따른 미국·일본·대만의 반도체 동맹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도전이 될 수 있다"는 진단이 나와 주목된다.
4일 업계에 따르면 국책연구기관인 대외경제정책연구원은 최근 '오늘의 세계 경제 - 한국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 리스크와 대응 방안' 보고서를 발표했다. 대외연은 미중 반도체 패권 경쟁이 심화되는 가운데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의 재편을 넘어 우리 경제에도 큰 영향을 미칠 수 있어 한국 반도체 산업의 공급망 구조와 리스크를 분석했다고 설명했다.
수출 주력상품인 메모리반도체, 대(對) 중국 수출이 71.3% 차지
지난해 우리나라의 반도체 수출액은 954억6천만달러로, 제1 수출국은 전체의 43.2%를 차지한 중국이었다. 2위는 18.3%의 홍콩으로, 중국과 홍콩을 합치면 61.5%였다. 이어 베트남(9.6%), 미국(7.9%), 대만(7.1%) 등의 순이었다.수출액 592억달러로 반도체 수출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메모리반도체만 따로 보면 중국 의존도는 더 높아진다. 중국과 홍콩으로 각각 50.3%, 21%를 수출해 중국이 전체 메모리반도체 수출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70%를 넘어간다.

대외연은 "우리 반도체 기업들은 중국에 생산거점을 두고 중국 내 진출한 다국적 기업과 중국기업의 반도체 수요를 충족시키며 성장해 왔으나, 이제 미국의 자국 반도체 기술 통제정책 방향에 따라 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진단했다.

반도체 장비 및 소재 수입은 대일 의존도 높아 공급망 '리스크'
지난해 한국의 반도체 수입액은 570억3천만달러로, 주요 수입 대상국은 중국(31.2%), 대만(20.4%), 일본(13.6%), 미국(11.0%), 싱가포르(6.5%) 등이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한 품목은 전체의 39.1%인 시스템반도체였고 메모리반도체(31.7%), 반도체 장비(13.5%), 장비용 부품(5.3%) 등의 순이었다.반도체 장비의 경우 일본으로부터의 수입이 39.3%(30억2천만달러)로 가장 많고, 미국 21.9%(16억9천만달러), 싱가포르 19.9%(15억3천만달러)로 각각 2, 3위를 기록했다. 반도체 소재 수입 역시 일본(38.5%), 중국(20.5%), 미국(11.3%), 대만(8.3%), 베트남(4.1%) 등의 순으로 일본에 대한 의존도가 가장 높았다.
대외연은 "한국은 당분간 일본 소부장 산업에 위존해야 하는 기술적 취약성으로 관련 품목의 공급망 관리에 주의가 필요하다"며 반도체 제조 기초 원료와 함께 반도체 공정 수입 품목 중에서 한 국가의 점유율이 50% 이상을 차지하는 품목은 공급망 리스크 대상으로 간주해 상시적으로 관리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미국은 바이든 행정부 취임 이후 반도체를 포함한 핵심 산업의 공급망을 자국에 두려는 강력한 산업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삼성전자 등 글로벌 반도체 기업을 대상으로 공급망 관련 설문조사를 실시한 것도 중국을 배제하고, 미국 중심으로 반도체 공급망을 재편하려는 전략의 일환이었다.
대외연은 "미국은 중국이 반도체 첨단기술에 접근하지 못하도록 동맹국과의 협력을 통해 중국을 포위하는 '디지털 만리장성'을 쌓아 철저하게 신기술 접근을 차단할 것으로 보인다"며 "미국이 주도하는 글로벌 반도체 공급망 재편 전략의 성패는 시장에 참여하는 글로벌 반도체 업체에 달려있다"고 전망했다.
'신냉전' 속에서 일본과 대만의 협력이 더욱 긴밀해지는 것은 우리에게는 위기가 될 수 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 업체인 대만의 TSMC는 일본의 대표 전자회사인 소니와 손을 잡고 일본 구마모토에 공동으로 반도체 공장을 짓기로 했다.
대외연은 "일본은 한국의 반도체 산업에 대해 지속적으로 견제할 것이고, 미국·일본·대만이 연계한 반도체 동맹은 한국 반도체 산업에 도전이 될 수 있다"며 "대일 의존도가 높은 품목에 대한 철저한 공급망 관리가 필요하며, 중장기적으로 원천기술 확보와 공급망 다변화에 심혈을 기울이며 동맹국과의 다각적인 외교 노력이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대외연은 마지막으로 반도체 산업 지원 법안의 처리와 함께 △반도체 R&D 인력 확충을 위한 대책 마련 △대학 반도체학과 신증설 △반도체 전문대학원 설립 △반도체 종합연구원 설립 △국제 공동 R&D 투자 촉진 및 외국 R&D 센터 유치 △수도권에 반도체 공장 입지 지원 △중소벤처기업의 고급인력 채용 지원 등의 정책을 제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