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수요자는 괜찮다더니…정부 가계부채 대책에 불만↑

대출 이자 내기도 빠듯한데 원금까지···대출자들 불만 ↑
초고가 전세 보증 불가? "서울에 '고가' 아닌 곳이 있나" 자조도
내년부터 DSR규제 강화…2억 넘는 대출에는 DSR 40% 규제 적용
실수요자들 "갚겠다는데 대출 안돼…나만 벼락거지"

연합뉴스
# 무주택자인 A씨는 최근 금융당국의 전세대출 분할상환 우대 뉴스를 보면 한숨만 나온다. 달마다 나가는 전세대출 이자가 이미 매달 약 47만 원인데, 원금까지 함께 상환하게 되면 달마다 빠져나가는 고정 비용이 늘어 부담이 크다. 둘째 아이 출산을 앞두고 허리띠를 졸라 매고 저축을 늘리며 '내 집 마련'의 꿈을 꾸었던 A씨의 어깨는 더욱 무거워졌다.


# 직장인 B씨는 요즘 집 걱정이 태산이다. 현재 1억 6천만 원을 대출 받아 2억 원 짜리 전세에 거주 중인 그는 최근 집 주인으로부터 집을 비워 달라는 요청을 받았다. 급한대로 집장과 좀 더 먼 지역에서 이사할 집을 알아봤지만 전세 시세는 이미 오를 대로 올라 있었다. 은행에 문의해봤지만 DSR 산정에 포함되지 않는 전세대출인데도 2년 전보다 이자는 높고 대출금은 줄었다. 신용대출을 얼마나 더 받을 수 있을지도 모르는 상황. 이삿짐 센터 비용과 부동산 중개 수수료 등 부가적으로 들어갈 비용을 생각하니 앞이 까마득해졌다.

정부의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 발표 이후 오히려 실수요자들의 '아우성'이 커지고 있다. 금융당국은 비판을 의식한 듯 연일 "실수요자들의 피해는 없도록 하겠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불만은 점차 커지는 모양새다.

금융위원회는 내년부터 전세대출 분할상환 우수 금융회사에 정책모기지 배정을 우대하겠다고 밝히는 등 전세대출 분할상환을 유도하고 있다.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 발표 당시 금융당국은 해외 사례를 들며 원금을 같이 갚아나가는 문화가 정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러나 대출자들은 당장 시름이 깊어질 수 밖에 없다. 대출을 받자마자 원금을 나눠 갚으면, 지금보다 매달 갚아야 할 원리금 액수가 늘어나게 된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A씨는 "주거 비용이 계속 늘어나게 되는 것인데 돈은 언제 모아 내 집을 살 수 있을지 까마득하기만 하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금융당국은 '전세대출 분할 상환을 의무화하는 방안을 검토한 적이 없고 계획도 없다'는 입장을 내놨지만, 실제 현장의 시각은 다르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정부의 가계대출 규제 기조가 뚜렷하고 분할상환 유도 방안까지 내놓은 상황에서 은행으로서는 눈치를 보고 소극적인 자세로 대출을 할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실제로 은행권은 신규 전세대출을 받는 대출자에게 원리금의 5%를 갚아야 한다는 분할상환 조건을 내거는 것을 검토하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와대 국민청원 홈페이지 캡처
은행들이 자체적으로 대출 관리를 깐깐하게하고, 대출금리까지 올리면서 불만의 목소리가 청와대 국민청원에까지 등장했다. 청원인은 지난 5일 올린 글에서 "가계대출 증가율 규제로 인해 총량이 규제된 결과, 은행 및 금융기관들이 '대출의 희소성'을 무기로 가산금리를 높이고 우대금리를 없애면서 폭리를 취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은행권에서는 미리 심사를 강화하고 대출을 소극적으로 해야만 부채 증가 속도가 조절될 수 있다며 난감하다는 입장이다.

당국은 고가 전세 대출에는 보증을 제한하는 방안도 논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전세대출 보증을 해주는 한국주택금융공사와 주택도시보증공사는 주택 보증금의 상한선(수도권 5억원)을 두고 있지만 SGI서울보증에는 한도가 없다.

결국 민간기관인 SGI서울보증에 보증제한을 걸어 갭 투자나 투기성 대출을 막겠다는 것이다.

'고가'의 기준은 공식적으로 발표된 바 없다. 하지만 집값 급등으로 고가 전셋집이 늘어난 상황에서 섣부른 규제로 애먼 실수요자까지 피해를 보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신림동에 거주하는 C(36)씨는 "이제 현금 부자들만 아이들을 강남같은 좋은 환경에서 키울 수 있는 것이냐"며 불공평한 정책이라고 불만을 토로했다. 부동산 관련 인터넷 카페에서는 "요즘 서울 대부분이 '고가 전세'일 것"이라며 오른 주거비를 고려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아울러 금융당국은 전세대출을 지난달 발표한 가계부채 관리 강화 방안에서는 뺐지만 향후 고려할 수 있는 '카드'로 남겨놓겠다고 언급한 상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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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내년 대출 시장은 지금보다 더욱 어려워질 것으로 보인다. 내년 초부터 당장 총 대출액이 2억원만 넘어도 DSR 40%를 적용하는 규제가 시행되고 7월부터는 1억만 넘어도 규제를 받게 된다.

B씨는 "친구들이 모두 갭 투자에 나설 때 나는 안 했는데 지금은 그 때의 내가 바보 같았다는 생각이 든다. 갚겠다고 해도 대출을 해주지 않는데, 지금 주변을 둘러보면 나만 '벼락거지'가 된 것 같다"며 박탈감을 토로했다.

전문가들은 실수요 대출 규제에 있어서도 세부적으로 접근할 필요성이 있다고 강조한다.

성태윤 연세대 경제학과 교수는 "가계대출 총량관리의 측면에서 접근하니 실수요자금에도 제약이 가해진 상황"이라면서 "갚을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소득이나 신용등급에 따라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받을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이미 주거 관련 비용이 상당부분 급등한 상황에서 자칫 '위험한 대출'로 내몰릴 가능성이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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