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록 생활체육인 출신이지만 숱하게 엘리트 프로들을 넘어왔다. 선수 특유의 역동적인 스윙은 부족하지만 부드러운 투구로 실속 있게 득점한 끝에 마침내 한국 여자프로볼링의 새 역사를 썼다.
여자 프로볼링 선수 최초로 최현숙(42·진승)이 통산 10승 고지에 올랐다. 8년 동안 철저한 자기 관리를 통해 이뤄낸 업적이다.
최현숙은 15일 경기도 안산시 더킹볼 볼링경기장에서 열린 '제 2회 900글로벌컵 우먼스 챔피언십' 결승에서 유성희(팀 에보나이트)를 제치고 정상을 차지했다. 238 대 206의 여유 있는 승리였다.
지난 2013년 DV8 아마존컵에서 첫 우승을 거둔 뒤 꼭 10번째 정상이다. 최현숙은 구미 새마을컵 2연패 등 2017년 3관왕에 올랐고, 2018년과 2019년 2년 연속 2관왕에 등극한 바 있다.
여자 선수 중 가장 먼저 10승을 달성했다. 이 대회 전까지 최현숙은 라이벌 윤희여(36·스톰)과 9승으로 공동 1위였지만 한 발 먼저 앞섰다. 우승 뒤 최현숙은 "여자 선수 최초의 10승이라 너무 기쁘다"면서 "또 공동보다 단독 1위가 좋다"고 환하게 웃었다.
이날 최현숙은 2~4프레임 연속 스트라이크를 터뜨린 뒤 6~8프레임에서 다시 터키가 폭발했다. 실업 선수 출신인 유성희는 특유의 다이내믹한 스윙을 뽐냈지만 좀처럼 스트라이크를 잡지 못하며 고전했다.
결국 폼은 크지 않지만 부드럽고 정확한 스윙으로 차곡차곡 점수를 쌓은 최현숙이 한국프로볼링협회(KPBA) 김언식 회장 등 관계자들의 박수 속에 챔피언 샷을 구사했다. 최현숙은 "평상시보다 긴장을 했는데 이겨내려고 프레임 사이 시간을 길게 끌고 갔다"고 돌아봤다. 최현숙의 노련함에 구력은 20년이지만 프로에서는 신인인 유성희가 흔들린 셈이다.
여자 선수 최초의 10승을 거두기까지 쉽지 않은 길이었다. 알려진 대로 최현숙은 이른바 동호인 출신이다. 최현숙은 "동호인 대회에서 자주 우승하다 보니 잘 불러주지 않더라"면서 "그래서 더 큰 물에서 놀자는 생각으로 프로에 도전했다"고 데뷔 당시를 돌아봤다.
선수 출신이 아닌 만큼 엄청난 자기 관리와 훈련이 있었다. 최현숙은 "솔직히 (엘리트 선수 출신에 비해) 스윙에 자신감은 없다"면서 "투구 동작이 크지 않아 '사브작 사브작'이라는 별명도 있다"고 귀띔했다. 그러나 "일관성에 승부를 건다"고 강조했다. "오전 2~3시간 훈련 뒤 오후 2시간 등산으로 체력 훈련을 하고 저녁 운동 2시간을 하는 루틴을 지켜왔다"는 최현숙은 "훈련을 해야 하기에 대회 2주 전부터는 사람도 멀리했다"고 힘주어 말했다.
아내와 엄마였기에 더 힘든 과정이었다. 최현숙은 "2013년 당시 두 딸들이 초등학생 때여서 시작이 힘들었다"면서 "대회가 있는 주말에는 남편이 아이들을 회사로 데려가서 일을 하며 돌볼 정도였다"고 회상했다. 이어 "남편이 먼저 프로 도전을 권유했던 만큼 외조를 잘 해줘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도 "명절 때 등 가끔 남편과 내기 볼링을 치는데 핸디 70을 잡아주고 용돈을 준다"고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었다.
고된 훈련의 결실은 뿌듯했다. 최현숙은 "첫 대회 우승 상금으로 자동차를 샀는데 우승할 때마다 집안에 고가의 가전 제품을 새로 장만했다"면서 "이제 차가 연식이 좀 됐으니 바꿀까 싶다"며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이어 "지금은 시어머니께서 돌아가셨지만 며느리를 자랑스러워 하셨다"고 고인을 추억하기도 했다.
전인미답의 10승 고지를 밟았지만 최현숙은 더 높은 곳을 바라본다. 여자 선수뿐 아니라 남녀 통틀어 한국 프로볼링 최다 우승 기록인 정태화(54)의 12승이다. 여기에 남자 선수와도 겨루는 메이저 대회 우승도 노린다. 라이벌 윤희여는 2019년 케겔컵에서 여자 선수 최초 메이저 대회 우승 타이틀이 있어 TV 파이널 진출만 있는 최현숙의 승부욕을 자극한다.
최현숙은 "항상 목표를 세우고 훈련하는데 남녀 통틀어 최다승을 깨려고 한다"면서 "또 결승에만 진출했던 메이저 대회 우승도 목표"라고 밝혔다. 이어 "(스트라이크만으로 경기를 끝내는) 퍼펙트 게임도 5회인데 최다 기록인 7회를 넘어서고 싶다"면서 "프로의 모든 기록을 갈아치우는 게 목표"라고 입을 앙다물었다. 최현숙이 한국 프로볼링 역사를 다시금 새롭게 쓸지 지켜볼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