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읽기]'불협화음' 여수산단 거버넌스, 공정성 이슈 돌파할까

거버넌스, 산단 기업 연구용역 기관 선정에 참여 보장
권고안 최종 합의 발표에 기업도 시민사회도 불만
각 주체 한발씩 물러나 시민 입장에서 합의점 찾길
전남노컷 지역 이슈 해설 코너 '판읽기' 첫 선
깊이 있는 취재로 지역 현안 해설과 대안 제시

전남 여수국가산단 진입도로. 여수시 제공
전라남도 주관 여수산단 거버넌스 위원회가 23차례 회의를 한 끝에 힘겹게 권고안 추진에 최종 합의했습니다. 2019년 4월 여수국가산단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조작 사건이 발생한 지 2년 6개월만입니다.

거버넌스에서 합의된 권고안 9개항은 위반업체 민관 합동조사, 배출시설 현장공개, 환경오염 실태조사, 건강역학조사, 환경감시활동 강화와 센터 운영, 측정망 설치와 섬진강유역환경청 신설, 위반업체 환경개선대책, 지도점검 인력과 장비 충원, 행정기관 역할 등입니다.
 
거버넌스 권고안의 최종 합의는 다양한 이해 관계자 간의 의견을 조정하기 위한 과정이라는 점에서 평가할 만합니다. 하지만 30개월이나 걸린 점은 안타까운 부분입니다.
 
그런데 이처럼 장기간이 소요된 거버넌스 권고안 최종 합의 발표에도 불구하고 시민사회와 산단 기업 양측 모두 불만족스럽다는 반응이 나옵니다.
 
권고안의 핵심은 여수산단 주변 환경오염 실태조사와 주민 건강 역학조사 및 위해성 평가인데 산단 기업들은 공신력 있는 기관에 연구용역을 맡겨야 한다는 입장입니다.
 
여기에는 환경단체와 지역 시민단체 등에 대한 불신이 깔려 있습니다. 용역 기관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시민사회의 '입김'이 작용해 편향적인 기관이 선정되면 그 결과를 믿을 수 있겠느냐는 겁니다.
 
산단 기업들의 이런 입장은 사실 오래 전부터 예고된 겁니다.
 
전라남도 주관 여수산단 민관협력 거버넌스는 애초 배출량 조작 기업 공장장들을 위원으로 참여시켰습니다.

김영록 전남지사는 2019년 4월 여수산단 입주업체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조작 사건이 발생한 직후 여수산단에서 기업체, 시민단체, 관계기관 등과 대책회의를 갖고 민관 협치기구인 거버넌스 구축을 통한 해결을 약속했습니다.
 
그런데 5월 8일 전남도와 여수시, 기업체 공장장, 대기전문가, 여수시민단체와 환경단체 등 24명이 참석한 가운데 첫 민관협력 거버넌스 1차 회의에서, 기업들은 위원이 아닌 참고인 자격으로 변경됐습니다. 거버넌스 회의에서 발언권이 제한된 겁니다.
 
기업들은 이때부터 거버넌스 회의에 불참했고, 기업이 빠진 가운데 지난 30개월 동안 스무차례 넘는 회의를 열고 권고안이 만들어진 겁니다. 물론 거버넌스는 이 과정에서 기업들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했다는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업들은 일방적으로 만들어진 거버넌스 권고안을 수용하기 어렵다며 반발했고, 논의는 원점으로 되돌아갔습니다.
 
여수국가산단 환경관리 종합대책 마련을 위한 민관협력 거버넌스 위원회 회의. 최창민 기자
시민사회도 불만이 있기는 마찬가집니다. 전라남도는 권고안 최종 합의를 도출하기 위해 산단 기업들과 간담회를 가졌고 일부 수정된 내용을 거버넌스 회의에 올렸습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시민단체 위원들의 거센 반대에 직면했습니다.
 
