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일 오후 10시 20분께. 모처럼 비번인 날을 마무리하러 양재천으로 산책하러 나선 서울 서초경찰서 소속 이형석 형사는 이상한 광경을 목격했다.
길을 걷던 여중생 2명 뒤에 한 20대 남성이 바짝 붙어 따라가는 모습이었다.
처음에는 일행인가 싶었다고 한다.
하지만 이 형사는 학생들이 길모퉁이를 돌 때 이 남성이 손에 부자연스러운 각도로 휴대전화를 들고 있던 것을 보았고, 오랜 현장 경험으로 다져진 '촉'이 순간적으로 발동하는 것을 느꼈다.
잠시 후 학생들은 근처 버스정류장에 멈춰 섰고, 뒤따라가던 남성도 속도를 줄이더니 학생들 뒤에 밀착했다.
위화감이 없도록 자연스럽게 정류장을 지나쳐 10m 정도 더 걸어간 이 형사는 슬쩍 몸을 돌려 남성을 주시했다.
이 남성이 천천히 팔을 축 늘어뜨리고는 휴대전화 카메라 렌즈를 학생들 방향으로 향하던 순간, 이 형사는 불법촬영 범행을 확신하고 행동에 나섰다.
현장에 조심스레 접근한 이 형사는 남성이 도망치지 못하도록 팔짱을 낀 뒤 '학생들을 촬영하고 있느냐'고 물었다.
옴짝달싹 못 하게 된 이 남성은 현장에서 순순히 범행을 인정했다.
피해자들과 남성에게 자신의 신분을 밝힌 이 형사는 이 남성의 휴대전화를 열어봤다.
이날 학생들을 찍은 동영상 이외에도 길거리·편의점·대중교통 등에서 여러 여성의 치마 속·다리 등을 찍은 불법 촬영물이 무더기로 쏟아졌다.
경찰 조사에서 이 중 일부는 5년 전인 2016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것으로 파악됐지만, 이 남성이 덜미를 잡힌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이 형사는 112에 신고, 출동한 지구대원들에게 이 남성의 신병을 인계했다. 서초경찰서는 이 남성을 성폭력처벌법 위반(카메라 등 이용 촬영) 혐의로 입건했다.
이 형사는 8일 연합뉴스 통화에서 "어떤 경찰이든 당연히 했을 일"이라며 "앞으로도 최선을 다해 현장에서 시민들을 지키겠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