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판]25년째 지적 받은 '불법 파업' 낙인…ILO 협약 국가 맞아?

※우리는 일합니다. 공장에서, 사무실에서, 거리에서, 가정에서 오늘도 일합니다. 지금 이 순간도 쉼없이 조금씩 세상을 바꾸는 모든 노동자에게, 일터를 찾은 나와 당신에게 필요한 이야기를 판깔아봅니다. [편집자 주]

"(민주노총 총파업) 요구안을 보게 되면 국방예산 삭감, 이거 (파업) 목적의 정당성에 해당됩니까, 안 됩니까?"

"해당되지 않는다고 봅니다"

"고용위기나 기간산업 국유화 문제라든가 전체 주거지의 60%를 국가문제로 해결해 달라, 지금 목적의 정당성에 해당됩니다, 안 됩니까? 안 되죠?"

"네"


고용노동부 안경덕 장관이 지난 6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국정감사에서 국민의힘 임이자 의원과 나눴던 질의응답의 한 장면이다.

안경덕 고용노동부 장관. 박종민 기자
이날 안 장관은 오는 20일로 예정된 민주노총 총파업에 대해 현행 노동조합 및 노동관계조정법(노조법) 등에 비춰볼 때 정당한 목적을 갖지 못했다고 해석했다. 보수언론들은 안 장관의 발언을 인용하면서 민주노총의 총파업은 '불법파업'이라고 단정짓고 비판을 쏟아냈다.

그렇다면 과연 이러한 안 장관의 해석은 적절한 것일까?


근로조건 유지·개선 목적 아니면 불법 파업이라는 정부


현행 노조법을 살펴보면, 제37조에는 '쟁의행위(파업)는 그 목적과 방법 및 절차에 있어서 법령 기타 사회질서에 위반돼서는 안 된다'고 규정하고 있다. 목적의 정당성을 갖추지 못하면 '불법 파업'이라는 낙인이 찍히고, 파업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민형사상의 책임을 노조가 고스란히 져야 한다.

그런데 어떤 파업 목적이 적법하고, 불법인지 여부를 정해놓은 법 규정은 따로 없다. 대신 정부는 노조법 제2조에 있는 '노동조합'과 '노동쟁의'의 정의를 근거로, 임금이나 노동시간, 복지, 해고 등을 다루는 '근로조건의 유지 및 개선'을 목적으로 한 파업만 정당하다고 보고 있다. 이러한 해석의 연장선에서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목적의 '정치적 파업'은 '불법 파업'으로 취급된다.

대법원도 정당한 파업의 목적에 대해 2013년 5월 "근로조건의 향상을 위한 노사간의 자치적 교섭을 조성하는 데에 있어야" 한다고 판결한 바 있는 만큼, 안 장관의 주장은 현행 법에 충실한 해석으로 볼 수 있다.


노동 현실과 동떨어진 구닥다리 해석, 언제까지 고수할까


하지만 이처럼 적법한 파업의 목적을 '근로 조건'에 관한 것으로만 좁힌 정부의 해석은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한다는 비판이 끊이지 않아왔다.

학계, 법조계에서는 적어도 노조가 노동법에 관련된 입법 사항을 요구하거나, 노동자의 노동조건과 직결된 사회보장제도를 개선해달라고 요구하는 등 노동자의 경제적·사회적 지위와 관련된 목적으로 파업에 돌입한다면 순수한 정치파업과 달리 적법한 파업으로 인정해야 한다는 주장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또 개별 사업장 단위 노조나 산별 노조가 벌이는 파업에는 이처럼 목적을 제한할 수 있지만, 민주노총과 같은 연맹 차원에서 추진하는 총파업에는 위와 같은 정부의 해석을 사실상 적용하기 불가능하다. 그동안 민주노총이 총파업을 벌일 때마다 '불법 파업' 시비가 끊이지 않았던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달 30일 서울 중구 민주노총 앞에서 열린 '민주노총 10. 20 총파업 전국 동시 결의대회'에서 참가자들이 구호를 외치는 모습. 이한형 기자

25년 동안 ILO로부터 개선 지적 받아…이제는 바꿀 때가 됐다


더 나아가 이러한 정부의 해석은 이미 국제 사회로부터 수십년 전부터 개선하라는 지적을 받을 정도로 국제 기준과 동떨어져 있다.

국제노동기구(ILO)산하에 있는 '결사의 자유 위원회'(CFA)는 무려 1996년부터 25년 동안 한국 정부와 관련 법 제도가 노조의 결사의 자유를 어기고 있다고 수십 차례에 걸쳐 지적해왔다.

당시 CFA는 한국 노조법의 일부 조항과 관행이 국제 노동기준에 위배된다며 관련 내용을 '1865호 사건'으로 묶어 심의하기 시작했는데, 이 1865호 사건은 CFA 역사를 통틀어 두번째로 장기간 해결되지 않은 사건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2017년 ILO가 채택한 CFA 보고서에서도 한국 정부를 상대로 "노동조합은 정부의 경제 사회 정책을 비판할 목적으로 항의 파업을 할 수 있어야 한다"며 "노동조합이 조합원의 이해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사회적 정책의 문제에 대해 자신의 견해를 공공연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보장할 것"을 촉구했다.

국제노동기구(ILO) 홈페이지 캡처
또 "파업행위의 정당한 목적에 대한 제한적인 해석은 노동자들을 민·형사상 소송의 위험에 노출시키고 파업 파괴를 목표로 하는 대체인력 투입을 정당화하기 위해 사용될 수 있다"고 우려하고, "노동자의 이해와 직접적인 관계가 있는 모든 사회·경제적 문제에 대해 파업행위가 이루어질 수 있도록 파업의 목적 정당성에 대한 현재의 협소한 해석을 폐기하기 위한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을 한국 정부에 요청하기도 했다.

지난 6월 문재인 대통령이 ILO 총회에서 기조연설을 맡고, 강경화 전 외교부 장관이 아시아·여성 최초의 ILO 사무총장직에 도전하고 있는 우리나라의 대외적 위상과는 정반대로 국내 노조법은 후진적 수준에 머물러 있는 셈이다.

더구나 정부가 지난 4월 ILO 핵심협약을 비준하면서 노동 관련 법·제도를 국제 기준에 맞춰 바꿔야 할 책임이 발생한만큼, 이제 더 이상 파업 목적에 대한 협소한 해석을 유지하기도 어렵다. 당시 비준된 협약 중 하나가 노조의 자유로운 활동 등을 보장하는 '제87호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 협약'이기 때문이다.

민주노총 류미경 국제국장은 "정부가 ILO 핵심협약 중 87호 협약을 제대로 적용할 의지가 있다면 안 장관은 협약에 어긋나는 현행 법이 아니라 협약에 근거한 답변을 했어야 할 것"이라며 "노동자들의 사회 경제적 지위향상을 위해 정부 정책의 변화를 요구하는 파업은 정당한 파업이라고 보는 것이 국제적으로 통용되는 기준"이라고 정부의 변화를 요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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