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노랑머리 한국인? 용감한 미국 北전문가들

한미 전문가 포럼, 북한문제 인식 차이 노정
우리측, 북핵문제 실패 원인 조곤조곤 비판
미국측, "모든 게 북한 탓" 판에 박힌 사고
우리 전문가들, 30년 넘게 북한문제 천착
미국 전문가들, 한글도 모르고 北이해한다?


30(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윌라드호텔에서 열린 윌슨센터 포럼. 워싱턴특파원단 제공
"북한이 장거리미사일 발사를 안했다고 칭찬해주는 것은 '오늘 살인을 안하고 강도짓이나 했으니 잘했다'고 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30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에서 열린 한 포럼에서 부르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선임연구원이 한 말이다.
 
포럼 연설자로 나선 우리측 외교안보 국책기관 원장들이 북미간 신뢰를 쌓기 위한 하나의 방편으로 종전선언이라도 하자고 제안하자 내놓은 반응이다.
 
클링너 연구원은 한반도 문제와 관련돼 언론에 자주 이름을 올리는 나름 전문가다.
 
그러나 이날 포럼에 참석한 우리측 인사들(홍현익 국립외교원장, 고유환 통일연구원장, 김기정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 누구도 북한을 칭찬하지 않았다.
 
북한을 모르고 칭찬할 수야 있겠지만 북한 문제의 본질을 누구보다 잘 꿰뚫고 있는 그들이 북한을 칭친할 일은 만무하다.
 
이들은 이날 미국의 대북 정책이 왜 30년간 실패해 왔는지에 대한 진단을 이구동성으로 했을 뿐이다.
 
그 진단에 미국에 대한 비판이 빠질 수 없다. 결국 클링너 연구원은 미국에 대한 비판을 북한에 대한 칭찬으로 오독한 것이다.
 
우리 인사들의 논리 및 주장은 이랬다.
 
▶ 대북정책 실패 요인들
△북한이 붕괴될 것이라는 잘못된 가정에 입각해 북핵문제를 대응했다.
△북한의 핵개발 동기는 미국과 북한의 적대관계라는 사실을 직시하지 못했다.
△전쟁을 종식하는 평화협상 대신 선비핵화라는 엉뚱한 목적을 설정했다.
△대북제재 만능주의에 빠져있다. 대북제재는 북핵개발의 명분이 된 측면이 있다.
△한미 모두 미사일 개발하며 시험 발사한다. 상호안보 관점에서, 대화 전략상, 북한 미사일 실험을 크게 문제 삼지 않으면 어떨까.
△북미간 불신의 골이 큰 만큼 종전선언으로 신뢰의 초석을 놓자.
북한의 입장이나 처지를 그나마 잘 이해하고 있는 남한의 대북 전문가들의 이 같은 성찰적 제안들을 클링너 연구원은 고질적인 '친북' 프레임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부르스 클링너. 헤리티지재단 제공
아무리 '새롭고 창의적인' 제안을 우리가 미국에 내놓아 본들 30년간 다람쥐 챗바퀴 돌 듯 한 이들의 냉전적 사고는 1인치도 움직이려하지 않는다.
 
이날 포럼에서 우리 인사들은 미국 사회에 만연해 있는 북한에 대한 뿌리 깊은 악마화의 경향을 비판하기도 했다.
 
북미간의 신뢰가 붕괴된 또 다른 원인 제공자가 바로 미국이라는 사실을 환기시켰다.
 
홍현익 원장이 총대를 멨다.

그는 우선 북핵문제가 1993년 북한의 NPT탈퇴에서 연유됐다고들 하지만 NPT탈퇴의 원인도 살펴봐야 하며 그 가운데 하나가 한미연합훈련이었다고 설명했다.
 
2005년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을 채택했을 때도 미국은 그 직전에 북한의 마카오 은행을 동결시켜 북한에 불신감을 심어줬다는 점도 제시했다.
 
이어 정권이 바뀌어 오바마 대통령이 통치할 때도 미국은 북한과 거침없고 직적접인 대화를 하겠다고 공언했지만 실제로 행동에 나선 것은 없었다고 했다. 그 역시 북한의 불신을 초래했을 것이라는 것이다.
 
김정은과 트럼프간 싱가포르 합의 역시도 북한은 행동으로 지키려한 반면 미국은 아무런 행동에 나서지 않았다고 꼬집었다.
 
미국에서는 잊었지만 북한으로서는 가슴에 새겼을 식언과 약속 파기의 사례를 하나하나 열거한 것이다.
 
왼쪽부터 고유환 원장, 홍현익 원장, 김기정 원장. 워싱턴특파원단 제공
사실 미국은 북한과 약속을 해놓고도 정권이 바뀌면 그 약속을 저버린 일이 많았다. 정권이 수시로 바뀌는 나라다보니 대북정책이 오락가락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럴 때 마다 북한은 행동대 행동으로 미국에게 보복 또는 앙갚음으로 대응했다.
 
그렇지 않아도 총부리를 겨눴던 사이라 일방의 불신은 상대의 불신을 낳는 불신의 악순환은 이렇게 북미간 외교사에 점철돼 있다.
 
이런 불신의 악순환을 놓고도 미국은 오로지 북한 탓만 하는 경향이 크다.
 
그런 의미에서 학자인 클링너 연구원의 상황인식은 진실과 동떨어져 있다.
 
연구자들은 자신이 깊이 모르는 일에 대해서는 겸손할 필요가 있다.
 
미국의 북한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 대다수는 한글을 모른다. 따라서 북한과 남한에서 생산되는 지식을 있는 그대로 섭렵할 수 있는 능력이 결여돼 있다.
 
상대의 언어조차 모르면서 상대방을 안다고 말하는 것은 오만과 다르지 않다.
 
이날 포럼에 참석한 40여명의 미국측 인사들은 대부분 또 다른 클링너 연구원들일 뿐이다.
 
그런 고유환 원장은 이날 이렇게 점잖게 꾸짖었다.
 
"동국대학교 북한학과 교수로 1994년부터 재직해와 내년이면 정년이다. 1994년은 1차 북핵위기 이후 북미제네바 합의가 나온 해다. 지난 30여년간 한국과 미국 역대 정부가 북핵문제 해결을 가장 우선수위에 두고 온갖 노력을 기울였음에도 현재까지 해결하지 못했다. 뿐만 아니라 북핵이 완성되는 상황에 이르렀다. 이제는 지난 시간 어떤 점 때문에 북핵 문제를 풀지 못했는지 반성을 해야 해결책을 낼 수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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