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7년 전 골드만삭스 만나 미래 사업구상 논의했다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이한형 기자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지난 2014년 12월 골드만삭스 고위 임원을 만나 반도체, 스마트폰 등 삼성의 핵심사어 투자전략에 대한 고민을 털어놨던 것으로 확인됐다.

12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전날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삼성물산·제일모직 부당합병 및 삼성바이오로직스 회계부정 혐의 재판에서 이 부회장 변호인 측은 한 통의 영문 이메일을 공개했다.

이 이메일은 2014년 12월 8일 미국 골드만삭스의 진 사이크스 당시 M&A 사업부 공동회장이 이날 재판에 증인으로 출석한 정현진 골드만삭스 한국 대표 등 3명에게 보낸 것이다.

이메일에는 이건희 회장이 같은해 5월 급성 심근경색으로 쓰러진 직후 홀로서기에 나선 이재용 부회장의 고민과 경영철학, 사업구상 등을 엿볼 수 있는 내용이어서 관심을 끌고 있다.

사이크스는 글로벌투자은행(IB)업계에서 IT, 이동통신 등 분야 전문가로 알려진 인사로, 미국 애플과 스티브 잡스를 전담했던 뱅커로 유명하다. 이 부회장을 알게 된 것도 잡스의 소개 덕분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사이크스는 정 대표 등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제이(Jay·이재용 부회장)가 오늘 저를 만나러 왔다'면서 대화 내용을 구체적으로 전달했다.

상성사옥. 연합뉴스
우선 그는 이 부회장과의 대화 가운데 대부분은 삼성전자 사업 전반에 관한 것이었다고 소개했다.
그러면서 고성능 부품, 디스플레이, 폼 팩터, 카메라 기술 등 하드웨어 측면에서의 제품 차별화, 시스템 반도체와 파운드리 등 비메모리 사업 전략, 소프트웨어 분야의 투자 확대, 애플과의 지속적인 공급 관계 등에 대해 집중적으로 논의했다고 설명했다.

이 부회장이 7년 전부터 삼성전자의 핵심 전략에 대해 깊이 고민하고 있음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 부회장의 이런 구상은 최근 갤럭시 폴더블폰 성공, 시스템반도체 비전 2030 선언,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등 소프트웨어 발전 전략, 애플에 대한 핵심부품 공급 실제 성과로 이어졌다.

이와 함께 이 부회장은 사이크스와 면담에서 이른바 '선택과 집중' 경영전략을 거듭 강조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부회장은 당시 추진하던 방산, 화학 분야 등 비핵심 사업 정리를 언급한 뒤 "핵심 사업에 집중하는 접근 방식을 추구하기 위해서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고 말했다"고 사이크스는 전했다.

이 부회장은 이어 "주주들과 다른 사람들도 (핵심 사업 집중을 통해) 소유 구조를 더욱 투명하게 하려는 우리들의 노력을 결국 인정해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이 부회장은 당시 상속세와 관련한 문제도 언급했다. 사이크스는 "그(이재용)는 비록 한국 상속세와 미국 세금의 차이점에 흥미를 보이기는 했지만, 부친께서 돌아가실 경우 발생할 세금 문제에 대처할 준비가 잘 돼 있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 부회장 측 변호인은 이 부회장이 골드만삭스 측 인사들과 만난 이유가 검찰의 주장대로 경영권 승계나 지배구조 개편이 아니었다는 점을 입증하기 위해 이 이메일을 공개한 것으로 풀이된다.

당시 상속세 문제는 큰 고민거리가 아니었고, 전반적인 사업 현안과 미래 전략에 대한 조언을 받기 위한 차원이었다는 것이다.

이 부회장 변호인 측은 "사이크스의 이메일 내용을 볼 때 상속세 마련을 위한 삼성생명 지분 매각 논의를 목적으로 골드만삭스와 잇따라 접촉했다는 검찰 공소장 내용은 설득력이 떨어진다"고 주장했다.

연합뉴스
한편, 삼성전자는 전날 사내 게시판에 "중장기 인사제도 혁신과정 중 하나로 평가·승격제도 개편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공지한 것으로 확인됐다.

회사 측은 "임직원의 업무와 성장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제도인 만큼 내부의 다양한 의견과 외부 전문가 자문, 국내외 기업 벤치마킹 등 다각도로 의견수렴을 거쳐 준비했다"며 대대적인 인사제도 개편에 나설 것임을 예고했다.

재계는 아울러 내달 초 단행될 것으로 보이는 삼성의 주요 계열사 사장단과 임원 인사에도 주목하고 있다.

이 부회장이 지난달 25일 고(故) 이건희 회장 1주기를 맞아 "새로운 삼성을 만들어 나가자"고 언급한 만큼 이번 인사를 통해 이 부회장이 그리는 '뉴삼성'의 모습이 보다 명확하게 드러날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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