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일간 가족장으로 치러진 장례에선 전씨와 생전에 인연을 맺은 '5공 실세' 등을 중심으로 조문 발걸음이 이어졌다. 전씨의 빈소엔 보수단체 회원, 유튜버 등이 몰려들어 일부 소란이 발생했고, 5.18 관련 단체는 장례식장 인근에서 전씨를 향한 규탄 시위를 벌이기도 했다.
전씨의 사망을 두고 5.18민주화운동 진압 등에 대해 한 마디 사과 없이 떠났다는 논란은 여전한 모습이다. 부인 이순자씨가 발인 직전 사과 입장을 밝혔지만, 5.18 관련 단체 측은 "5.18에 대한 언급 없이 등 떠밀려 한 사과"라고 지적했다.
지지자들 모인 영결식…이순자 "남편 대신해 사과" 5.18 단체 측 "진정성 없어"
이순자씨는 발인에서 유족 대표로 추도사를 읽던 중 "남편의 재임 중 고통을 받고 상처를 입으신 분들께 남편을 대신해 특히 사죄를 드리고 싶다"며 사과 입장을 밝혔다.
이어 "돌이켜보니 남편이 공직에서 물러나시고 저희는 참 많은 일을 겪었다. 그럴 때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불찰이고 부덕의 소치라고 말씀하시곤 했다"며 "62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부부로서 함께 했던 남편을 떠나보내는 참담하고 비참한 마음을 이루 말할 수 없었지만, 고통 없이 편안한 모습으로 이 세상과 하직한 것은 감사해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남편은 평소 자신이 사망하면 장례를 간소히 하고 무덤도 만들지 말라고 하셨다"며 "또 화장해서 북녘 땅이 보이는 곳에 뿌려달라고도 하셨다"고 유언을 전했다.
전씨 지지자 중에는 두 손을 꼭 모으고 울먹이는 이들도 있었다. 경기도 분당에서 찾아왔다는 이모(66)씨는 "전두환 대통령 덕분에 경제도 좋고 살기 좋았다"며 "전 전 대통령에 대해 사과하라는 뉴스만 보면 속이 터진다"라고 말했다. 또 다른 지지자 김모(60)씨는 "전두환 대통령을 전두환씨라고 적는 언론은 무엇이냐, 부모도 없느냐"라고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지지자 중에는 현장을 관리하는 경찰에게 욕설을 하는 등 소란스러운 분위기가 연출되기도 했다.
전씨 운구차는 이날 오전 8시 17분쯤 빈소를 빠져나왔다. 지지자들은 "전두환 대통령님 사랑합니다, 존경합니다" 등을 크게 외쳤다. 운구차는 보수단체의 호위 속에 바로 장례식장을 빠져나가 화장장인 서울추모공원으로 향했다.
사과 없이 떠난 전두환…장례 기간 내내 '논란'
전씨 최측근인 민정기 전 청와대 공보비서관은 전씨가 사망한 지난 23일 전씨 자택 앞에서 브리핑을 열고 '5.18 피해자 유족에게 따로 남긴 말은 없느냐'는 질문에 "그 당시 전두환 보안사령관이 대통령도 아니고 계엄사령관도 아니고 지휘계통에 있지도 않았다"며 "발포 명령이라는 건 없다. 더군다나 그것이 보안사령관이 발포 명령을 했다는 거는 말도 안 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장례 기간 중 빈소에는 '5공 실세'와 지지자들을 중심으로 조문 발걸음이 이어졌다. 이들 대부분은 취재진들에게 "5.18민주화운동은 북한군의 개입"이라고 발언하는 등 역사 왜곡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5.18 관련 단체들은 장례식장 인근에서 전씨를 규탄하는 시위와 행진을 벌였다. 이들은 '사기정치 80년 쿠데타범 추모관 철거하라' 등의 문구가 적힌 피켓을 들었다.
장지 못 구해 유해는 연희동 자택으로
전씨의 유언대로 '북녘 땅이 보이는 곳'에 유해를 안장하려면 정부 측이나 관할 지자체, 필요시에는 군부대나 산림청과 협의를 해야 한다.
한편 1931년 1월 23일 경남 합천군에서 태어난 전씨는 1955년 육사 11기로 졸업한 뒤 군내 사조직 '하나회'를 만들고 출세 가도를 달렸다. 1979년 10월 26일 박정희 대통령 피살 사건 당시 합동수사본부장이 된 데 이어, 정권 찬탈을 위한 '12.12 군사반란'을 일으켰다.
전씨는 1980년 5.18 민주화운동을 유혈진압했으며 1988년 초까지 대통령을 지냈다. 퇴임 후 내란과 살인 등 혐의로 무기징역을 선고 받았지만 1997년 12월 특별사면으로 석방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