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 남자친구의 폭력과 스토킹으로 신변 보호를 받던 중 살해된 여성이 사건 직전 경찰에 수차례 신고했지만 경찰이 피의자에 대해 현행범 체포나 입건 등의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으로 파악됐다. 경찰의 이 같은 늑장 대응이 결국 참변을 불러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피해 여성인 A씨는 지난 6월부터 전 남자친구로부터 신변 위협을 느낀다며 총 다섯 차례 경찰에 신고했다. 특히 이 가운데 4번은 사건 발생 시점인 지난 19일에 가까운 시기 집중적으로 이뤄졌다.
이날 경찰은 현장에서 '스토킹 범죄'임을 인식했지만 피의자를 현행범으로 체포하지 않았다. 스토킹 범죄 관련 지역 경찰 대응 방안에는 "가해자가 현장에 있는 경우 현행범 체포, 발생보고, 즉결심판 등 엄정 대응해 현장종결을 최소화해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특히 경찰은 지난 6월에도 남자친구에게 신변의 위협을 느낀다는 내용의 신고 내역이 있다는 사실을 현장에서 파악하고도 피의자에게 임의동행을 요구했다. 김씨가 임의동행을 거부하자 경찰은 제대로 조사조차 하지 않고 돌려보냈다. 현행법상 임의동행은 대상자가 거절할 경우 조사를 강제할 수 없다.
피해 여성이 지난 6월부터 경찰에 피해를 호소했고, 경찰은 지난 7일 '스토킹 범죄'임을 인식했음에도 피해자 조사는 그보다 한참 뒤인 이달 20일로 정한 것 또한 부실 대응이란 논란이다.
경찰은 "원래 18일에 피해자를 조사할 예정이었으나, 지난 9일 발부받은 잠정조치 문안 원본이 법원에 있다는 이유로 20일로 미뤘다"고 밝혔다. 그리고 그 사이 피해자는 살해됐다.
일각에서는 사안이 위급하다고 판단되면 최대한 빨리 피해자 조사 등의 조치를 취했어야 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이은의 이은의법률사무소 대표변호사는 CBS 노컷뉴스와 통화에서 "피해자가 마음을 추스릴 필요도 있지만 (상황이) 위급해 보인다면 조사는 최대한 빨리 했어야 했다"며 "책상에 불러서 하는 조사만 있는 것이 아니라 상황에 따라 나가서 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 변호사는 "지난 6월에 최초 신고가 접수됐고 같은 가해자로부터 동일한 목적의 범행을 지속적으로 당하고 있었다"며 "가해자가 피해자에게 한 행위가 어느 정도 위중한지, 심해지는 양상인지 등을 감안해 구속영장을 검토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욕 안하던 사람이 욕을 하거나 폭력을 쓰지 않던 사람이 흉기를 휘두르는 일은 거의 없다"며 "범죄 상황이 심해지는 시그널을 최대한 빨리 파악했어야 했고 그 과정에서 피해자 조사 또한 빠르게 진행 됐어야 했다"고 설명했다.
경찰이 현장에서 현행범 체포나 입건 등의 조치를 취하지 하지 않았다는 논란에 대해서도 "현장에서 직접적 증거가 확보되지 않는 등 현행범 체포 요건이 안된다고 판단했다"며 "피의자가 임의동행을 거부해 신병을 확보하지 못했고 피해자 또한 즉시 조사 못해 우선 피해자 보호에 중점을 두고 신변보호와 CC(폐쇄회로)TV 확인 등 입건 전 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다.
한편 최근 경찰의 부실 대응이 도마에 오르자 경찰청은 현장 대응력 강화 TF(태스크포스)를 구성해 경찰의 현장 대응력과 범죄 피해자 보호 역량을 강화해 나가겠다고 지난 22일 밝혔다.
경찰은 범죄 피해자의 신변보호를 내실화하기 위해 스마트워치 위치확인 시스템을 개선하고, 스토킹 등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의 재범차단과 실질적 격리를 위한 대책도 추진해 나갈 예정이다.
아울러 서울경찰청은 24일 신상공개심의위원회를 개최해 피의자 신상공개 여부를 심의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