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실미도' 안성기는 미화… 악질에 부대원 월급 횡령"[한판승부]

실미도 부대 해체하자는 의견, 국방부 장관이 묵살
부대원들, 영화와 달리 무기수나 사형수 아니었다
봉급 3200원씩 딱 석달 지급…돼지밥, 개밥 훔쳐 먹어
유가족 국가배상? 시신 찾아달라는 소송마저 패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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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를 인용보도할 때는 프로그램명 'CBS라디오 <한판승부>'를 정확히 밝혀주시기 바랍니다. 저작권은 CBS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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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재홍> 2003년 우리나라 영화 중에 최초로 1000만 관객 달성한 작품, 여러분, 기억하십니까? 바로 영화 실미도였습니다. 그 영화 덕분에 실미도 684특수부대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게 됐는데 올해가 그 실미도 사건이 벌어진 지 딱 50년이 되는 해라고 합니다. 그런데 아직도 그 사건이 제대로 정리가 되지 않아서 유가족들이 많은 고통을 받고 있다고 하는데요. 당시 국방부 과거사진상규명위원회 소속으로 실미도 사건과 유가족 분들을 조사한 안김정애 박사님을 오늘 스튜디오에 모셨습니다. 어서 오십시오.
 
◆ 안김정애> 안녕하십니까.
 
◇ 박재홍> 반갑습니다. 실미도 사건 벌써 50년 전 일이 됐군요. 물론 기억하시는 분도 계시겠습니다마는 간략하게 좀 사건 개요를 설명해 주실까요?
 
◆ 안김정애> 올해 2021년 8월 23일이 50주기였고 이제 유가족들과 저희들이 행사를 했습니다. 많은 분들이 아마 영화를 통해서 기억을 하실 겁니다. 8월 23일 날 50년 전 그날 서울특별시 대방동 유한양행 앞에서 폭사 사건이 일어나고 굉장히 많은 이슈가 됐었고 센세이션한 그런 사건이었는데 한마디로 그 당시에 1.21 사태 대응책으로 박정희…
 
◇ 박재홍> 김신조 사건.
 
◆ 안김정애> 김신조 사건인데 박정희 대통령이 김형욱 중정부장에게 지시를 해서 대북 응징조치를 취하라 해서 만들어진 것이 실미도부대였습니다. 정식 명칭은 거창하죠. 중앙유격사령부 684특공교육대라는 아주 어마무시한 그런 명칭을 갖고 출범을 합니다. 당시 61년 군사 쿠데타 이후에 중정이 갖는 권한이 법률적으로도 그렇고 굉장히 막강한 권한을 갖고 있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군사 국내외 모든 정보를 총망라를 하는 굉장한 힘을 갖고 있었죠. 그래서 그런 정부 기관을 조정, 통제, 창설, 폐지할 수 있는 모든 권한을 갖고 있었는데. 그런 중정에서 만든 부대가 맞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 중에 공군2325정보부대가 우리도 북파 공작대가 없는데 우리도 하나 만들게 해달라 그러면서 이철희와 유태원이라는 사람, 합참의 예전 국장 그리고 과장이었던 사람이, 각각의 중정, 이철희 그다음에 2325정보부대 유태원. 이 두 사람이 매개가 돼서 시작을 합니다. 그래서 만들어진 건 좋은데 국제정세가 요동을 치죠. 베트남전이 벌어지고 미국이 주로 개입을 하고 있던 상황에서 제2전선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없었습니다, 미국은. 그래서 이 상황에서 국제정세가 막 바뀌어가면서 닉슨 독트린, 괌 독트린도 나오고 한반도에서 전쟁을 원치 않는다, 이런 게 얘기되면서. 실미도 부대가 68년 4월 달에 만들어지는데. 그래서 684부대인데, 이 부대가 버려지게 되죠. 잊혀지게 되고.
 
중간에 이 책임을 맡았던… 조정,통제,기획 모든 걸 맡았던 중정이 책임을 방기하고 공군 역시 중정이 책임을 맡지 않고 이걸 방기하는 데에서 똑같이 책임을 내려놓습니다. 그래서 철저히 버려지는 부대, 잊혀진 부대가 되면서 3년 4개월 동안 그 안에서 모질게 각종 인권침해를 당하면서 더 이상은 여기서는 없겠다 그래서 실미도에서 탈출을 해서 71년 8월 23일 날 중앙청으로 가자. 가서 높은 사람들에게 우리 처지를 얘기하고 우리의 억울함을 이야기하자고 라면서 나온 게 그날 50년 전인데. 결국 유한양행 앞에서 자폭을 합니다. 그리고 사건은 끝나죠.
 
