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사 미진했지만 직무유기는 아니다?…처벌 피한 부사관 사망사건 책임자들

국방부 합동수사단이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사건에 대한 중간 수사 결과를 발표한 지난 7월 9일 오전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 마련된 고(故) 이 모 중사 추모소 모습. 연합뉴스
국방부는 7일 공군 부사관 이모 중사 성추행 사망 사건 최종 수사 결과를 발표하면서 수사를 결론지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초동수사 부실에 책임이 있다고 지목된 이들은 '수사가 미진한 사실은 있는데 증거가 부족해 법리적으로는 혐의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아무도 처벌을 받지 않게 됐다.

이 중사가 사망한 지 열흘이 지난 5월 31일 사건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국군통수권자인 문재인 대통령까지 나서 사과하고 서욱 국방부 장관은 철저한 진상규명을 약속했다.

사상 유례없이 특임 군 검사까지 투입해 몇몇 사건을 재조사했음에도 부실수사 책임자를 처벌하지 못한 채 끝났다. '부실수사에 대한 형사책임을 묻지 못하는 부실수사'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가장 큰 책임 지목된 군사경찰 '불기소'…"초동수사 미진했지만 처벌은 못한다"

일단 초동수사 부실과 관련해 가장 큰 책임이 있다고 지목된 20전투비행단 군사경찰이 처벌을 피해갔다.

군사경찰대대장 고모 중령과 수사계장 황모 준위는 3월 2일 성추행 사건이 일어난 뒤, 가해자 장모 중사를 조사하기도 전에 '불구속' 방침을 미리 결정하고, 이 중사가 성추행 피해를 당한 날 같은 부대 선임 김모 중사와 통화한 녹취파일을 적극적으로 확보하려 하지 않았다. 또 압수수색 영장도 신청하지 않는 등 초동수사를 부실하게 한 혐의를 받고 있다.

황 준위는 3월 8일 범죄혐의 인지보고서에 장 중사에 대해 '불구속' 의견을 기재했다. 17일에 첫 가해자 조사를 하기도 전이었다. 그가 변호사를 선임했기 때문에 도주 우려가 없다는 이유를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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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군본부 군사경찰단에서 파견나온 성범죄 전문 수사관이 3월 7일 '강제추행 정도가 매우 심하고 구속영장 신청 검토가 가능하다'고 의견을 전달했지만, 이튿날 고 중령이 20전투비행단장 이성복 준장과 공군본부 군사경찰단에 보고한 내용에는 불구속 수사 방침이 유지됐다.

8월 11일 7차 수사심의위원회에서 위원들은 군사경찰이 이런 식으로 수사를 진행한 일이 통상적으로 수사에 걸리는 기간과 관행을 벗어나지는 않았다며 직무유기죄 성립에 필요한 '고의성'을 충족시키지 못한다고 다수결로 판단했다. 징계할 사항이긴 해도, 형사처벌할 일은 아니라는 논리다.

관련해서 시민단체 군인권센터는 9월 28일 기자회견을 열고 "황 준위는 '고 중령이 불구속 방침과 압수수색 최소화 등을 지시해 그에 따라 불구속 방침을 세웠다'고 주장하고, 고 중령은 '3월 8일에 황 준위에게 구속 수사해야 하지 않냐고 묻자 전문 수사관이 불구속 의견을 줬다고 보고해 그에 따라 군 검사와 협의하고 결과를 다시 보고하라 지시했다'고 주장한다"고 밝혔다.

이어 "둘 중 한 사람은 거짓말을 하고 있는데, 국방부 검찰단은 진술이 엇갈려 사실을 파악하기 어렵다는 황당한 결론으로 수사심의위원회에 보고했다"며 "진술이 엇갈려 진상규명이 불가능하다면 세상에 수사할 수 있는 사건은 하나도 없는데, 수사를 할 줄 모르는 것이 아니라면 진술이 엇갈린다는 이유로 수사를 종결해버린 데는 모종의 이유가 있다고밖에 볼 수 없다"고 주장했다.

유족 요구로 특임 군 검사인 해군본부 검찰단장 고민숙 대령이 이 사건을 다시 조사했지만, 결국 두 사람은 증거가 충분하지 않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됐다.

