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은 비상계획 발동 시기가 이미 늦었고, 이대로라면 다음 달 말쯤 하루에 신규 확진자가 1만명 발생할 수도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비상계획 필요성 없다"던 정부…하루 만에 "검토 중"
25일 중앙사고수습본부에 따르면, 정부는 비상계획 발동을 검토하고 있다. 앞서 김부겸 총리는 전날 중앙재난안전대책본부 회의에서 "방역상황이 예상보다 심각해 수도권만 놓고 보면 언제라도 비상계획 발동을 검토해야 하는 급박한 상황"이라고 진단한 바 있다.전날(24일) 0시 기준 코로나19 신규 확진자는 4115명. 이는 기존 최다였던 18일의 3292명을 엿새 만에 갈아치운 것으로 하루 전인 2699명보다 1416명 폭증한 수치다. 산소호흡기 등을 쓰는 위중증 환자도 하루 만에 37명 늘어 역대 최다인 586명으로 집계됐다. 하루 이상 병상 입원을 기다리는 대기 환자도 778명에 달한다.
문제는 병상이다. 수도권 중환자병상 695개 중 582개가 사용 중으로 가동률은 83.7%에 달한다. 전국 모든 지자체 중 가장 많은 확진자가 나오는 서울은 중환자 전담병상 345개 중 298개가 차 가동률이 86.4%에 이르고 있다.
이같은 상황이 되자 정부는 그동안 유보적이었던 비상계획 카드를 만지작거리는 상황이다.
지난 23일까지만 하더라도 정부는 비상계획 검토 여부를 묻는 취재진 질문에 "당장 비상계획을 조치할 필요성까지 있다고 보고 있지는 않다"고 답했다. 비상계획을 실시하면, 단계적 일상회복을 중단하고 사회적 거리두기를 강화해야 하는데 이는 효율성이 떨어지고 요양병원 등 고위험시설 관련 방역을 집중적으로 강화하는 게 바람직하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전방위 감염이 속출하고 고령층 감염이 줄지 않자 비상계획을 검토하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가 "비상계획 이미 늦어…방역 실패했다"
의료계 및 방역 전문가들은 지금 비상계획을 실시해도 이미 늦었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수도권 의료 현장에서는 병상 문제가 정부의 판단보다 심각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이대목동병원 천은미 호흡기내과 교수는 CBS노컷뉴스와의 통화에서 "중환자 전담병상의 경우 아직 (전국적으로) 가동률이 80%가 안된다고 하지만, 70%를 넘는 순간 현장에서는 거의 '풀(full) 가동'되는 것이고 실질적으로 베드가 없는 상태"라며 "응급실에서 병상을 기다리다가 확진되기도 하는데, 의료진은 거의 울먹이고 있다"고 전했다.
고대구로병원 김우주 감염내과 교수도 "지금 환자로 하여금 입원하라고 병원에 보내도 받아주는 곳이 없다"며 "2~3주 길게 입원하는 환자가 계속 자리를 지키고 있고 중증환자가 사망해야 자리가 나거나 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치명률이 계속 오르고 사망자가 하루에 30~40명씩 나오는 상황을 두고 방역 실패가 아니라고 할 수 있나"라고 반문했다.
당장 비상계획을 발동해 사회적 거리두기 조치를 강화하더라도 당장 효과가 나타나지는 않기 때문에 많이 늦었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김 교수는 "(현재 유행 상황은) 폭우로 상류에서 홍수가 밀려 내려오고 수도권이 물에 잠기는 상황"이라며 "빨리 댐을 설치하든 우회로를 만들어야 한다"고 비상계획 발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순천향대학교 김탁 감염내과 교수는 "병상 확충을 포함한 의료체계 재정비, 3차 접종, 경구약제 도입까지는 최소 2개월 정도가 걸릴 텐데 그 시간 동안 사회적 거리두기 일부 방법의 재도입 없이는 대응에 한계가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난 한달 간 추세는 감염재생산지수 1.1 정도의 증가를 잘 반영하고 있다고 본다"며 "다른 개입이 없다면 12월말 쯤이면 일일확진자 1만 명에 도달할 가능성이 있다"고 경고했다.
"재택치료 대상 급격히 확대…추가접종도 늦었다"
이같이 각종 방역지표가 악화된 이유에 대해 전문가들은 △급격한 방역 완화 △추가접종(부스터샷) 지연 등의 문제를 정부가 간과했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우선 코로나19 백신 접종 확대로 유행이 안정화되기 전에 섣불리 일상회복 체제로 전환해 감염이 확대됐다는 분석이다. 이 과정에서 추석 연휴와 핼러윈데이 등과 맞물려 이동량이 급증했고, 이 여파가 최근 통계로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의료 대응여력이 부족한 상황에서 무증상·경증환자 치료를 위한 재택치료의 대상을 지나치게, 빨리 확대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문제는 대상이 급격히 많아지다 보니 재택치료 중 응급상황이 발생할 때 우리 의료체계가 이를 감당하기 어렵다는 점이다.
앞서 정부는 제한적으로 허용하던 재택치료 대상자를 지난 달 1일 70세 미만 무증상·경증 환자로 확대했다. 이후 한 달이 채 지나기도 전인 지난 19일, 예방접종을 완료한 70대 이상으로 대상을 늘렸다. 수도권을 중심으로 병상이 빠르게 차면서 병상부족 문제가 지적되면서다.
김 교수는 "50세 이하 백신 접종자와 같이 제한적으로 시행하다 점차 대상을 넓혔어야 했다"며 "우리가 벤치마킹한 싱가포르도 이렇게 제한적으로 시행했는데 너무 성급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현 상황은 재택치료가 아닌 '재택방치'와 다름없다고 꼬집었다.
추가접종 시기가 늦어 고령층을 중심으로 돌파감염이 활발하다는 점도 문제로 지적됐다.
일찍 접종을 시작한 고령층의 감염예방효과가 떨어질 것을 고려해 9~10월 정도부터는 추가접종을 실시할 수 있도록 접종일정을 짰어야 했다는 취지다. 겨울철에는 코로나19 바이러스 감염이 더 활발해지기 때문에 그 전부터 면역을 갖춰야 했다는 점도 근거로 제시됐다.
생활치료센터나 재택치료 대상자에게 항체치료제 사용을 확대하는 방안도 더 빨리 시행했어야 한다는 비판도 나온다. 항체치료제를 맞을 경우 중증화율을 효과적으로 낮출 수 있어 의료대응여력에도 숨통이 트일 수 있기 때문이다.
정부는 전날에서야 생활치료센터·요양병원 등에 항체치료제(렉키로나주) 투여를 확대하는 방안을 발표했다.
천 교수는 "항체치료제 주사를 맞고 집에서 대기하는 것과 (의료조치를) 아무것도 안 하고 집에 있는 것과는 70%의 중증화율 차이가 난다"며 "여태까지 그만큼의 중환자가 많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