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국현장서 체포된 남욱, '수사 불충분' 이유로 석방…檢 수사 '고비'

미국에 체류 중이던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의 핵심 인물로 꼽히는 남욱 변호사가 18일 오전 인천국제공항 통해 귀국, 검찰 수사관에게 체포돼 공항을 나가고 있다. 이한형 기자
경기 성남 대장동 개발 특혜‧로비 의혹 사건의 핵심 인사인 남욱 변호사를 체포했던 검찰이 구속영장을 청구하지 못한 채 일단 석방했다. 이틀 전 체포 후 '마라톤 조사'를 이어왔지만, 혐의 입증까지는 추가 수사가 필요하다는 판단에 따른 것으로 알려졌다. 체포한 중요 피의자를 석방하는 건 다소 이례적인 경우여서 검찰 수사가 부실하게 이뤄지고 있는 것 아니냐는 물음표가 더욱 커질 것으로 보인다.
 
서울중앙지검 대장동 개발 의혹 사건 전담 수사팀(팀장 김태훈 4차장검사)은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배임과 뇌물공여약속 등 혐의로 지난 18일 미국에서 귀국한 즉시 체포했던 남 변호사를 20일 석방했다.
 
남 변호사는 대장동 민관(民官) 합동 개발 사업이 본격화되기 6년 전인 2009년부터 이 지역 민영개발을 추진하며 서서히 사업 주도권을 잡았던 이른바 '대장동 개발 원년멤버'다. 그와 정영학 회계사, 부동산 컨설팅 업체 대표 정재창씨는 당시 건설업자 이모씨의 자문단으로 활동하며 대장동 사업의 밑그림을 그렸다. 남 변호사는 이 시기 한국토지주택공사(LH) 주도의 공영개발 계획을 좌초시키기 위해 정치권에 로비를 한 혐의로 2015년 구속기소 됐다가 무죄로 풀려나기도 했다.
 
그는 2015년 본격화 된 대장동 사업의 민간주체 화천대유 자산관리(화천대유)의 관계사인 천화동인 4호의 소유주로서 최근 3년 동안 약 1007억 원을 배당받았다. 그만큼 대장동 사업의 과거와 현재를 꿰고 있는 이번 사건의 '키맨'이다. 사건 관계자들도 자진 귀국한 그가 어떤 논리를 내세울지 촉각을 곤두세웠다.
 
남 변호사는 대장동 사업 공공부문 실무 지휘자인 유동규 전 성남시도시개발공사 기획본부장과 사전에 공모해 민간의 과도한 이익을 제한하는 견제 조항 배제 등 특혜를 받아 성남시에 손해를 끼친 혐의를 받는다. 특혜의 대가로 유 전 본부장에게 뇌물성 수익금 700억원을 약속한 혐의도 있다. 그러나 남 변호사는 2015년 5~6월 사업협약 논의가 이뤄질 당시 검찰 수사를 받고 있었기 때문에 그 내용 자체를 알 수 없었다고 주장하며 특혜 공모 의혹에 선을 긋고 있다. 700억원 약정 의혹도 자신은 무관하다는 입장으로 전해졌다.
 
남 변호사는 유 전 본부장이 실소유주로 알려진 부동산 컨설팅 업체 '유원홀딩스'에 30억 원 이상 건넨 것으로 파악됐는데, 비료 사업 투자 목적이었다고 주장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검찰은 사업 특혜에 따라 약속됐던 대가성 자금으로 의심하고 있다. 이 밖에 남 변호사는 대장동 사업 2년 전에 진행된 위례 개발 사업 과정에서도 동업자 정재창씨, 정영학 회계사와 함께 유 전 본부장에게 뇌물 3억 원을 건넨 의혹도 받고 있다.
 
당초 48시간의 체포시한이 만료되는 이날 새벽 5시 전에 검찰이 남 변호사에 대한 구속영장을 법원에 청구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그러나 수사팀은 지난 이틀 동안 혐의가 입증될 만큼 충분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았다고 판단해 석방 후 추가 조사 결정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다. 그가 핵심인물이라는 점 때문에 귀국 현장인 공항에서 즉시 체포했지만, 탄탄한 기초조사가 부족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는 대목이다.
 
수사팀의 이례적인 석방 결정의 배경에는 화천대유 대주주 김만배씨의 구속영장이 지난 14일 법원에서 기각된 데 따른 부담도 작용하는 기류다. 김씨 영장이 기각되자 검찰이 '700억원 약정‧천화동인 1호 실소유권자 의혹' 정황이 담긴 정영학 회계사의 녹취 자료에 지나치게 의존해 관계자 조사나 물증 확보에 소홀했던 것 아니냐는 지적이 분출했다. 게다가 영장 기각 직후에서야 의사결정 구조의 정점으로 지목된 성남시청 압수수색이 이뤄졌고, 그 대상에서 시장실과 비서실은 빠졌다는 점을 두고 검찰의 윗선 수사 의지를 의심하는 목소리도 이어졌다.
 
여러모로 검찰 수사가 중대 고비에 직면했다는 평가 속 법원은 구속 적법성을 다시 판단해 달라는 유 전 본부장의 요청은 받아들이지 않았다. 유 전 본부장은 혐의를 전면 부인하며 구속적부심을 청구했지만 법원은 전날 "구속영장의 발부가 적법하고 구속을 계속할 필요가 있다고 인정 된다"며 기각했다. 검찰로선 이 대목에서만큼은 한 숨 돌린 셈이다.
 
물증‧수사의지 부족 비판에 선을 긋고 있는 수사팀은 남 변호사를 추가조사 한 뒤 구속영장을 청구할 계획이다. 김만배씨에 대한 영장 재청구와 이번 주 중 유 전 본부장 기소도 검토 중이다. 수사 위기론의 확산 여부는 그 결과와 맞물릴 수밖에 없다. 한편 검찰은 화천대유로부터 거액을 받았거나 받기로 약속됐다는 이른바 '50억 약속 클럽' 의혹과 관련해서도 참고인 조사를 이어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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