국방부 수사 관계자는 "초동수사가 잘 됐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형사적으로 직무유기가 성립하려면 의식적으로 수사를 포기하거나 방임했어야 하는데 그 정도는 아니었다"며 "수사 미진은 분명히 있었고 징계 의뢰했다"고 설명했다.

제때 보고 안 이뤄진 공군본부 법무실도 "게을렀지만 처벌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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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사경찰 단계에서 부실하게 진행된 수사는 같은 부대 검찰로 송치된 뒤에도 이어졌다. 이와 관련해 '최종 지휘감독'을 소홀히 한 혐의를 받는 공군본부 법무실도 처벌을 받지 않게 됐다.

일단 법무실장 전익수 준장은 사건이 발생한 지 며칠 지나지 않은 3월 8일에 '참고보고' 형식으로 20전투비행단 법무실로부터 성추행 사건 관련 보고를 받았다.

이후 이 중사가 5월 21일 사망하기 전까지 공군본부 법무실에는 특별히 사건 관련 보고가 올라가지 않았다고 한다. 4월 7일에 사건이 검찰로 송치됐고, 같은 달 14일에 이성용 당시 공군참모총장이 사건사고 관련해서 '주간 보고' 형식 서면보고를 받을 때 해당 사건이 포함돼 있었을 뿐이다.

국방부 수사 관계자는 "전 실장이 법무실장으로서 (사건 수사가 진행되는 동안) 지휘감독을 하지 않은 책임이 있다고 하지만, 언제 어떤 타이밍에서 무엇을 했어야 할지가 명확하지 않았다"며 "구체적으로 지휘감독을 했어야 하는데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몰라서 (지시할) 명분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이 사건 또한 특임 군 검사가 수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전 실장과 고등검찰부장 한모 중령 그리고 20전투비행단 군 검사 박모 중위는 증거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불기소 처분됐다. 다만 국방부는 공군본부 법무실이 '게을렀다'는 지적은 인정했다.

수사 관계자는 "각군 본부 법무실에서는 고등검찰부가 예하부대 업무에 대해 관여하고 있는데, 어떤 사건인지 알기 위해 예하부대가 사건 접수를 하면 본부에 보고하도록 하고 있다"며 "4월 초 20전투비행단 검찰이 군사경찰로부터 사건을 송치받았는데, 관련 보고가 전산 시스템에 바로가 아니라 5월 초에 이뤄졌다"고 설명했다.

이어 "과정적이고 결과론적이지만 4월 중순에라도 적시적인 보고가, 즉 이런 중대한 사건이 20전투비행단 검찰에 접수됐다고 공군본부에 적시에 보고됐었다면 조금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싶다"며 전 실장이 이를 알면서도 게을리했다는 비행 사실로 징계 절차를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엉터리 초동수사 책임자 불기소에 유족 강력 반발…"대국민 사기극"

공군 성추행 피해자 이 중사 아버지가 지난달 28일 서울 마포구 군인권센터에서 열린 '이 중사 사망사건 수사 결과 비판' 기자회견에 참석해 딸의 사진을 들고 발언을 하는 모습. 황진환 기자
한편 이 중사 유족 측은 이러한 결과에 대해 "처음부터 끝까지 부실 수사"라며 반발했다.

이 중사 아버지 이모씨는 7일 국방부 발표 직후 연합뉴스와 전화 인터뷰에서 "초동수사를 맡았던 사람 중 기소된 사람이 단 한 명도 없다"며 "대통령 말만 믿고 신뢰하며 지켜봤는데, (결과를 듣고) 피눈물이 난다"고 말하며 특검 필요성을 주장했다.

그는 YTN에도 출연해 "공군의 전대미문, 총체적인 직무유기와 공군본부와 함께 국방부에서 합동수사단을 차리고 나서 부실수사를 더 부실수사로 만든 대국민 사기극으로 끝난 사건"이라며 "이런 수사 결과를 어떻게 딸 영정에 바칠 수 있겠나. 대통령께서 책임지고 국방부 장관도 책임지고 군사적 카르텔도 책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유족 측은 국방부가 발표한 내용을 분석한 뒤 시민단체 등과 협조해 기자회견을 여는 방식 등으로 입장 발표를 검토한다고 전해졌다. 성추행 가해자 장 중사에 대한 검찰 구형 결심공판은 8일 열린다. 유족들도 재판을 방청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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