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행사건의 가해자와 마주칠 때마다 "가만두지 않겠다"는 협박이 있었고, '보호조치 요청'이 "언행에 지나치게 민감하게 반응하지 말라"는 '상관의 핀잔'으로 돌아오자 더 이상 버티기를 포기하고 계약직 공무원은 정든 회사를 떠난다.
특허청에서 계약직 심사관으로 일해 온 김홍래씨. 그는 정규직과 계약직의 거대한 장벽에 좌절해야만 했다. 직장내 괴롭힘 금지법도 그다지 도움이 되진 못했다. 그의 불행이 시작된 건 2011년 입사 때부터 시작됐지만 2년이 지나 2013년 9월 부서회식 자리에서 폭력사건으로 비화하고 말았다.
계약직 괴롭힌 특허청 사무관 "잔 받아 인마"
회식 자리에 술잔이 여러 순배 돌아가고 난 뒤, 이 모 사무관은 자신보다 4살이나 연상인 김홍래씨에게 잔을 건네면서 대뜸 "야 잔받아 인마"라고 욕설을 했다. 끝없는 괴롭힘도 모자라 모든 부서원 앞에서 욕설을 듣게 되자 김씨의 모멸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김홍래씨는 이 사무관을 밖으로 불러내 "왜 나를 무시하냐, 나 한테 왜 이러느냐"고 항의하자 "나이가 무슨 상관인데 이 XX야 넌 내가 죽여도 돼"라는 폭언으로 돌아왔다. 언쟁은 몸싸움으로 이어졌고 이 사무관이 김씨를 거칠게 밀치며 목과 가슴, 얼굴을 여러 차례 폭행했고 김홍래씨는 넘어진채 실신했다고 주장했다.
폭행사건이 터지자 회식 현장으로 119구급대와 경찰이 출동했다. 김씨는 병원으로 실려갔다. 현장에 있던 특허청 한 직원이 "직원들 끼리 회식하다 언쟁이 있어 그랬다 우리가 원만하게 해결하겠다"고 해명했다. 경찰관들은 사건조사 없이 인적사항을 파악한 뒤 현장을 떠났다.
폭력사건으로 비화했지만 처리가 제대로 되지 않은 탓일까 이 사무관의 직장내 괴롭힘은 계속됐다는 것이 김씨 주장이다. 그나마 인사발령으로 자연스럽게 분리조치가 되면서 한 동안 잊고 지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뿐 갈등관계에 놓인 이 사무관과 김홍래씨는 2019년 11월자 인사에서 나란히 일반기계심사과 근무를 명받게 된다. 김씨는 앞으로 당할 일을 생각하니 눈앞이 깜깜했다.
특허청의 몰개념 인사.. 두 사람 동일공간 발령
그래서, 상관인 과장에게 찾아갔다. SOS를 치기 위해서였다. 김홍래씨는 직속상관인 조 모 과장과 면담자리에서 이 사무관의 과거 괴롭힘을 언급하면서 "(이 사무관의) 상시적인 괴롭힘과 이로인한 상해위험으로부터 보호받고 싶고, 조직에 물의를 주지 않고 심사 업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하소연했다.이에대해 조 과장은 "이 사무관에게 조심하라는 주의를 줬으니, 김 심사관도 (이 사무관의 언행에)민감하게 반응하지 말고 조심하세요"라고 말했다. 과장과의 면담은 아무 약발도 발휘하지 못했다. 이 사무관의 반말과 욕설이 다시 시작됐고, 폭언과 괴롭힘으로 인한 김씨의 불안감과 모욕감은 커져만 갔다. 견디기 힘들었다고 한다.
이 때는 직장내 괴롭힘금지법이 입법 시행돼(2019년7월) 직장내 괴롭힘이 사회적 이슈로 부상했을 때였다. 김홍래씨는 법이 마련되면 처지가 나아지겠거니 은근히 기대도 했지만 자신을 괴롭히는 사무관에 대해 과거의 폭행이나 현재 벌어지고 있는 괴롭힘에 대해 조치도 없었고 피해자 보호를 위한 조치가 취해지지 않았다고 상황을 전했다. 직장내 괴롭힘이 있을 경우 사용자는 즉각적인 조사와 근무장소 변경 등의 합당한 조치를 취하도록 돼 있고 회식장소에서의 일도 예외가 아니다.
