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ST(울산과학기술원) 4대 총장으로 취임 2주년을 맞은 이용훈 총장은 24~25일 울산과 서울에서 각각 기자간담회를 열고 인재육성에 대한 구상을 밝혔다.
그는 '격투기형' 학사교육을 도입해 실전형 인재를 육성하는 것이 국가 과학기술의 미래를 준비하는 과기원의 역할이라고 했다.
격투기형 교육은 실전에 필요한 기본기만 익힌 후, 링에 올라 직접 문제를 겪으며 배우는 교육방식을 말한다. 이 교육은 신속하게 문제 해결 능력을 기를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이 총장은 "팬데믹, 기후변화 등 인류를 위협하는 난제를 해결할 열쇠는 결국 과학기술에 있다"고 말했다.
이어 "현장에서 바로 문제를 마주하고 해결해나갈 수 있는 과학기술 인재의 공급이 더 빠르게 이뤄져야 하는 이유"라고 덧붙였다.
이 총장은 지난 2019년 11월 UNIST에 부임하면서부터 학사교육 혁신에 나서고 있다.
최신 분야를 신속하게 접할 수 있도록 하고 실전 경험까지 제공해 '과학기술계 BTS'를 육성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인공지능·디지털 시대에 맞는 과목을 개설해 학생들의 선택의 폭을 넓혔다.
2021년 2학기부터 시작된 '원 데이 렉쳐 시리즈'에서는 블록체인, 암 치료 등 학생들의 관심도가 높은 최신 분야 강좌를 제공하고 있다.
게다가 UNIST 학생들은 관련 연구를 심화할 수 있는 실전도 경험할 수 있다.
인공지능 스터디그룹을 지원하는 '인공지능(AI) 챌린저스 프로그램(AICP)'이나 '실전문제 연구팀' 사업을 통해 국제 학술 논문이나 기업의 고민을 푸는데 도전할 수 있다.
AICP에는 총 23개팀, 97명의 학생이, 실전문제 연구팀 사업에는 170명의 학생이 각각 참여하고 있다.
이 총장은 "연구와 산업 현장의 문제를 직접 마주한 학생들은 어떤 공부가 더 필요한지 스스로 느낄 수 있다"며 "자기주도적으로 문제를 발굴하고 해결하는 경험을 통해 우리 사회의 미래를 이끌 연구자, 창업자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울산의 전통적인 제조업 혁신을 통해 국가 산업의 미래를 바꿀 대안도 제시했다.
이 총장이 꼽은 제조혁신 클러스터의 핵심 키워드는 '인공지능(AI)'과 '탄소중립'.
기존 제조업에 인공지능을 접목해 스마트공장을 구현하고, 친환경 저탄소배출 제조기술을 보급해 미래 산업을 선도할 수 있도록 돕는 혁신 허브를 만든다는 구상이다.
울산의 서부 권역에 클러스터를 만들어 UNIST에서부터 인력양성과 연구개발을 시작하고, 인근 산업단지에 이를 바로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이 총장은 "인공지능을 중심으로 한 4차 산업혁명의 물결과 탄소중립경제로의 국제무역질서 변화는 우리 산업계가 피할 수 없는 미래"라고 했다.
그러면서 "걱정만 앞설 것이 아니라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해 미래 산업 선도의 기회를 잡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 이공계 교육 혁신에 주력해왔는데, 그 배경은?
우리나라 연구중심대학은 대학원 중심의 인재육성 체계를 갖고 있다. 학사과정 교육보다는 대학원 진학 이후의 연구과제 중심의 인재육성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1971년 개원한 KAIST가 정립한 방식이다. 문제는 과학기술 발전의 속도가 점차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대학원 과정에서 본격적인 연구를 시작하는 것은 늦었다. 이제 학사과정에서부터 발 빠르게 변화를 수용해야 하는 것이다. 이공계 교육은 더 이상 과거에 머물러선 안 된다. 빠르게 변화하는 기술혁신의 속도를 따라잡기 위해서는 과감한 변화가 필요하다. 학생들이 좀 더 빠르게 새로운 지식을 접하고,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분야에 흥미를 갖고 도전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를 위해 이공계 학사교육 혁신에 주력해왔다.
- 평소 강조하는 수직형 교육, 격투기형 학습은 무엇인지?
