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전선언 조율 끝나…쉽지 않아" 외교장관의 모호 화법

정의용 외교부 장관이 11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한반도 종전선언 추진을 위한 한미 간 논의가 급물살을 탔지만 돌발 변수도 상당해 전망은 여전히 불투명해 보인다.
 
정의용 외교부 장관은 11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서 한미 간 논의 상황에 대해 꽤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정 장관은 무소속 김홍걸 의원의 관련 질문에 "(한미가) 큰 원칙에 합의했고 그 형식과 내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에 대해 협의를 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진 국민의당 이태규 의원 질문에는 "한미간 상당히 조율이 끝났다"고 했고 "미국도 종전선언의 필요성, 어떤 형식, 어떤 내용으로 추진할 지는 우리 정부와 의견이 거의 일치가 됐다"고 수위를 더 높였다.
 
다시 이어진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의 질문에 대한 답변에는 아예 "한미 간 조율이 끝났기 때문에"라는 표현도 나왔다.
 
이수혁 주미대사는 지난 9일(현지시간) 미국 워싱턴DC 소재 한국문화원에서 열린 특파원 간담회에 참석해 "한미 간 종전선언 문안까지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고 말했다. 연합뉴스

이는 이수혁 주미대사가 지난 9일(현지시간) 특파원 간담회에서 "한미 간에 종전선언 문안까지 의견을 교환하고 있다"고 한 것에 비교해도 불과 하루 이틀 새 진도가 더 빨라진 것이다. 
 
정 장관은 최근 제이크 설리번 미국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의 종전선언 관련 언급이 한미 간 이견으로 해석되는 것에 대해서도 선을 그었다.
 
그는 "(설리번 보좌관의 말은) 당시 한미 간 협의하고 있던 상황을 설명했던 것이고, 그 이후 한미 간 상당히 조율이 끝났다"고 말했다.
 
하지만 종전선언 추진 전망에 대해서는 매우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그는 '무난하게 합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판단하느냐'는 이태규 의원 질문에 "꼭 그렇게까지 낙관적으로 보진 않지만, 쉽지 않을 것 같다, 종전선언이. 미국과 한국과 합의만으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기 때문에"라고 답변했다.
 
더불어민주당 김경협 의원. 윤창원 기자

김경협 의원의 질문에도 "한미 간 조율이 끝났기 때문에"라고 하면서도 곧바로 "앞으로 또 이걸 추진해나가려면 여러가지 과정이 남아있기 때문에 이걸 예단해서 조기에 된다든지 말씀 드릴 입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정 장관의 발언을 종합하면 종전선언에 대한 한미 간 조율은 거의 끝났지만 북한, 또는 중국의 반응은 낙관할 수 없다는 것쯤으로 정리된다. 
 
그런데 문제는, 당사국 가운데 한국은 물론 북한과 중국도 종전선언에 긍정적 입장이고 미국만 소극적인 태도임을 감안하면 정 장관의 말은 앞뒤가 잘 맞지 않는다는 점이다. 
 
때문에 김경협 의원은 답답한 듯 '특별히 신중한 이유가 있나'라거나 '다른 문제가 있느냐'는 식의 질문을 재차 던졌지만 만족스런 답변을 얻지 못했다. 
 
논리적으로 보면, 우리 정부가 주장해온 '종전선언 입구론'에 미국이 동의함으로써 '조율'이 끝난 것이라면 북한이나 중국이 이를 거부할 이유가 별로 없다. 종전선언 성사는 미국의 동의가 사실상 관건이라는 게 일반적 인식이다.
 
정 장관은 이날 "북한을 대화로 끌어내고 그것을 통해 비핵화를 달성하고 평화를 정착하는 첫번째 단계로서 종전선언이 필요하다는 것은 우리와 미국과 일치된 의견"이라고 밝혔다. 비핵화 협상의 마중물을 종전선언으로 삼자는 우리 측 요구를 미국이 수용했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브래드 셔먼 미국 민주당 의원 등 23명의 연방하원 의원들이 8일(현지시간)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과 토니 블링컨 국무장관에게 전달한 종전선언과 북미대화 촉구 내용의 서한. 미주민주참여포럼 제공

반면에 만약 한미 간 조율된 종전선언의 내용이 북한이나 중국이 거부 반응을 보일만한 것이라면, 북한 비핵화 조치를 전제로 한 종전선언이란 결국 미국 요구에 우리가 양보한 결과로 볼 수밖에 없다.
 
한반도 평화프로세스 재가동의 유일한 불씨라고 할 종전선언의 향배가 초미의 관심이지만 외교장관의 아리송한 화법은 판단을 더욱 어렵게 한다. 
 
외교부 당국자는 기자들의 질문에 "장관 말씀 그대로 이해하면 될 것"이라며 추가 언급을 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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