그동안 당한 직장내 괴롭힘을 이렇게 회상했다. 김씨는 12일 CBS노컷뉴스와 가진 인터뷰에서 "이OO 사무관은 2011년 8월 제가 입사할 때부터 계약직이란 이유 하나만으로 반말, 폭언, 명령, 하수 취급을 일삼고 과원들 앞에서 온갖 모욕적이고 폭력적인 언행을 반복해 왔어요. 폭행사건에 대해서도 어떠한 사과 한 마디 없었고 더욱 기세등등하게 회사 내에서 마주칠 때마다 가만 안두겠다는 식의 폭력적인 언행으로 일관했어요"라고 주장했다.
"계약직이란 이유만으로 반말, 폭언, 하수취급"
김씨는 일반기계심사과 재직 당시 소속 과장의 도움은커녕 '부당한 피해'까지 입었다고 주장하며 관련 증거를 제시했다.특허청 심사과에서는 심사관 성과평가를 할 때 피심사자들로 하여금 자신의 주요실적을 적어 과장에게 제출하도록 했지만, 2019년 성과평가 때는 조 과장이 웬일인지 소속 팀장을 통해 "주요실적을 작성할 필요가 없다"는 전달사항을 보냈다. 김홍래씨는 당연히 주요실적을 적어내지 않았고, 김씨의 성과평가 점수는 하위권(B)으로 강등됐다.
이유는 '주요실적을 전혀 기재하지 않아 성의가 없다'는 것이었다. 이와관련해 김홍래씨는 "각 심사관들의 주요 실적은 서무 사무관이 일괄 작성해 제출한다고 하니 일반 심사관들은 주요 실적을 작성할 필요가 없다는 쪽지를 자신의 팀장이 보내왔다"고 말했다. 김씨는 직속상관인 팀장과의 대화내용 일체를 증거로 보관하고 있다.
사직서 낼 땐 "심사건 무조건 등록" 부당지시 받아
김홍래씨가 2020년 4월 사직서를 제출하게 됐을 때는 이런 일도 있었다. 당시 소속 과장이었던 임 모씨는 김씨가 가지고 있던 "특허심사건 전체를 무조건 등록처리하라"고 지시했다. 통상 특허심사가 접수될 경우 심사관들은 특허로서의 가치가 있는 지 면멸히 분석 검토하는 과정을 거친 뒤 등록여부를 결정한다. 특허등록을 대충 결정하면 반드시 나중에 부실심사로 문제가 될 소지가 다분하기 때문이다.그런데 "해당 과장은 김씨에게 계류중인 모든 특허심사건을 등록하라고 지시해 (특허심사가) 부실하게 처리하도록 강요하고 일반 출원인들에게 까지 시간적 경제적 피해를 초래했다"고 김홍래씨는 주장했다.
폭행사건에 대해 특허청 감사실은 "관련 영상이 증거 자료로 남아 있고, 청 내 규정상 폭행 후 3년 시효가 지났으므로, 징계는 불가능하고 서면 경고는 가능하다"는 답변을 김홍래씨에게 보냈다. 감사실 관계자는 CBS와의 통화에서 "징계시효가 지나 내부규정상 경고처분했다"면서 "김홍래씨도 퇴직하지 않았다면 경고를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사무관 "내가 먼저 맞았다" 주장
CBS는 내밀하게 이뤄지는 괴롭힘 범죄의 특성을 감안하고 피해자의 일방적 주장이 기사화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폭행의 당사자인 이 사무관과도 인터뷰를 가졌다.이 사무관은 "폭행사건이 있은 날 김홍래씨가 먼저 내 뒤통수를 쳐서 몸싸움을 했다"고 말했고 회식자리에서도 "술잔을 건네면서 잔 받아 인마라고 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지속적인 괴롭힘이 있었다'는 김홍래씨 주장에 대해서도 자신은 괴롭히거나 폭행한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그는 "한번은 지나가다가 어깨가 부딪친 적이 있는데 이걸 갖고 폭행했다는 주장을 폈다. 있지도 않은 일을 김홍래씨가 말하고 다녀 자신이 오히려 억울하다"고 주장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