지금까지 우리 교육은 수평형 강의, 쿵푸형 학습의 형태였다. 기초를 탄탄히 하고, 심화학습을 거친 뒤, 응용으로 넘어가는 단계적 학습의 방식이었다는 의미다. 품새와 기본자세를 철저히 익히고 난 뒤에야 겨루기를 할 수 있는 쿵푸의 방식인 것이다. 한 분야를 익히기 위해서는 그만큼 오랜 시간과 인내가 필요했다. 반면 격투기형 교육은 기본기만 익히고 바로 실전에 오르는 방식을 말한다. 기본스텝과 잽만 익히고, 바로 실전에 나서며 스파링을 통해 배우는 방식이란 의미다. 어떤 분야에서 연구에 나선다고 하면, 그 분야 전반의 지식을 모두 익히기는 것이 아닌, 기초부터 응용에 걸친 지식 중 핵심만을 배운 후 직접 문제에 도전하며 필요한 부분을 채워나가는 것이다. 기초, 심화, 응용 중 핵심만을 꿰뚫는 수직형 교육은 새로운 분야를 좀 더 빠르게 익히고, 흥미를 가질 수 있는 방법이다.
- 육성하고자 하는 이공계 미래 인재상은?
알파고의 아버지, 데미스 하사비스 박사를 좋은 모델로 꼽는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천재 게임개발자였고, 이세돌과 세기의 대결을 펼친 구글 딥마인드를 창립한 인물이다. 그러나 주목할 것은 그의 업적이 아닌 새로운 문제 해결에 끊임없이 도전하는 그의 학습 스타일에 있다. 게임개발자 시절 케임브리지대학에서 컴퓨터공학을 전공했던 그는 인공지능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유니버시티 칼리지 런던에서 인지과학을 전공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는 스스로 해결하고자 하는 문제를 찾았고, 이를 위해 즉시 필요한 공부를 찾아 뛰어들었다. 주체적으로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혁신가. UNIST가 키워내고 싶은 인재상이다.
- 총장 부임과 동시에 '과학기술계 BTS' 육성을 목표로 삼았다
BTS의 성공비결로 두 가지를 꼽는다. 첫째는 자기주도적 마인드를 키운 것이다. 자신들이 성장하며 느낀 고민과 깨달음을 바탕으로 직접 곡 작업에 참여했던 과정이 팬들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두 번째는 최고의 육성 시스템을 갖췄던 것이다. 재능 있는 젊은이들이 각 분야의 대가로부터 수년에 걸친 지도를 받으며 인내했던 과정이 있었다. UNIST가 미래사회를 선도할 과학기술계 BTS 육성을 위해 노력할 부분도 이와 같다. 학생들이 스스로 관심을 갖고 문제를 설정할 수 있도록 돕고, 그 과정에서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는 것이다. 학생들이 스스로 관심 갖는 주제에 대해서 연구동아리를 결성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매년 100개의 동아리를 설립, 운영하는 게 목표다. 이들 동아리가 맘껏 연구하고, 창업할 수 있는 장소로서 '챌린지 융합관'을 조성하는 작업에도 박차를 가할 것이다.
최근 과학기술의 급격한 변화는 국가적인 의제로 계속해서 떠오르고 있다. 매년 새로운 기술변화의 충격이 사회를 강타하고 있는 것이다. 2018년 알파고 쇼크로 다가온 인공지능의 변화, 2019년 반도체 소재, 부품, 장비를 중심으로 한 무역분쟁, 2020년 코로나19로 인한 진단, 백신, 치료제 등 바이오헬스 산업의 부상, 2021년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탄소중립이 대표적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이 사회에 주는 충격은 특히 산업계에 큰 영향을 준다. 일례로 최근 국제사회는 탄소중립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경제체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시도를 하고 있다. 탄소 국경세를 신설하고, 친환경적이지 못한 산업에 불이익을 주는 방식으로 경제 질서를 재편하려는 시도다. 우리나라 제조업은 과거 산업시대에 빠르게 성장해 세계적 수준에 올라섰다. 이러한 성과를 꾸준히 유지하고, 또 한 단계 도약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혁신이 필요하다. 탄소중립, 인공지능의 부상에 대해서 우려하거나 겁먹기 보다는 이를 또 다른 기회로 생각하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UNIST는 대한민국 산업수도 울산에서 이러한 변화를 시작하고자 한다.
- 미래 산업을 준비하기 위해 집중해야 할 분야가 있다면?