◆ 진중권> 그분들이 버려졌는데… 이해가 안 되는 게 뭐 필요가 없어졌으면 그냥 해체하면 되잖아요. 그런데 왜 해체가 안 됐죠?
 
◆ 안김정애> 원래 만들어진 것 자체가 비밀이었기 때문에 이걸 공개적으로 할 게 아니었었죠. 그리고 물론 HID나 그러니까 육해병대 다 있었습니다, 그런 부대들이. 그런데 이런 부대들이 있었는데도 공군은 최초 북파 공작대를 만들었는데 이걸 공개적으로 할 수 없었고. 제가 쭉 책을 쓰면서 봤습니다마는 그리고 조사를 하면서 봤습니다마는 결국은 서로 책임을 미루는 핑퐁치기를 하는.. 당장 대통령의 지시에 의해서 중정부장이 만들라고 해서 만들었는데 관리가 그리고 윗사람의 관심이 멀어지면서 그냥.
 
◆ 진중권> 관료주의적으로 유지가 된 거군요.
 
◆ 안김정애> 예, 그래서 손을 놓아버리는.
 
◆ 진중권> 해체하려니까 비밀이 새어나갈 수가 있고.
 
◆ 안김정애> 그리고 해체를 건의 했느냐라는 게 저희 주 질문이었는데 해체를 건의했다라고 그래요. 심지어는 정말 이 사람들이 해결이 안 되면 어디 진짜 무인도에 몰아넣고 총으로 쏴서 죽이자 이런 제안도 있었다고 얘기하는데 그건 하나의 의견이었던 것 같고요. 그럴 정도로 정말 이 부대가 정말 문제가 있다,좀 정리를 했으면 좋겠다는 의견이 공군에서부터 올라갑니다. 그런 제안이 당시 정래혁 국방부 장관, 전혀 전달 안 합니다. 중정에다가 창설을 한 이 주체가 처리해야 된다고 얘기를 해주십사라고 공군에서 계속 얘기를 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방부 장관이 전달을 안 합니다. 중정은 나몰라라 하고 있고 그건 너희가 알아서 하는 거지 일단 만들어줬으면 너희가 해야지 이게 뭐냐 이렇게 하면서 서로 책임을.
 

◇ 박재홍> 사실 우리나라 군을 보면 사실은 육군 중심이잖아요. 그래서 창설 자체가 공군에서 창설됐기 때문에 이 부분이 나중에도 너무 방치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가 아닌가 이런 생각도 드는데. 진상조사하시면서 어떻게…
 
◆ 안김정애> 저도 육방부라는 얘기 많이 들었습니다. 그런데 육군이 과도하게 과대 대표되는 것으로 저도 보여지고요. 공군이 상대적으로 세가 좀 약했죠. 그런데다가 공군은 늘 자기네들이 그런 얘기도 해요. 항공정보만 우리는 전담하지 지상은 우리는 모른다, 이렇게 얘기를 하는데. 그런 말은 역으로 뒤집으면 약간 소외되고 배제가 된다는 얘기겠죠. 늘 육군이 참모총장, 합참의장 맡았던 거 다 아시겠지만 이런 과대 대표되는 육군에 비해서 공군은 상대적으로 좀 그랬던 것처럼 파악 됩니다.
 
◆ 진중권> 그런 부대를 만들면 사실 군사조직이어야 되고 그다음에 군인들 사이에서 리쿠르트 해야 되는데 이게 도대체 성격이 뭡니까? 군부대입니까? 뭡니까?
 
◆ 안김정애> 민간인도 아니고 군인도 아닙니다. 그래서 저희들이 신분을 가지고 굉장히 고민을 많이 했는데. 결론은 민간인이었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이들에게 정식으로.. 자기들은 자기 군번을 외우고 있어요. 군번을 외우고 있는데 정작 이 사람들이 군적이 없습니다. 군적을 찾아봤더니 일부 페이지가 뜯어져나간 걸 확인했고요.
 
◆ 김성회> 그럼 처음에는 있었다는 얘기네요?
 
