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웅 검사는 2년 뒤 국민의힘 국회의원이 됐다. '고발사주 사건'과 관련해 김웅 의원이 3일 공수처에 소환돼 12시간 동안 조사를 받았다. 김 의원은 조사를 마치고 기자들에게 "기억나지 않는다"라고 답변했다고 밝혔다. "공수처 조사를 받아보니 크게 결정적인 이야기는 없었고 단서도 '손준성 보냄' 밖에 없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저희'라는 표현도 "실체가 없는 억측"이라고 강조했다.
십수 년 전 사건 내용과 피의자와의 대화 내용까지 상세히 기억해낸 김웅 검사의 기억력이 국회의원이 된 뒤로는 왠지 발휘되지 않았다. 단기 기억상실증이라도 걸렸는지 불과 1년 전 있었던 고발사주 사건에 대한 기억은 흐릿하다. 의도된 망각이 아니라면 설명하기 어렵다.
김웅 의원으로서는 이승에서의 모든 과거와 기억을 '레테의 강물'을 퍼마시고 깨끗이 지워버리고 싶었을 것이다. 문제는, 김웅 의원을 레테 강가에까지 끌고 온 공수처다.
공수처는 앞서 사건의 핵심 인물인 손준성 검사에 대해 구속영장을 청구했지만 기각당했다. 손준성 검사와 김웅 의원을 잇달아 소환조사했지만, 이들의 부족한 기억력을 극복할 단서를 제시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김웅 의원은 "공수처가 언론 기사 외에 별도의 단서를 확보하지 못한 것 같다"고 공수처의 수사 능력을 은근히 조롱했다. 수사가 이렇게 흘러갈 경우, 고발사주 사건은 김웅 의원 말대로 '실체가 없는' 미궁에 빠질 것으로 보인다.
고발을 사주한 문건과 녹취록은 있는데 사주한 사람은 없다면 공소권이 없는 사건이 된다. 마치, 술은 마셨지만 음주운전은 아니고 강간은 했지만 성폭행이 아니며, 속였지만 사기죄가 아닌 형국으로 가고 있다.
김웅 의원은 '검사내전'에서 "끊임없이 거짓과 싸워야 하는 검사 일을 하다 보니 한때는 사람 말을 믿지 않게 되었다"라고 썼다. 거짓과 싸우던 김웅 의원은 이제 진실과 싸우려하고 있다. 그의 가장 강한 무기는 기억력이다. 인간미와 기개 넘치던 검사가 정치인이 된 뒤 그의 기억 능력에 보조장치가 달렸다. 바로 상황에 따라 그때그때 작동되는 의도된 망각 능력이다. 김웅 의원은 검사와 정치인의 차이가 바로 의도된 망각 능력의 차이라는 점을 2년 만에 알아차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