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라운드 11번 홀 티샷을 마친 고진영(26)의 손목은 통증으로 가득했다. 눈물을 흘리면서도 두 번째 샷을 위해 걸었다. 캐디는 "이번 대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권해도 괜찮다"고 말했다. 하지만 고진영은 통증을 참고 4라운드까지 버텼다.
아픈 손목에도 맹타를 휘둘렀다. 그 결과는 달콤했다.
고진영은 22일(한국시간) 미국 플로리다주 네이플스에서 열린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시즌 최종전 CME그룹 투어 챔피언십 마지막 라운드에서 9타를 줄이며 최종합계 23언더파로 우승을 거머쥐었다. 하타오카 나사(일본)와 1타 차 우승이다.
고진영은 "너무 기쁘다. 열심히 잘 하면 우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은 했었는데, 마지막 날 9언더파를 치면서 우승해 남다르다. 내 베스트 스코어가 64타였는데, 거의 10년 만에 깬 것이라 더 의미가 있는 우승"이라면서 "첫 홀 버디가 의미있었다. 후회 없이 경기하고 한국에 가자고 생각했다. 결과를 떠나 최선을 다하자는 생각으로 경기했다"고 말했다.
최종전 우승으로 올해의 선수, 상금 부문 뒤집기를 연출했다. 2019년 이후 두 번째 올해의 선수를 확정했고, 2019년부터 상금왕 3연패를 달성했다. 대회 전까지 넬리 코다(미국)에 뒤졌지만, 우승과 함께 역전 드라마를 완성했다. LPGA 투어 상금왕 3연패는 한국 선수 최초다.
고진영은 "사실 코다가 지난 주 우승하면서 이번에 우승하지 못하면 올해의 선수상은 못 받겠다고 생각했다. 우승을 네 번이나 했는데 올해의 선수상을 못 받으면 너무 억울할 것 같아서 더 집중했다. 동기부여가 됐다"면서 "딱 한 가지에 목표를 두지는 않았고, 오늘 라운드에 집중하고 싶었다"고 강조했다.
5승을 거뒀지만, 쉽지 않은 2021년이었다. 눈물을 참고, 또 참았다.
고진영은 "시즌 초에는 우승을 한 번이라도 할 수 있을까라는 마음이었다. 그러다 스윙 코치도 바꿨고, 클럽도, 퍼터도 바꿨다. 여러가지 변화가 있었다. 올림픽도 치렀고, 할머니께서 돌아가신 것도 있었다. 어느 해보다 감정기복이 심해 울기도 정말 많이 울었다"면서 "1라운드 11번 홀에서 손목이 너무 아파서 울면서 티박스에서 세컨드 샷으로 걸어갔다. 캐디가 '이번 대회가 중요한 것이 아니다. 기권해도 괜찮다'고 했다. 아팠지만, 그렇다고 해도 기권하고 싶지는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감정기복이 심했던 한 해였는데 그 때 포기하지 않아서 하늘에서 '네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으니 우승이라는 선물을 주겠다'고 한 것 같다. 그렇게 생각하니 더 신기하고, 좋은 한 주가 됐다"고 덧붙였다.
이제 2021년 일정은 끝났다. 고진영도 잠시나마 골프와 이별을 꿈꾼다.
고진영은 "골프채를 멀리 놓고, 골프 생각을 안 하고 싶다. 배 위에 감자튀김을 올려놓고 넷플릭스를 보고 싶다"고 활짝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