◆ 안김정애>네. 그리고 그 군적에 의해서 군수번호 그렇게 나간다면서요. 군적이 있으면 그 해당 병사의 군수품을 수령할 수 있다면서요. 그래서 보급 담당이 그런 얘기도 합니다. 군적이 원래는 있었기 때문에 우리 그 사람들의 31명분의 보급품을 타왔다는 얘기까지 합니다. 그러면 있었잖아요. 그런데 북파공작원, 우리 가스통 들고 나왔던 그분들 아시겠지만, 이분들은 솔직히 북파라는 걸 인정할 수 없죠. 그렇게 인정하는 순간 북한과의 전쟁을 얘기하는 거니까. 그래서 이 사람들은 철저히 가려진 비밀의 인간이 됐었어야 하는 그래서 지금도 그 사람들에게…
 
◆ 김성회> 이게 김신조 게릴라가 남침을 한 게 68년 1월이고. 그리고 나서 세 달 있다가, 3개월 만에 창단이 됐는데. 31명이고요.  비밀리에 했는데 어떻게 모집을 했나요?
 
◆ 안김정애> 모집이 굉장히 진짜 그야말로 비밀리에 됐죠. 그래서 얘기가 처음에 중정하고 공군하고 된 건 빨리 일단 시작해라. 우리가 나중에 공문을 내려 보낼게. 공문은 있어야 되니까. 그런데 공문은 3월 7일 날 나오고 그 이전에 이미 2월 달에 스타트를 한 거예요. 모집을 해봐라 했는데 처음에 이 사람들이 모집관들이 공군입니다, 이 사람들은 중정이 아니라. 단지 중정 패찰을 들고 돌아다녀요. 그 당시에 중앙정보부위상이 얼마나 대단했던지.

 패찰을 들고 다니면서 처음에 우범지대를 돌아다닙니다. 그래서 몸 신체 건강하고 튼튼하고 왈패 같은, 깡패 같은 젊은이들을 찾아다니다가 좀 여의치가 않아요. 그래서 시간이 자꾸 간다. 우리한테 4월까지 마지막으로 모집하라 했는데 힘들다고 얘기하니까 중정에서 그러면 우리가 무기수, 사형수를 알아봐주겠다 해서 대전, 부산, 대구 이런 사형수를 진짜 70명을 합니다. 그게 영화에 나오는 강인찬입니다. 그런데 그 사람들은 2차로 해 봤더니 법무부에서 반대를 해요. 우리는 너희가 북파를 하든 어떻게 하든 다 상관없는데 우리는 사람이 죽으면 국민의 시신은 돌려줘야 된다라고 법무부에서 반대를 해요. 그래서 영화에 나오는 그건 픽션입니다.사형수와 무기수는 픽션이에요.

그래서 일부 우범자들은 있습니다. 소매치기, 폭력전과 이런 사람들은 신분장을 뒤져보니까 있어요. 몇몇은 있지만 그 사람들은 그렇게 무기수나 사형수는 아니고 중형수가 아니었는데 이렇게 2차까지 실패하니까 며칠이 진짜 안 남았는데 우리 어떻게 할까. 그다음에 막 급히 뒤진 게 파주, 문산, 대전, 복천 이런 데 가서 체육관을 중심으로 해서 아니면 미군 부대 앞 이런 데를 막 뒤집니다. 거기에 갔더니 정말 왈패 같은 친구들, 그다음에 기지촌 그다음에 미군부대, 파주 이런 데서 미군부대하고 첩보부대가 많았습니다. 그 사람들을 데리고 오는 거죠.
 
◆ 김성회> 그런데 그 사람들이 왜 응했을까요, 뭘 보고?
 
◆ 안김정애> 조건이 대단했습니다. 한 달에 제시했던 월급이 지금 생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거의 보통 사람의 연봉을 한 달치 월급으로 준다 그랬어요. 그다음에 하나는 미군부대에 취직시켜 준다. 그다음에 갔다 오면 살 집을 마련해 준다.
 
◆ 김성회> 갔다 오면은 북을 말씀하시는 거죠.
 
◆ 안김정애> 북파.
 
◆ 김성회> 그러니까 북파라는 건 공개를 하고 모집을 한 거네요.
 
◆ 안김정애> 처음에는 얘기를 안 하고 모아놓고 무슨 일을 합니까 그랬더니 김일성 목을 따와라. 우리 박정희 대통령의 목을 따러 왔었다, 1.21 부대 김신조가. 그러니까 우리 684부대 똑같이 만들어서 31명, 우리도 31명. 똑같은 샴쌍둥이 같은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하는데 이 사람들은 그런 조건이 있어? 이게 말이 안 되는 거잖아요. 너무 황당하잖아요. 그리고 신탄진 담배를 준다고 얘기해요.
 
