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레이시아 기업 MBI를 둘러싼 5조원 규모 다단계 사기 의혹을 수사해온 경찰이 사기 혐의를 입증할 정황을 파악한 것으로 확인됐다.
국내에서 활동하는 MBI 간부들은 '말레이시아 본사'가 운영하는 가상화폐에 투자하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홍보해왔다. 하지만 경찰은 투자금이 말레이시아로 넘어간 사실이 없으며, 가상화폐도 국내 총책들이 자체 제작한 것으로 파악했다.
가상화폐 아닌 '말레이시아' 주목한 경찰
28일 CBS노컷뉴스 취재를 종합하면 인천삼산경찰서는 국내 MBI 최상위 사업자인 A씨 등 2명을 사기, 방문판매법 위반 등 혐의로 검찰에 송치했다.
A씨 등은 2017~2019년 B씨 등 9명을 상대로 말레이시아 기업 MBI의 자회사인 엠페이스라는 업체에서 만든 가상화폐(GRC)에 투자하면 큰 수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하며 5억 원을 받아챙긴 혐의를 받는다.
A씨 등은 '6개월에 2배가 오르는 가상화폐'라며 투자자를 모은 것으로 조사됐다. 현금으로 환전하거나 가상화폐로 물건을 구매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처럼 국내 MBI 운영진들은 '말레이시아 본사가 운영하는 사업', '무조건 오르는 가상화폐' 등으로 사업을 홍보해왔다. 대부분 수사기관에서는 '가상화폐'에 집중했다. 다만 가상화폐 특성상 가격이 오르내렸고, 사기가 아닌 투자권유로 해석되며 무혐의 처분이 많았던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이번 수사를 진행한 경찰은 '말레이시아 본사'에 주목했다.
경찰은 피해자들이 건넨 투자금을 A씨가 말레이시아 본사로 송금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말레이시아 본사에 투자하려면 원화를 말레이시아 화폐로 환전해야 하는데, 경찰은 A씨 등이 외환거래 자격이 없는 무등록 업체인 사실을 확인했다. A씨 등의 계좌에서도 말레이시아 본사로 돈이 넘어간 흔적은 없는 것으로 전해졌다.
가상화폐에 투자하는 사이트(MFC클럽)도 실제 엠페이스가 운영하는 곳이 아닌 것으로 조사됐다. A씨 등이 안내한 사이트는 미국의 한 도메인 업체가 제작한 일종의 게임용 사이트인 것으로 전해졌다.
말레이시아 본사로 가야할 투자금은 국내에 머물렀고, 가상화폐 사이트를 말레이시아 본사가 운영하지 않는다는 것인데, 경찰은 이 부분이 사기라고 판단했다.
일부 피해자들은 투자금에 따른 수익을 받기도 했지만, 이는 신규 고객이 투자한 금액으로 돌려 막는 폰지사기의 형태로 파악됐다.
사기? 투자권유? 각종 고소고발에도 대부분 무혐의
말레이시아 기업인 MBI는 10년째 '다단계 사기' 의혹을 받고 있다. MBI는 2010년대 초반부터 한국과 중국 등지에서 가상화폐 투자 사업을 했다.
국내 운영진들은 MBI 자회사인 엠페이스가 만든 가상화폐에 투자하면 큰 수익을 낼 수 있다고 홍보했다. 시간이 지날수록 가치가 오르며, 가상화폐로 환전이나 물건을 구매할 수 있다고도 했다.
하지만 투자자 대부분이 돈을 잃었고 환전도 되지 않았다. 각종 고소·고발이 진행됐지만 사기 혐의가 입증된 사례는 드물다. 지난 2019년 대구지검은 사기 등 혐의를 받는 MBI 대구 운영진에 대해 무혐의 처분을 내렸다. 당시 검찰은 사기가 아닌 투자를 권유한 것으로 판단했다.
피해자는 노인·저소득층…전국 통합수사 촉구
A씨 등은 평소 '삼성은 망해도 MBI는 망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한다. 이런 말을 듣고 돈을 건넨 B씨 등은 은퇴자금을 모은 노인이나 저소득층인 것으로 전해졌다.
MBI 피해자들은 전국에 있는 피해자만 8만명, 피해액은 5조원에 달한다고 주장한다. 이들은 MBI피해자연합회를 구성하고 집단 행동을 하고 있다.
특히 밸류인베스트코리아·IDS홀딩스·키코·라임 옵티머스 사업 피해자 모임인 불법금융 피해자연대에도 합류해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전국 곳곳에서 피해 사례가 늘고 있는 만큼 수사 당국에 통합 수사를 촉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