인공지능(AI), 바이오헬스, 탄소중립의 세 가지를 꼽는다. 전 세계 유수의 대학들과 기업들이 이 세 가지 분야에서 선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기 위해 경쟁하고 있다. 이들 분야에서 앞선 위치를 차지한다면 혁신의 선두에 설 수 있다. UNIST는 이들 세 분야의 연구기반을 확충하고, 인재육성과 연구개발, 산학협력을 확대해나가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이들 분야는 울산의 기존 산업을 고도화하고, 또 새로운 산업 분야를 개척할 수 있는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된다. 인공지능(AI)대학원, 인공지능혁신파크, 반도체소재부품대학원은 디지털 뉴딜 분야를 이끄는 주체들이다. 인공지능 핵심 분야 연구는 물론 다양한 산업에 적용되는 인공지능 응용(AI+X) 분야에도 연구력을 집중하고 있다. 인공지능 발전의 토대가 되는 반도체 산업을 뒷받침할 연구개발과, 울산 지역 정밀화학 산업 고도화 역할도 수행하고 있다. 탄소중립은 전 세계적인 화두다. 기후위기에 대응하기 위한 친환경 에너지, 탄소포집 및 활용 연구에 많은 관심이 쏠리고 있다. UNIST는 국내 어떤 대학보다 탄소중립에 준비된 대학이다. 미래 에너지와 탄소활용 분야의 탁월한 연구력을 바탕으로, '탄소중립융합원(Carbon Neutral Institute, CNI)'을 신설해 관련 분야를 선도해나갈 계획이다. 지난 4월 UNIST는 울산 만명 게놈 프로젝트를 통해 바이오 빅데이터 구축 성과를 거뒀다. 최근에는 스마트 헬스케어 연구센터를 중심으로 미래 바이오메디컬 기술 역량 확보에 집중하고 있다. 이 센터는 추후 설립될 울산산재공공병원과의 연계를 통한 재활, 진단 분야 심화 연구를 추진해나갈 계획이다.
- 제조혁신을 위한 울산과 UNIST 만의 경쟁력은?
울산은 국내 최대 규모의 산업도시다. 자동차, 조선, 석유화학 등 주력산업을 중심으로 배후산업이 풍부하게 발달해있다. UNIST는 비록 역사는 짧지만, 탁월한 연구력을 바탕으로 주목받는 연구중심대학으로 성장했다. 영국 THE 세계대학평가에서 국내 5위, 세계 179위에 올라있고, 개교 50년 이하 대학 중에서는 세계 10위에 꼽힌다. 연구의 질을 평가하는 네덜란드 라이덴랭킹에서 5년 연속 국내 1위에 올라있는 것도 우수한 연구력을 증명해준다. 울산의 산업체들은 혁신에 목말라 있다. 인공지능혁신파크를 출범하며 시작한 재직자 교육, 산학공동연구, 스타트업 보육 사업에는 모두 모집규모의 2배가 넘는 기업이 지원했다. 그만큼 변화를 갈망하고, 바라고 있었다는 의미다. 인공지능을 도입하고 싶어도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던 기업들에게 UNIST는 새로운 기회가 됐다. 특히 앞으로는 탄소중립과 관련해 제조 기업들의 변화와 혁신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다. 친환경에너지, 탄소포집 및 활용 등 탄소중립 관련 기술 분야에서 앞선 경쟁력을 확보한 UNIST는 울산 지역의 기업들이 탄소중립에 대응할 수 있도록 돕는 든든한 발판이 될 것이다.
- 앞으로 추진할 제조혁신 방향은?
UNIST는 울산 지역 제조업 저변의 변화를 이끌어나가고자 한다. 이는 특정 제품이나 서비스를 개발하는 것이 아닌 뿌리로부터의 변화를 말한다. 제조업의 기반을 혁신하는 역할을 통해 산업 전반의 경쟁력을 강화하고, 미래를 도모할 수 있도록 돕겠다는 것이다. 울산은 주력 산업을 이끄는 대기업들과 함께, 이들 기업에 다양한 소재와 부품을 납품하는 배후산업이 풍부하게 발달해있다. 제조산업의 경쟁력을 강화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배후, 뿌리가 튼튼해져야 한다. 여기서도 핵심은 인공지능과 탄소중립이다. 인공지능을 접목한 스마트 공정의 도입은 생산의 효율성을 높이고, 불량률을 감소시키는 효과로 이어진다. 실제 울산에 공장을 둔 삼양사는 UNIST 인공지능혁신파크 재직자 교육을 통해 발굴한 연구과제로 설탕제조 공정의 효율성을 높이는 성과를 내기도 했다. 탄소중립은 공정에서 발생하는 이산화탄소 포집 및 활용, 신재생에너지의 도입 외에도 다양한 방면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예를 들어 탄소 발생량을 줄이기 위해서는 각종 소재의 경량화가 필수적이다. 더 가벼우면서 물성이 좋은 소재를 개발해 공급한다면, 탄소중립 시대에 발맞춘 경쟁력을 인정받을 수 있을 것이다. UNIST는 우수한 소재 분야 연구력, 산업 인공지능 분야 역량을 바탕으로 지역 제조 산업의 뿌리를 바꿀 수 있는 역할을 해나갈 것이다. 제조혁신 클러스터 등의 기반이 마련된다면 이는 더욱 가속화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