◇ 박재홍> 신탄진 담배?
 
◆ 안김정애> 그 당시 신탄진 담배가 제일 최고급이었나 봐요. 그래서 그 담배를 하나씩 주고 미군부대에 취직시켜준다. 김일성 목만 따오면 충분한 보상을 해 준다. 소위로 임관한다.
 
◇ 박재홍> 장교를 시켜준다?
 
◆ 안김정애> 별별 좋은 얘기를 다 합니다.
 
◆ 김성회> 그러면 그 당시에는 단기전으로 생각했겠네요.
 
◆ 안김정애> 3개월에서 6개월이라고 얘기합니다. 그래서 3개월에서 6개월만 너희들이 훈련을 받고 북에 갔다 오면 성공을 하면 이러이러한 조건들 다 충족시켜 준다.
 
◆ 진중권> 다른 건 몰라도 봉급은 받았나요?
 
◆ 안김정애> 아니요. 못 받았습니다. 3개월동안 3200원. 지금 환율로 하면 한 30~40만 원 정도를 딱 3개월만 받고 그다음에 안 옵니다. 그 모든 예산이 다 횡령된 것으로 위에서부터.
 
◆ 진중권> 지급은 됐는데 중간에서 누가 가로챈 거군요. 나쁜놈들이네요.
 
◆ 안김정애> 거의 월 1억씩 지금 환산을 하면 1억씩의 예산이 월급, 주식비, 부식비로 내려가는데 거의 이 사람들은 먹는 거 안 됩니다. 월급도 딱 3개월 받았고요. 먹을 게 없어서 나중에 돼지밥 먹고 개밥을 훔쳐 먹고.
 
◆ 김성회> 그리고 섬에 갇혀서 훈련을 받은 거죠.
 
◆ 안김정애> 실미도라는 무인도에…
 
◇ 박재홍> 3년 4개월 동안 계속 갇혀 있었던 거죠.
 
◆ 안김정애> 서신왕래 절대 안 되고요. 그다음 어디 외출도 안 되고.
 
◇ 박재홍> 그러니까 가혹행위가 상당했겠군요 .
 
◆ 안김정애> 사람을 때려죽이는 사건이 발생합니다.
 
영화 '실미도'의 한 장면 (노컷뉴스 자료사진)
◇ 박재홍> 언제 있었습니까?
 
◆ 안김정애> 4월 달, 5월 1일 날 창설식을 하고 했는데 2개월 만에 7월… 2명이 실미도 바로 옆에 무의도인데. 거기 사역을 나갔다가 그 얘기를 했다고 얘기를 합니다. 이게 뭐 되겠어 이런 얘기를 좀 했나 봐요, 둘이. 그러면서 야, 그냥 우리 여기 있자. 무의도 민가에 숨어 있었던 거예요. 실미도로 귀대를 안 하고. 그랬더니 처음에 이들이 창설식 때 했었던 선서가 있었습니다. 한 사람의 잘못은 모든 사람의 잘못이다. 한 사람이 잘못하면 우리 모두가 책임진다. 한 사람의 잘못은 용서할 수 없다. 국가와 민족의 이름으로 처단한다 이런 식의.
 
◆ 진중권> 살벌하네.
 
◆ 안김정애> 이래서 두 사람이 무의도에 사역 나갔다가 숨어있었는데 이걸 발견을 하고 데리고 와서 몽둥이로 때려죽입니다.
 
◆ 김성회> 누가요?
 
◆ 안김정애> 공작원들을 이용해서.
 
◆ 진중권> 너희들이 처단하라는 얘기지.
 
◆ 안김정애> 너희 손으로. 지시는 위에서 합니다. 뒤에서 김응수 소령이 하고 처치해. 이렇게 명령만 내리면 이 사람들은 천막봉, 이렇게 굉장히 두꺼운 게 있었다고 그래요. 그걸로 죽을 때까지 때려서 죽여서 2명이 그 자리에서 절명을 합니다. 그래서 그대로 묻어뒀다가 그다음에 또 다른 살인사건이 69년도에 조석호라고 수영을 하다가, 수영훈련을 하다가 그 사람이 너무 힘에 버거워서 완전군장을 하고 물에서 허우적거리니까 그것도 못 견디냐, 버텨라. 그런데 결국 이 사람이 못 견디고 익사를 해버렸어요. 그런 사건이 하나.
 
