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형상의 조각품들이 전시회장을 메우고 고현정(희주 역)은 작품을 유심히 감상한다.
그 중 한 작품을 구매한다. 작가인 김재영(우재 역)에게는 알리지 말라고 당부하고서.
이 작품은 옛 연인이던 김재영의 등장을 알리며 앞으로 펼쳐질 이야기에서 중요한 소재가 된다.
극 중에서 고현정이 사들인 이 작품은 인간 실존에 대한 질문을 조형적으로 모색해 온, 인체 조각의 대가인 배형경 작가의 작품이다.
전시회는 물론 김재영의 작업실에서도 배 작가의 작품을 볼 수 있다. 작품 전반에서 김재영의 외롭고 거친 느낌, 살아온 인생과 고독함이 반영돼 드라마의 분위기와 잘 맞아 떨어진다.
#2. 고현정이 김재영과 함께 살았던 아일랜드에서의 생활을 떠올리며 그린 그림.
마치 바람 소리가 들리는 듯한 이 그림 앞에서 사고로 기억을 잃은 김재영은 작품 속으로 빠져든다.
#3. 가죽 표지의 노트에는 김재영이 그린 고현정의 모습이 드로잉으로 펼쳐진다.
고현정의 딸 김수안(리사 역)는 엄마의 모습인 것을 알아채고 빨간 펜으로 그어버리고 만다.
김수안은 "누군가를 그리는 건 그 사람을 사랑해서 그리는 거래. 그 아저씨가"라고 고현정에게 말한다.
연출을 맡은 임현욱 PD는 전화와 서면 인터뷰에서 "전반적인 분위기, 메시지, 인물들의 감정 표현 등에서도 작품들이 중요한 역할을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드라마 속 미술 작품이 또 한 명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했다"며 "인물 뒤에 걸리는 미술 작품도 화풍이나 색감, 구도 등을 하나하나 심사숙고해 결정했다"고 설명했다.
드라마 제작 과정에서 홍익대 예술학과 출신인 임 PD의 안목과 인맥이 빛을 발했다. 특히 김재영의 작품으로 나오는 배형경 작가의 작품을 섭외하느라 제작진은 배 작가의 경기도 양평 작업실을 드나들며 삼고초려한 끝에 전폭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유보라 작가도 대본을 쓰는 과정에서 작품의 느낌을 김재영의 인생과 작품관에 반영하고 싶어 작업실을 직접 찾기도 했다.
고현정, 드라마 의상 '수십 벌' 직접 준비하는 열정 보여줘
드라마 '너를 닮은 사람'은 아내와 엄마라는 수식어를 버리고 자신의 욕망에 충실했던 여자와, 그 여자와의 짧은 만남으로 모든 걸 잃어버린 또 다른 여자의 이야기이다. 고현정의 복귀작으로 많은 화제를 모았다.
가난에 허덕이던 유년기를 거친 고현정은 간호조무사로 일하던 병원에서 이사장 아들인 남편 최원영(현성 역)을 만나 결혼해 신분상승을 이뤘다. 하지만 자신에게 미술을 가르쳐주던 후배 신현빈(해원 역) 몰래 후배와 결혼을 약속한 김재영과 깊은 관계에 빠지고, 결국 아일랜드로 미술 유학을 떠나면서 김재영을 불러들여 동거까지 하게 된다. 아일랜드에서 돌아온 뒤에는 과거를 지우고 아무렇지도 않게 남편과 결혼 생활을 유지하며, 남편의 지원으로 화가로도 성공한 '다 가진' 여자다. 화가 역할이라 미술 작품과 전시회 장면도 많이 나온다. 극 중 고현정의 작품은 드라마 촬영 전부터 임진경 작가와 소통하며 1년 여 동안 제작했다.
초반 대본의 삼분의 일 정도만 보고서 작품에 참여하겠다고 한 고현정은 이번 드라마에 굉장한 열정을 보였다.
"이 순간에 고개를 오른쪽으로 돌려 보면 내가 널 바라보는 눈빛과 감정이 잘 올라올 거 같아.
여성 시청자들은 그런 것도 좋아하더라."
상대역 김재영을 배려하면서도 현장에서 감독이 볼 수 없는 미세한 손동작, 표정 하나하나까지 잘 짚어주는 선배 배우로서의 면모도 보여줬다. 그래서 인지 17살의 나이 차이에도 불구하고 고현정과 김재영은 좋은 케미를 보여줬다.
고현정을 항상 무시하고 하대하는 시어머니 김보연은 고현정에게 발을 주무르라고 시킨다. 웃으며 발을 주무르던 고현정이 이 말을 듣고서 잠시 멈칫하며 묘한 표정을 짓다 이를 지켜보던 아들 김동하(호수 역)와 눈이 마주치자 금세 미소로 싹 바뀐다.
임 PD는 "중간 중간 대화만 하는 장면에서도 표정 하나, 눈빛 하나로 그 장면을 살리는 순간이 있어 '아!'하는 탄성이 절로 나왔다. 고현정이 아니었으면 어떻게 했을까 싶다"며 "정말 똑똑하고 촉이 발달한 배우다. 연기든 뭐든 다 위에서 내려다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어떤 장면에서 어떤 호흡을 할지, 톤 하나하나에 대한 감이 엄청 나 감탄할 수 밖에 없었다"며 극찬했다.
'너를 닮은 사람'은 고현정이 아일랜드에서 낳은 아들이 김재영의 아이인지 남편의 아이인지, 기억이 돌아온 김재영과 고현정의 관계가 어떻게 펼쳐질지 극의 후반부로 갈수록 급속한 전개와 긴장감 넘치는 스토리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드라마의 인기에 힘입어 원작인 정소현 소설집 '너를 닮은 사람'(문학과 지성사)'도 방영 시기에 맞춰 9년 만에 재출간돼 베스트셀러에 오르는 등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