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중앙지검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 전담 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과 뇌물공여약속 등 혐의로 지난 18일 미국에서 귀국한 즉시 체포했던 남 변호사를 20일 석방했다.
남 변호사는 대장동 민관(民官) 합동 개발 사업이 본격화되기 6년 전인 2009년부터 이 지역 민영개발을 추진하며 서서히 사업 주도권을 잡았던 이른바 '대장동 개발 원년멤버'다. 그와 정영학 회계사, 부동산 컨설팅 업체 대표 정재창씨는 당시 건설업자 이모씨의 자문단으로 활동하며 대장동 사업의 밑그림을 그렸다. 남 변호사는 이 시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도의 공영개발 계획을 좌초시키기 위해 정치권에 로비를 한 혐의로 2015년 구속기소 됐다가 무죄로 풀려나기도 했다.
그는 2015년 본격화 된 대장동 사업의 민간주체 화천대유 자산관리(화천대유)의 관계사인 천화동인 4호의 소유주로서 최근 3년 동안 약 1007억 원을 배당받았다. 그만큼 대장동 사업의 과거와 현재를 꿰고 있는 이번 사건의 '키맨'이다. 사건 관계자들도 자진 귀국한 그가 어떤 논리를 내세울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남 변호사는 대장동 사업 공공부문 실무 지휘자인 유동규 전 성남시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사전에 공모해 민간의 과도한 이익을 제한하는 견제 조항 배제 등 특혜를 받아 성남시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는다. 특혜의 대가로 유 전 본부장에게 뇌물성 수익금 700억원을 약속한 혐의도 있다. 그러나 남 변호사는 2015년 5~6월 사업협약 논의가 이뤄질 당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 내용 자체를 알 수 없었다고 주장하며 특혜 공모 의혹에 선을 긋고 있다. 700억원 약정 의혹도 자신은 무관하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남 변호사는 유 전 본부장이 실소유주로 알려진 부동산 컨설팅 업체 '유원홀딩스'에 30억 원 이상 건넨 것으로 파악됐는데, 비료 사업 투자 목적이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사업 특혜에 따라 약속됐던 대가성 자금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 밖에 남 변호사는 대장동 사업 2년 전에 진행된 위례 개발 사업 과정에서도 동업자 정재창씨, 정영학 회계사와 함께 유 전 본부장에게 뇌물 3억 원을 건넨 의혹도 받고 있다.
당초 48시간의 체포시한이 만료되는 이날 새벽 5시 전에 검찰이 남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수사팀은 지난 이틀 동안 혐의가 입증될 만큼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해 석방 후 추가 조사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핵심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귀국 현장인 공항에서 즉시 체포했지만, 탄탄한 기초조사가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수사팀의 이례적인 석방 결정의 배경에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구속영장이 지난 14일 법원에서 기각된 데 따른 부담도 작용하는 기류다. 김씨 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이 '700억원 약정‧천화동인 1호 실소유권자 의혹' 정황이 담긴 정영학 회계사의 녹취 자료에 지나치게 의존해 관계자 조사나 물증 확보에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분출했다. 게다가 영장 기각 직후에서야 의사결정 구조의 정점으로 지목된 성남시청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그 대상에서 시장실과 비서실은 빠졌다는 점을 두고 검찰의 윗선 수사 의지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여러모로 검찰 수사가 중대 고비에 직면했다는 평가 속 법원은 구속 적법성을 다시 판단해 달라는 유 전 본부장의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 전 본부장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구속적부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전날 "구속영장의 발부가 적법하고 구속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 된다"며 기각했다. 검찰로선 이 대목에서만큼은 한 숨 돌린 셈이다.
물증‧수사의지 부족 비판에 선을 긋고 있는 수사팀은 남 변호사를 추가조사 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할 계획이다. 김만배씨에 대한 영장 재청구와 이번 주 중 유 전 본부장 기소도 검토 중이다. 수사 위기론의 확산 여부는 그 결과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 한편 검찰은 화천대유로부터 거액을 받았거나 받기로 약속됐다는 이른바 '50억 약속 클럽' 의혹과 관련해서도 참고인 조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