◆ 진중권> 완전 군장. 물속에 집어넣어. 말이 되는 소리를 해야지.
 
◆ 안김정애> 이 사람이 몸이 좀 약해서 너무 힘들어서 소대장님 꺼내주십시오, 하니까 버텨라. 그러고서 본인 얘기로는 잠깐 돌아섰다가 보니까 꼬르륵 하고 있더라 이렇게 얘기하는데 이건 말이 안 되죠, 유기치사죠. 저희들은 그렇게 결론 내렸는데. 그 사건 이후로 70년에 또 한 사람이 또 죽습니다.
 
◆ 김성회> 지금 소대장님이라고 말씀했던 그 사람은 직접 인터뷰를 하신 건가요?
 
◆ 안김정애> 했습니다. 지금도 살아 있습니다. 경북 의성에. 제가 그때도 면담을 했고 최근에도.
 
◇ 박재홍> 그런데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아서 실미도 영화를 보면 그렇게 방치되다가 그분들이 탈출을 해서 우리 청와대를 향해서 가죠. 그런데 영화에서는 군인으로 나온 안성기 씨가 대원들에게 나를 쏘고 가라 이렇게 말을 하는데 이것도 실제와 달랐다고 말씀하시네요.
 
◆ 안김정애> 다릅니다. 미안한 얘기지만 그렇게 교육대장이 좋은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기간병들도 그렇고 훈련병들 입에서 나온 얘기는, 유족들이 아직 살아계셔서 직접 얼굴을 저는 뵀는데, 악질이라 표현을 씁니다, 악질. 굉장히 악질이었다.
 
◇ 박재홍> 소대장이?
 
◆ 안김정애> 네. 그리고 훈련병들도 그렇게 얘기하고 기간병들도 그렇게 얘기합니다. 그리고 훈련병들의, 공작원들의 월급을 다 떼어먹었다 이 얘기. 그다음에 정말 너무 힘듭니다. 우리 좀 먹을 걸 제대로 해 주십시오, 그러면 우리나라는 원래 먹을 것 없다. 너희가 참아라. 그리고 이중장부를 만듭니다. 그래서 아까 말씀드린 대로 월급하고 주부식비가 엄청나게 내려오는데.
 
◇ 박재홍> 특수활동비로.
 
◆ 안김정애> 나오죠. 공작비가 나오는데 지금 요즘 말로 하면 눈먼 돈이라 그러죠. 이중장부를 만들어서 중정이나 높은 데서 공군 고위간부들이 감사를 나올 때 현장을 나올 때는 항상 이중장부를 보여줍니다. 여기에는 날마다 먹는 게 소고기, 돼지고기, 달걀 하나씩. 그런데 이분들은 그렇게 못 먹었어요. 그래서 미안한 얘기지만 날 쏘고 가라 그런 게 아니라 아침에 새벽 6시에 8월 23일 새벽 6시에 정말 앙심을 품은 그리고 총알이 필요했었던 공작원 2명이 숨겨 가져간 망치에 의해서 머리를 둔기로 맞아서 그 자리에서 즉사를 합니다. 그래서 안성기 씨가 교육대장으로 분해서 나오는데 너무 뭐 좋게 그린…
 
◆ 진중권> 너무 미화됐구나.
 
◆ 안김정애> 그래서 저는 그 부분이 이건 정말 제대로 그려졌어야 되는데 너무 미화를 한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합니다.
 

◇ 박재홍> 그래서 결국 청와대 앞까지 못 가고 19명이 사망하고 4명이 생포가 됐었죠. 그 네 분은 어떻게 됐습니까? 군사재판에 회부가 됐죠?
 
◆ 안김정애> 재판에 회부가 됐죠. 그래서 사형을 당합니다. 그다음 해 3월 10일 날. 1972년 3월 10일 날. 그중에 생포가 된 게 5명이에요. 그런데 1명이 지금…
 
◇ 박재홍> 생사를 모르는 겁니까?
 
◆ 안김정애> 그럴 겁니다. 그래서 저도 계속 그 부분이 궁금하기도 하고 최근에는 제가 모 신문에다가 이 분 혹시 살아계시면 조금 더 저희들이 디테일한 걸 알 수 있으니까 나와 주시면 좋겠다는 얘기도 하고 그랬는데 5명이 살아 있었는데 1명이 빠지고 4명이 군법회의에 회부가 됩니다.
 
