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헌법 평등이념에 따른 차별금지 천명했지만…14년간 제자리
차별금지법은 차별을 포괄적으로 금지하는 법이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대선공약으로 발표했고, 2007년 정부가 처음으로 발의했다. 14년이 지난 이번 정기 국회에서 과연 차별금지법은 통과될 수 있을지, 찬반 양측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14년 전 정부는 입법안을 제출하면서 "헌법의 평등이념에 따라 성별, 연령, 인종, 피부색, 출신민족, 출신지역, 장애, 신체조건, 종교, 정치적 또는 그 밖의 의견, 혼인, 임신, 사회적 신분 등을 이유로 한 정치적,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생활의 모든 영역에서 합리적인 이유 없는 차별을 금지, 예방하고 불합리한 차별로 인한 피해를 구제하기 위한 기본법을 제정한다"고 했다.
이를 통해 "헌법과 국제 인권규범의 이념을 실현하고 전반적인 인권 향상과 사회적 약자와 소수자의 인권보호를 도모하여 궁극적으로 사회통합과 국가발전에 기여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보수성향 기독교 단체를 중심으로 '차별금지법이 동성애를 정당화시킨다'는 등의 주장을 하며 지금까지 반대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과도한 차별 금지가 오히려 사회 통합을 해치고 국가 발전을 저해할 수 있다는 주장도 있다.
文대통령 "반드시 넘어야할 과제" 언급했지만…당청, 입법의지는 '글쎄'
문 대통령은 지난 26일 국가인권위원회 설립 20주년을 맞아 인권이나 차별 금지에 관한 기본법을 만들지 못한 데 대한 "한계가 있었다"며 "우리가 인권 선진국이 되기 위해서 반드시 넘어서야 할 과제"라고 법의 필요성을 강조했다.하지만 청와대는 실질적인 입법 촉구라기보다는 상징적 차원에서의 발언일 뿐이라고 해석의 선을 그었다. 무리한 입법 의지가 없다는 말이다. 청와대 관계자는 "갑자기 꼭 해야할 이유가 없지 않느냐"고 말했다. 코로나19 극복과 경제위기 극복 사이에 여력이 없다는 말이기도 하다.
여당도 의지가 없기는 마찬가지다. 더불어민주당 박완주 정책위의장은 지난 2일 차별금지법에 대해 "(논의를) 실행에 옮길 때가 됐다"며 "지금까지 논의 조차 못했는데 정의당과 우리당 이상민 의원 등이 법을 발의했기 때문에 의제에 대해 논의를 시작하겠다"고 말했다.
하지만 여당은 신중에 신중을 기하며 공론화가 우선이란 입장이다. 민주당 이재명 대선후보의 입법 강공모드에서도 차별금지법은 예외 사항이다. 민생 관련 법이 아닌 만큼 대선을 앞두고 굳이 교계 표심을 자극하면서까지 법안을 밀어붙일 필요가 없다는 판단 때문으로 보인다. 이재명 대선후보는 지난 8일 서울 종로구 한국기독교회관에서 한국교회총연합회 간부들을 만나 차별금지법과 관련해 "일방통행식의 처리는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한 바 있다.
게다가 여당은 지난 25일 '차별금지법 토론회' 참석자들을 반대측과 찬성 측 동수로 참석시켰다고 한다. 하지만 반대 측에서 동성애 혐오 발언 등이 나오며 수준 이하의 토론회를 개최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답도 내지 못할 토론회를 수십 번을 해봤자 무슨 소용이냐'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당 일각선단계적 차별금지 단계적 아이디어도…"시간끌기용 꼼수"
당 일각에서는 차별금지법의 단계적 입법 방안도 아이디어로 제시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영국 보수당의 방식처럼 개별 영역에 대한 차별금지법을 순서대로 입법한 뒤, 포괄적인 차별금지법을 추진할 수 있다는 것이다. 한국은 현재 장애인차별금지법, 남녀고용평등법 등을 가지고 있다.민주당 박 정책위의장은 토론회 모두발언에서 이같은 단계적 추진 모델을 소개하기도 했다. 그는 "영국 역시 인종, 성별, 장애, 동성 등 개별법을 통해 차별금지법을 만들어가면서 부족한 포괄적 차별금지법을 추진했다고한다"며 "또한 이념과 가치의 설득보다는 국가의 이익, 사회적 이익, 회사의 이익 공동체의 관점에서 논의를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모든 논의의 기초, 논리는 철저한 데이터에 근거해 공감대를 만들어갔다고 한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