여수환경운동연합 조환익 정책국장은 지난 23차 거버넌스 회의에서 "2019년 대기오염물질 배출 조작 사건 이후 위반 기업들은 CEO가 직접 나서 지역사회에 사과를 하고, 거버넌스가 구성되면 그에 따르겠다고 여러 번 약속했다"며 권고안을 거부하고 있는 여수산단 기업들을 비판했습니다.
 
전라남도가 기업의 입장만을 대변하고 있다는 주장도 제기됐습니다. 여수산단 거버넌스 정한수 위원장은 "전남도의 이번 권고안 합의는 기업의 입장만 받아들인 것"이라며 "기업들이 권고안을 불수용하자 7개월 동안 손놓고 있다가 기업측을 만나 수정안을 가지고 와서 기업이 원하는 쪽으로 수정했다"고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정 위원장은 "2월 23일 권고안도 양보에 양보를 거듭해서 만들었는데 기업과 또 타협하자는 것은 2019년 4월 배출량 조작 사건이 터지기 전으로 돌아가자는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이번 23차 회의에서는 산단 주변마을 주민들도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거버넌스 위원회 내 시민사회 위원들의 강경한 태도를 비판하고 나선겁니다.
 
삼일동 주민대표는 "조사범위가 반경 10km로 중앙동까지 포함되어 있다"며 "거버넌스 위원회가 기업이 빠진 상태에서 과도한 부분을 요구해놓고 무조건 따르라는 태도가 맞느냐"고 말했습니다. 묘도동 주민대표도 "세부 내용을 어떻게 할 것인지 논의하는 것으로 알고 참석했는데 기존에 결정난 걸 왜 하냐고 하니 어안이 벙벙하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이처럼 산단 기업은 기업대로, 시민사회는 시민사회대로, 주변마을 주민은 주민대로 각기 다른 목소리를 내면서 거버넌스 권고안 추진에 동력이 실릴지 의문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전라남도는 산단과 시민사회, 주변마을 주민을 모두 설득하며 권고안을 실행해나갈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특히 기업들이 제기하고 있는 연구용역 기관 선정의 공정성을 담보하기 위한 각종 장치를 마련하겠다는 입장입니다.
 
연구과제 2건의 공정한 관리를 위해 구성하는 전문위원회에 기업 추천 위원 3명을 포함하기로 했습니다. 그동안 거버넌스 위원회에서 배제됐던 기업들이 의견을 낼 수 있는 창구를 열어주겠다는 의미로 풀이됩니다.
 
또 거버넌스 추천 위원을 5명으로 늘리고 국가기관 1명도 포함시키기로 했습니다. 거버넌스 추천 위원 5명은 주민대표 위원 추천 2명, 사회단체 위원 추천 1명, 전문가 위원 추천 2명으로 구성한다는 계획입니다.
 
전라남도청사 전경. 전남도 제공
전라남도는 전문위원회가 수행기관의 제안서를 검토해 보완방안 등 의견을 제시하고 연구과제 수행단계별 데이터에 대한 검증과 해석, 연구과제 결과 보고서 사전 검토 등을 통해 연구과제 전반의 공정성을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산단 기업들은 조만간 회의를 열고 최종 합의된 거버넌스 권고안을 검토할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시민사회도 별도로 모임을 갖고 23차 거버넌스 위원회의 결정에 대한 입장을 정리할 계획입니다.
 
전라남도 동부지역본부는 권고안을 놓고 여전히 갈등하고 있는 양측을 모두 접촉해 설득하는 과정을 거치겠다고 밝혔습니다.
 
시민을 큰 충격으로 몰아넣었던 여수국가산단 기업들의 대기오염물질 배출량 조작 사건. 사태 해결을 위한 거버넌스 위원회의 권고안이 순항할지, 아니면 갈등만 더 커질지, 각 주체들이 시민의 입장에서 한발씩 물러나 뜻을 모으는 노력이 필요해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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