◆ 김성회> 빠졌다고 하는 것은 도망친 건가요, 아니면 아예 모르는 건가요?
 
◆ 진중권> 내가 볼 때는 이게 취조 중에 사망했을 수도 있지.
 
◇ 박재홍> 그건 추정이고.
 
◆ 안김정애> 그래서 저는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유가족들 DNA 검사 다 했거든요. 그런데 안 나왔어요. 제가 벽제에서 유해발굴도 했는데. 그래서 이 부분이 아마 조작, 왜곡, 은폐되는 과정에 이 사람들의 재판이 굉장 불법적으로 이루어진 건 맞습니다. 국선 변호인 선임 안 했고요. 그다음 가족에게 절대 통지 안 했고 처형도 재판도 모든 게 비공개로 해서 지금 심지어는 제가 갖고 나온 이 재판 기록도 그때까지 비밀로 돼 있었습니다. 그래서 이 비밀로 돼 있는 것을 저희들이 조사하자마자 이걸 공개로 해서 지금은 일반 공개됐는데. 철저하게 나는 이 국가가 이런 일이 생기면 바로 개인의 인권을 생각하는 게 아니라 어떻게든지 이걸 엎으려고 조작을 하고 왜곡을 하고 축소하려고 하는 이런 거에 아주 전형이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 김성회> 그러면 들어갔던 분들 중에서 그 당시까지 살아남았던 24분까지 해서 3년 몇 개월 되는 기간 동안 가족들은 그냥 실종된 것으로.
 
◆ 안김정애> 전혀.
 
◆ 김성회> 어디 군대 간다고 했는데 연락이 끊긴 상태로 있다가 그러다가 실미도 사건이 터지고 그 이후에도 재판 과정에도 입회를 못하고.
 
◆ 안김정애> 입회도 못했고 시신도 심지어는 못 찾았고.
 
◆ 김성회> 그러면 이분들 사형당한 다음에 어떻게 됐나요?
 
◆ 안김정애> 그냥 암매장됐습니다. 그 암매장지를 못 찾고 있어요, 아직도. 저희는 오류동으로 추정을 하는데.
 
◇ 박재홍> 과거사 진상규명위 활동을 하시면 굉장히 국가가 무엇이었는가라는 질문을…
 
◆ 안김정애> 저는 굉장히 의문이 많이 들고요. 어떻게 이럴 수가 있나. 시신은 돌려줘야 되는 것 아닙니까? 그래서 저희가 최근까지도 암매장지를 찾고 있는데 제가 민간인 신분이어서 어떤 법적인 권한이 없어서 어렵습니다마는. 최근에도 제가 오류동 일대를 다 돌았어요. 왜 그런가 하면 2325정보부대가 있었던 인근이었기 때문에. 가장 저는 그쪽이 가능성이 있다고.
 
◆ 김성회> 2325정보부대는 뭐하는 곳이기에.
 
◆ 안김정애> 항공정보를 담당했었던 기관이에요. 공군정보부대예요. 그런데 이 정보부대가 지금은 이사를 했어요. 그래서 지금 거기에 교회가 들어서 있는데.
 
◆ 김성회> 이곳이 사형이 집행됐던 곳이고요?
 
◆ 안김정애> 집행 장소 맞습니다.
 
◆ 김성회> 그때 관련자도 아직 살아계신 분이?
 
◆ 안김정애> 살아있고요. 김중권 씨라고 청와대 전직 비서실장을 했던 분도 그 당시 그 자리에 있었던 집행관이었어요. 고등검찰부장이어서 저희가 여러 번 요청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 위원회 조사는 응하지 않다가 중앙일보나 다른 매체에다가는 얘기하셨더라고요. 그런데 그 와중에 하시는 말씀이 대방동이다 다른 얘기를 자꾸 하시는데. 아닙니다. 제가 그거 페이크라고 말씀드렸어요, 공식적으로. 이건 페이크고 오류동이 확실한 게 그분 입으로도 이 시신이 어디로 갔냐라고 집행 현장에 있었던 다른 병사들한테 물어봤더니 저희가 알아서 오류동에서 처리합니다라고 얘기했대요. 문서로 남아 있어요.
 
