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후보의 대선출마 모토는 '공정과 상식'이다. 사회 곳곳의 특권과 반칙을 바로 잡고, 원칙이 작동하는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것이다. 특정 이념이 반영돼 있다기 보다는 문재인 정부 자체에 대한 비판이 중심인 것이다.
문재인 정부에 대한 비판을 제외하고 나면, 윤 후보 스스로는 진보나 보수 등 특정 이념에 갇히는 것을 거부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는 이날 후보수락 연설에서 "이념에 사로잡혀 전문가를 무시하는 지도자는 더 이상 필요 없다. 진영과 정파를 가리지 않고 실력 있는 전문가를 발탁해 권한을 과감하게 위임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는 분명히 책임지는 대통령이 되겠다"고 강조했다. 이념보다 실력이 우선이고 만사에 개입하기보다 위임 통치 시스템을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실제로 윤 후보는 캠프 소속 50인의 각계 전문가 그룹이 마련한 정책을 토대로 공약을 발표하고 있는데, 정책 사안별로 좌우가 혼재돼 있는 양상이다. 코로나19로 피해를 입은 자영업자·소상공인에게 최대 100조원을 지원한다거나 무주택 청년들에게 '원가주택' 30만호를 제공한다는 공약은 정부의 강한 개입을 전제하지만, 취임 즉시 80여 개의 산업규제를 폐지해 일자리를 만든다거나 부동산 세부담 완화를 검토하겠다는 언급은 시장 원리를 중시하는 것으로 보인다.
외교안보 분야에서도 남·북·미연락사무소 설치는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이 떠오르면서도 미국이 주도하고 일본, 인도, 호주가 참여하고 있는 쿼드(Quad) 동참 의지를 드러낸 대목에서는 한미동맹 강화를 중시해온 보수적 접근과 궤를 같이하고 있다. 캠프 관계자는 "특정 이념보다 이 시점에서 국민들에게 진짜 도움될 수 있는 정책을 찾고 고민해보자는 의지가 큰 것"이라고 전했다.
이렇듯 특정 이념을 기반으로 한 선명성보다는 사안에 따라 필요한 정책을 고르는 중도 성향의 방식을 택했지만 그간 윤 후보의 입에서 나오는 발언 때문에 강경 보수주의자를 연상케 했고, 그를 경선 승리까지 이끌었던 것도 2030세대나 중도층 등 '확장된 지지자'가 아니라 5060세대와 노년층 등 '전통 지지층'이었다.
실제로 윤 후보는 이날 당원 선거인단에서는 2위인 홍준표 후보를 압도했지만, 일반 국민 여론조사에서는 홍 후보보다 10%p넘게 뒤쳐졌다. 일각에서 제기되는 '역선택'이 존재했다고 가정하더라도 연이은 실언과 편향 논란이 중도 확장력을 약화시켰다는 점을 부인할 수 없다.
주 120시간 노동 발언이나 '손발노동은 아프리카나 하는 것'이라는 발언은 노동관을 의심케 했고, '전두환 옹호 논란'은 부적절한 역사관 논쟁으로 번졌다. 국민의힘 당원 가입이 늘어난 것에 대해서는 '위장당원이 엄청 가입했다'는 음모론성 의혹을 제기하며 당을 들썩이게 한 적도 있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보수 유튜버들이 주로 사용하는 프레임과 시각이 종종 발언에 녹아드는 것 같다"며 "예선은 몰라도 본선에서도 이런 편중된 시각에 갇혀서는 승산이 없다"고 언급했다.
여기서 윤 후보의 선택은 자기 반성과 정면돌파다. 그는 "자기 마음과 그것이 표현돼 국민들께 들릴 때 받아들이는 것이 굉장한 차이가 있다는 엄연한 현실을 알아야 하는데 이를 배우는 과정이 어려웠고 소중한 시간이었다"며 "국민 입장에서 납득하기 어려운 말도 했기 때문에 후회되는 것이 한 두 개겠냐만은 후회보다는 국민에 사과드리고 질책 받을 것은 받고 책임져 나가는 것이 더 필요하다고 생각한다"고 했다.
일단, 윤 후보는 '전두환 옹호 논란'에 대해 사과하기 위해 오는 10일 광주를 찾기로 했다. 국민의힘 한 의원은 "이번 대선은 누가 중도층을 더 포용하느냐에 달려있다"며 "이제부터 윤 후보가 어떤 모습을 보여주느냐에 중도층의 지지가 달려있다"이라고 내다봤다. 윤석열 캠프 김병민 대변인도 이날 CBS라디오 한판승부에 출연해 "지금까지는 전통 당원 지지층을 확보하고, 많은 분들을 끌어 안아 선거를 치르는 구도에 있었다"며 "앞으로는 국민들의 기대감을 바탕으로 정치혁신 등 더 많은 중도층에게 호소할 수 있는 방식으로 외연확장에 나서겠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