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수처에 '반인권적'이라는 딱지를 붙이는 데 수긍하기 어렵다고 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공수처 출범이 무엇으로부터 기인했는지 안다면 공수처의 '반인권적 행태'라는 표현이 무척 낯설게 여겨질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수처라는 조직은 기존 최고 권위의 수사기관이었던 검찰의 반인권적 수사관행을 타파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태동한 기관이었다.
실제로 올해 1월 19일 국회의사당에서 있었던 인사청문회 모두발언에서 김진욱 초대 공수처장의 목소리가 생생하다. 그는 "법의 지배와 적법 절차원칙은 국민 기본권을 보호하기 위한 헌법상의 대원칙이다. 실체적 진실 발견에 최선을 다하면서도 인권을 침해하지 않도록 하겠다"며 "품격있고 절제된 수사를 공수처의 원칙으로 삼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하지만 이번에 드러난 공수처 '최초'의 인신구속 영장 청구 과정은 "품격있고 절제된 수사"와는 거리가 멀었다.
여기다 공수처가 브리핑을 통해 밝힌 손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 청구 이유는 '수사 비협조'였다. 이달 초부터 손 검사와 접촉해 소환 일정을 조율하면서 14일이나 15일 출석해 달라고 요청했지만 손 검사는 변호인 선임이 늦어지고 있다며 22일 출석하겠다고 했다가 하루 전인 21일 "내달 2일 또는 4일 이후 출석이 가능하다"고 통보한 것이 수사에 '비협조적 태도'라는 설명이었다.
공수처가 손 검사에 대한 영장청구 과정에서 유독 '국민의 알권리'를 높이 산 이유가 궁금해진다. 공수처가 틈만 나면 지적했던, '여론 압박을 통한 무리한 수사'라는 검찰의 구태가 연상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수처 관계자는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 청구가 있었는지 묻는 질문에 "신속하게 신병확보해서 본안수사로 가는 것이 낫겠다는 판단을 했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질문이 계속되자 "형소법상 반드시 체포영장을 청구하고 구속영장을 청구하는 것은 아니다"라며 마치 체포영장 청구가 없었다는 뉘앙스마저 풍겼다.
공수처가 구속영장 청구 나흘 전 손 검사에 대한 체포영장을 청구하고 기각당했다는 소식은 한 매체의 보도를 통해서야 알려졌다. 체포조사가 구속에 앞서 범죄혐의를 어느 정도 구체화 시킬 수 있는 과정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과거 검찰의 구태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질나쁜 편법을 공수처가 구사한 것이다. 공수처가 체포영장을 기각당한 뒤, 곧바로 구속영장을 청구한 사실이 알려졌다면 처음부터 '무리수 구속 영장 청구'라는 비판을 피하기 어려웠을 터였다.
공수처의 '이상한' 영장청구에도 여론은 "그래도 공수처가 결정적인 증거가 있으니 영장을 청구했을 것"이라는 희망을 놓을 수 없었다. 하지만 영장청구가 기각된 뒤 언론보도를 통해 드러난 상황은 이같은 희망마저 무참히 꺾어놓았다.
공수처가 작성한 손 검사에 대한 구속영장에는 '성명불상'이라는 단어가 난무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손 검사를 비롯해 성상욱 당시 수사정보2담당관과 공모했다고 보는 윗선의 상급 검찰 간부는 물론이고 손 검사가 최강욱 국회의원에 대한 고발장 작성을 지시했다는 검찰 공무원도 모두 '성명불상'으로 뭉갰다. 영장청구의 가장 중요 근거가 된 직권남용 혐의를 입증하기 위해서는 명령을 내리고 받은 사람들의 구체적 관계를 특정짓는 것이 기본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영장이 아니라 소설에 가깝다"는 한 법조인의 탄식이 과장만은 아닌 셈이다.
공수처가 왜 이런 참담한 무리수를 감행한 것일까? 현 대선정국이라는 민감한 정치상황을 빼고서는 적당한 답을 찾기 힘들어 보인다. 공수처는 현 야권에 악재였던 '고발사주' 의혹이 언론에 의해 보도된 이후 고발장이 접수된지 이틀만에 고발인을 소환한데 이어 또 이틀 뒤 전격 압수수색에 착수하는 기민함을 보였다. 이례적으로 신속한 행보만큼이나 별다른 관계자 소환조사나 명백한 증거도 없이 손 검사 영장 상당부분을 윤 전 총장 관련 내용에 할애했다는 점은 정치적 편향성 논란을 가중시키고 있다.
김진욱 공수처장은 국회 인사청문회장에서 "공수처는 건국이래 수십년 동안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해온 체제를 허물고 형사사법시스템의 일대전환을 가져오는 헌정사적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불행히도 현 공수처의 모습만 놓고 보면 김 처장의 평가에 허탈한 웃음을 터뜨리는 이들이 더 많을 듯 하다. 김 처장이 누차 강조한 정치적 중립성과 객관성은 물론 인권수사조차 내팽개친 공수처. "이러려면 왜 공수처가 존재하는 것이냐"는 존재론적 질문부터 답해야할 때다.
생긴지 얼마 안된 조직이고, 수사 경험이 없는 사람에게 수사를 맡기다보니 수사에 서투를 수는 있다. 그렇다고 천둥벌거숭이마냥 제멋대로 하라고 만든 조직은 아니잖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