◇ 박재홍> 유가족들은 무슨 말씀을 하세요?
 
◆ 안김정애> 유가족들은 특히 시신을 못 찾는 유가족들은 죽겠다고 그러시죠. 어떻게 국가가 이럴 수 있냐고.
 
◆ 진중권> 국가배상은 이루어졌나요?
 
◆ 안김정애> 못합니다.
 
◆ 진중권> 왜 못하죠? 너무나 명백한 국가폭력인데.
 
◆ 안김정애> 시신을 찾아달라는 그거도 패소했고요. 시신이 어디 있느냐 얘기하고. 그럼 말이 되느냐 시신을 먼저 찾아줘야 되는 거 아니냐 얘기했는데 아니다, 시신이 없는데 국가가 어떻게 찾아. 대법원 패소했습니다.

 ◇ 박재홍> 그래서 박사님이 최근에 책을 내셨어요. '실미도의 아이히만들'이라는 책을 내셨는데. 책 제목에 아이히만들로 붙이신 이유가 있을 것 같아요.
 
◆ 안김정애> 저도 스스로 이런 사람 되지 말아야지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렇고요. 책에 굉장히 여러 사람 얘기를 제가 직접 인터뷰한 사람들만 다 썼는데 아이히만이 그렇게 얘기하죠. 나는 아무 잘못한 거 없다. 내가 사람 안 죽였고.
 
◇ 박재홍> 유태인 학살한 독일.
 
◆ 안김정애> 시키는 대로 현장에서 집행한 사람인데 나는 잘못 없다. 시키는 대로, 명령대로 했다, 나는 한 사람도 안 죽였다고 얘기해요. 그 사람을 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얘기를 합니다. 이웃의 아주 흔한 아저씨나 오빠나 삼촌이나 아버지 이런 사람들이잖아요. 할아버지 이런 사람들.
 
◆ 진중권> 악의 평범함이라고 하죠
 
◆ 안김정애> 악의 평범성. 그런 얘기를 하면서 한나 아렌트가 얘기하면서 생각하지 않는 죄 이게 가장 크다라고 얘기를 해요. 그래서 저는 뉘른베르크 그것도 나왔지만 아무리 내가 생각이 없더라도 부당한 명령에 대해서는 부당한 지시에 대해서는 내가 항거를 해야 되는데. 그걸 못하고 나도 살지 않나라는 그런 생각에서 썼고요. 그다음에 정말 말단까지 다 썼습니다. 제가 최고 박정희, 김형욱, 이철희 얘기 다 쓰다가 저는 밑에 사람들도 한 번 씩은 더 생각을 해봐야 좋을 것 같다. 말단들, 보급관, 뭐 하사, 중사, 상사 이런 사람들 얘기도 다 썼습니다.
 
◇ 박재홍> 그래서 박사님께서 책 서문에 이런 말씀하셨어요. 최소한 비양심적인 당대인으로 남지 않기 위해 이 글을 쓴다, 그런 마음이 반영되신 것 같고요. 끝으로 지금 정부나 국방부에게 호소하고 싶으신 말씀이 어떤 게 있을까요?
 
◆ 안김정애> 시신을 진짜 좀 찾아주면 좋겠어요. 암매장지를 밝히지 않는다는 것은 저는 아직도 국가범죄가 계속된다라고 보거든요. 그래서 청와대 국민청원도 유족들과 제가 같이 쓴 게 이거는 진짜 국가 차원에서 처리해야 될 문제고. 계속 국방부에는 특별수사단을 좀 설치해달라 이 얘기도 굉장히 요청을 많이 했습니다. 그럼에도불구하고 지금 안 들어주고 있고. 그래서 저는 최소한의 진짜 국민의 생명을 지키는 게 국가인데 이분들의 시신을 안 돌려주고 물론 다 재판 과정이 다 불법이었고 통보도 하나 안 해 준 그런 상태였는데. 어쨌든 시신은 돌려줘야 되는 거 아니냐. 유족들이 지금 70, 80 이러세요. 80대인 분들은 나도 금 방 갈 거다. 그런데 오빠 시신만 한번 내가 보고 갔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세요. 그거 좀 해결해 주셨으면 좋겠습니다.
 
◇ 박재홍> 알겠습니다. 마지막 한 말씀이 큰 울림이 있네요. 오늘 말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실미도의 아이히만들의 저자이시죠. 안김정애 박사님이었습니다.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 안김정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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