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인간의 죽음을 두고 '죽음조차 유죄'라는 표현만큼 냉정한 평가도 없어 보이지만 심 후보의 이 한마디만큼 전 씨의 죽음에 대해 제대로 꿰뚫은 말을 찾기도 어려울 것 같다.
5.18 광주 민주화운동 당시 시민 학살이라는 씻을 수 없는 과오를 남기고도 잘못을 제대로 인정하지 않은 것은 물론 사과도 하지 않은 채 세상을 떠난 탓이다.
오히려 전 씨는 한때 유행한 말처럼 "왜 나만 갖고 그래!"라는 반응으로 살아생전 일관했다.
장례 절차와 조문 등을 두고 설왕설래가 이어졌으나 하루가 지나면서 별다른 잡음 없이 정리된 모습이다.
그만큼 전 씨의 갑작스런 죽음이 놀라운 소식이기는 해도 고인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이미 오래전 정해진 탓에 시끄러울 게 없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예우 차원의 국가장이나 국립묘지 안장은 해당 없음으로 결론 났다.
정부는 "국가장을 치르지 않기로 했다"며 "국가장을 하지 않기로 한 만큼 유족들이 가족장을 치르더라도 정부 차원의 지원은 없다"고 밝혔다.
이 같은 결정은 지난달 노태우 전 대통령의 장례를 국가장으로 치른 것과 사뭇 대조적이다.
국가보훈처는 국립묘지 안장 역시 노태우 전 대통령 때와 마찬가지로 "내란죄 등으로 이미 실형을 받았기 때문에 안장 대상이 아니다"라고 명확히 밝혔다.
대선 정국인 만큼 장례 절차와 함께 세간의 관심은 정치권의 조문 여부였다.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의 조문이나 추모 메시지는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했다.
민주당 이재명 후보는 예상했던 대로 "조문할 생각이 없다"는 뜻을 단호히 밝혔다.
반면 국민의힘 윤석열 후보는 "전직 대통령인데 가봐야 하지 않겠냐"라고 말했다가 여론을 의식한 듯 두 시간여 만에 조문하지 않기로 최종결정했다고 수정 공지했다.
윤 후보는 지난달 당내 경선 과정에서도 "전두환 대통령이 군사 쿠데타와 5.18만 빼면 정치는 잘했다"고 언급해 논란을 빚은 바 있다.
현재 신촌 세브란스 병원에 마련된 빈소에는 국민의힘 이준석 대표가 보낸 조화가 전시돼 있기는 하지만 5공화국 당시 관계자들만 오갈 뿐 정치권의 조문은 거의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장례·조문에 이어 전 씨의 사망으로 거액의 추징금 환수가 어떻게 될지 역시 관심사다.
"전 재산이 29만 원 뿐"이라고 주장해 온 전 씨의 전체 추징금은 2205억 원이다.
검찰은 이 가운데 1249억 원만 환수해 아직도 956억 원이 미납 추징금으로 남아 있다.
문제는 현행 형사소송법상 미납 벌금이나 추징금은 당사자가 사망하면 집행 절차가 중단되기 때문에 사실상 환수가 어렵다는 점이다.
다만 검찰 관계자는 "추가 환수 가능성 등 여부에 대해 아직 단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관련 법리 검토를 진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원칙적으로 전 씨가 사망해 추징이 어렵지만, 제삼자 명의로 해둔 재산에 관해 추가 집행이 가능한지 등을 살펴보겠다는 취지로 해석된다.
사후에도 미납추징금을 추징·몰수하는 법안이 현재 국회에 제출돼 있지만 계류 상태인 만큼 이 문제는 정치권이 국민의 뜻에 따라 적극 나서 해결해야 할 사안이다.
전 씨가 자신의 과오에 대해 끝내 '침묵'하고 사망하면서 남겨진 유가족들이라도 대신 사과할지 여부도 관심 대상이다.
부인 이 씨는 지난 2017년 발간한 자서전 '당신은 외롭지 않다'에서 남편의 과오를 직시하기는커녕 두둔하는 데 적극적이었다.
이 씨는 5.18 광주 시민 학살에 대해 "당시 수사책임자인 동시에 정보책임자였던 그분은 결코 발표 명령을 내릴 위치에 있지 않았다"고 밝혔다.
또 "국회 청문회 등에서 사과한 것은 5.18 당시의 정보책임자로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통감한다는 의미였을 뿐"이라고 주장했다.
이뿐 아니라 "최규하 대통령이 광주사태에 대한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고 대통령 직을 사임하겠다는 뜻을 밝히면서 남편에게 후임이 되어줄 것을 권유했다"고 강변하기도 했다.
12.12 군사 쿠데타와 5.18 광주 학살 역시 내 남편 탓이 아니라는 항변뿐이다.
전 씨 유가족들은 추징금 미납과 관련해서도 정부가 연희동 자택을 공매에 넘기자 소송전에 적극 나서는 등 한 치의 양보도 없었다.
지난달 별세한 노태우 전 대통령의 아들 재헌 씨는 부친을 대신해 여러 차례 5.18에 대한 사과의 뜻을 밝혔다.
광주 5.18 묘역을 직접 찾아 참배와 사죄를 표명하는가 하면 부친 명의의 추모 화환을 헌화하는 등 전 씨 유족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 왔다.
전두환, 노태우 두 사람은 12.12 군사 쿠데타와 5.18 광주 학살의 주역으로 역사의 죄인이다.
다만, 한 사람은 마지막 순간에 용서를 구하려 한 모습으로 기억되는 반면 다른 한 사람은 끝까지 책임을 회피해 죽음조차 유죄인 '학살자'로 기억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 기억은 스스로 자초한 결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