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작렬]박범계 장관의 '착한 외국인', '나쁜 이방인'

법무부, 외국인보호소 '새우꺾기' 인권침해 인정
유감표명 하면서도 미봉책만 제시…난민 대책 없어
박, '생후 5일' 아프간 산모·아기 방문…민폐 논란

법무부청사. 연합뉴스

"인권침해 행위가 발생한 경위를 확인한 결과 담당자들의 보호장비 사용 방법에 대한 인식 및 교육 부족, 자해·소란행위 등의 대응에 필요한 보호 장비의 종류, 사용 방법에 대한 명확한 규정 미비 등이 주요 원인으로 파악됐습니다."
   
지난 2일 이상갑 법무부 법무실장은 화성외국인보호소에서 발생한 이른바 '새우꺾기' 가혹행위가 인권침해가 맞다는 점을 공식적으로 시인했습니다. 지난 9월 처음 가혹행위가 언론을 통해 알려졌을 당시 "해당 외국인의 자해방지와 안전을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해명하는 데 그친 것에선 한 발 나아간 겁니다.
   
그러나 여전히 법무부가 이 사태의 본질을 명확히 짚고 있지 못하다는 비판이 많습니다. 화성외국인보호소 고문사건 대응 공동대책위원회는 지난 4일 유엔(UN) 인권이사회 산하 '자의적 구금에 관한 실무그룹)(WGAD)에 긴급구제 청원서를 제출했습니다. 여전히 피해 당사자는 보호소에 격리 수용돼 있는데다 법무부가 당사자가 아닌 언론에 '유감' 표명을 하며 제시한 개선방안도 미봉책에 가깝기 때문입니다.
   
▶ 2021.10.5.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법무부 국정감사
-이수진 위원 "장관님 외국인보호소는 수용소입니까 보호시설입니까"
-박범계 장관 "보호시설입니다"
   
…중략…
   
-이수진 위원 "국가인권위에서 2017년에도 (외국인보호소 관련) 개선방안을 권고해서 법무부가 수용 의사표시를 했습니다. 그런데 제대로 하지 않다가 인권위가 작년부터 올해까지 실태조사를 해서 또 지적을 했어요. 이렇게 인권위 권고를 계속 무시하면서 인권 사각지대 외국인들의 인권침해를 하고 있는데 방치하면 안되겠죠. 어떻게 개선하실건지…."
-박범계 장관 "극히 유감입니다. 외국인보호소가 사실상의 수용시설로 전락되어 있는 것은 아닌지 하는 일각의, 인권위를 비롯해서 인권단체의 우려에 대해 깊이 공감하는 측면도 있고요. 새우꺾기는 규정에 없는 것이고 과도한 어떤 물리적 제재라고 보여지는데요. 이수진 위원님 지적하신 그 점 유념하겠는데요. 다만 사건의 전후과정에 있어서 외국인이 자해를 하려 했다든지 여러 가지 기대 이상으로, 예측 이상으로 과도한 난폭행위…저기 행동을 했다는 그런 측면도 고려해주시면 좋겠습니다.
-이수진 위원 "그렇다하더라도 인권침해 하면 안되죠"
-박범계 장관 "유감이란 말씀 드리고 제도개선 포함해 깊이 있게 대책 마련하겠습니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 윤창원 기자

법무부의 이같은 대응은 사실상 수장인 박범계 장관의 입장이라고 볼 수 있을 겁니다. 박 장관은 지난달 국회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이번 가혹행위에 대해 유감 표명을 하면서도 "다만"이라는 표현을 붙이며 가혹행위에 나름의 사정이 있었다고 부연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말은 법치주의 국가에서 용인되기 어렵습니다. 그 어떤 범죄자에 대해서도 우리는 고문과 가혹행위 대신 법에서 정한 절차에 따라 기소·재판하고 죄의 성격과 정도에 따라 형벌을 부과하기로 약속했기 때문이죠.
   
2021년 대한민국에서 여전히 사람의 팔과 다리를 뒤로 묶어 결박하는 일이 벌어진다는 점을 확인한 후에도, 법무부 장관이 국정감사장에서 "다만"이라며 변명할 수 있었던 것은 피해자가 외국인이라 가능한 일 아닐지 생각해봅니다. 특정 구치소나 교도소에서 한국인 범죄자가 비슷한 일을 당했다면, 해당 가혹행위의 피해자가 저지른 범죄의 성격이 정치·경제사범 등 비폭력 성격이었다면 박 장관은 "다만"이라고 말할 수 있었을까요?
   
비유를 범죄자, 구치소·교도소에 했지만 박 장관도 답변했듯 외국인보호소는 '수용소'가 아니라 엄연한 '보호시설'이며, 보호 외국인들은 체류와 관련한 행정절차에 문제가 있는 상태일 뿐 범죄자는 아닙니다. 자국민이라면 상상할 수 없는 조치를 외국인이라는 이유만으로 가능하다는 식의 해석을 내놓는 것이 정당한 것인지 되물을 수 밖에 없습니다.  

아주 상반된 사례처럼 보이지만 이같은 외국인에 대한 차별적 시선은 지난 2일 박 장관이 국내에서 첫 출산한 아프간 난민 산모를 만난 자리에서도 드러났습니다.
 
박범계 법무부장관이 고려대 안암병원을 방문해 10월 28일 태어난 아프간인 아기 '한아'를 안아보고 있다. 법무부 제공

위 사진은 입국 당시 임신 8개월이었던 산모가 출산하자 박 장관이 직접 병원에 축하방문을 해 신생아를 안고 찍은 것입니다. 사진 촬영당시 아이는 세상에 나온지 불과 5일밖에 되지 않은 시점이었습니다. 한국인 산모라면 친인척도 아닌 '모르는 사람'이 위생복도 갖춰 입지 않은 채 생후 5일 된 신생아를 안고 사진을 찍겠다고 요구했을 때 어떤 반응을 보였을까요? 신생아를 안은 정치인 출신 장관의 양옆으로 아직 몸을 추슬러야 할 산모와 아이 아빠가 손을 공손히 모은채 서있는 모습이 눈살을 찌푸리게 하기 충분합니다.
   
법무부가 이들을 지칭한 용어는 '특별기여자' 입니다. 한마디로 우리 국가와 국민에 도움을 준 '착한 외국인'이라는 뜻입니다. 박 장관은 당시 특별기여자들이 입국할때부터 공항에 마중을 나가 아이들에게 인형을 전달하고, 이후에도 수차례 관련 보도자료를 내는 등 '착한 외국인'들을 보호하는 이미지를 부각시키는데 많은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도 이들에 대한 기본적인 인권보호와 배려는 찾아보기 힘들었습니다.

지난 2일 이상갑 법무실장이 아닌 박 장관이 '새우꺾기' 가혹행위에 대해 고개를 숙이고, 아프간 산모와 아기는 병원에서 '이방인 접대'를 하는 대신 가족과 편히 쉴 수 있도록 했어야 합니다. 자국민에게 해선 안될 행위를 똑같이 하지 않는 것, 인권이라고 말하기도 민망한 공평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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