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현 한국조선해양)과 거래를 맺어오던 이 회사는 지난 2012년 현대중공업으로부터 기술자료를 달라는 요구를 받았다.
회사는 꺼림칙했지만 자료를 주지 않으면 거래를 끊을 수 있다는 취지의 이메일을 받고 나서는 어쩔 수 없이 현대중공업에 자료를 넘겼다.
그런데 자료를 받은 현대중공업은 이를 또다른 협력업체에 제공하고 하청 '이원화'가 이뤄진 뒤에는 삼영기계에 납품단가 인하를 요구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양측의 거래는 결국 끊어졌다.
매출이 급격히 줄어든 삼영기계는 '골리앗' 현대중공업을 상대로 '다윗'의 싸움을 시작했다. 공정거래위원회에 기술자료 유용으로 현대중공업을 제소했고 손해배상을 요구하는 민사소송도 제기했다.
공정위는 현대중공업의 기술자료 유용 의혹을 인정해 역대 최대의 과징금을 현대중공업에 부과하고 검찰에 고발하기도 했다.
하지만 현대중공업은 과징금을 받아들일 수 없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고, 검찰의 약식 기소도 인정하지 못하고 정식 재판을 청구했다.
그러던 중 민사법원은 손해액의 1.64배에 이르는 배상금을 지급하라고 삼영측의 손을 들어줬다. 정부 기관의 조사와 수사, 법원의 판정 어느 것 하나 현대중공업에 유리한 것이 없었던 셈이다.
결국 양측은 최근 중소벤처기업부의 조정으로 위로금 지급과 거래 관계 지속, 각종 소송 취하 등을 내용으로 하는 합의에 이르렀다.
하지만 양측의 화해가 온전히 중기부의 '행정 조사' 덕분이라고 말하기는 쉽지 않다. 사안이 워낙 뚜렷해 공정위와 검찰, 법원 모두 현대중공업에게 책임을 물었기 때문. 실제로 삼영기계 측 관계자는 "공정위의 과징금 부과와 민사소송에서의 승소, 검찰 기소 등이 없었다면 현대중공업과의 화해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했다. 중기부의 행정 조사보다는 싸움에 승산이 없어 보였던 점이 현대중공업을 화해로 이끌었을 것이라는 추론이다.
실제로 중기부의 기술 침해 조사를 막아서는 기업도 있다. 중소기업이던 메디톡스와 '보톡스 전쟁'을 벌여오던 대웅제약에 대해 중기부가 지난 2019년 '현장 조사'를 나갔지만 그대로 돌아와야만 했다. 대웅제약이 '소송중'이라는 이유로 중기부의 현장 조사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중기부 관계자는 "중기부 조사가 강제성이 없어 기업이 거부하면 과태료 부과 밖에 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과태료도 불과 500만 원이 최대다. 대웅제약은 이마저도 내지 못하겠다며 행정소송을 제기했다. 중기부 관계자는 "현장 조사까지 나갈 정도면 사안이 심각하다고 보는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기업이 거부하면 도리가 없다"고 말했다. 결국 중기부는 대웅제약에 대한 현장 조사를 포기하고 조사도 종결했다.
김남근 변호사는 "중기부의 행정 조사를 통해 처벌이 아닌 상생으로 문제를 해결했다는데에 의미가 있다"면서도 "하지만 대부분의 대기업들이 기술 분쟁 사건을 소송으로 가져가는게 현실"이라고 말했다.
김 변호사는 "소송을 하면 신속하게 결과가 나오지 않아 (소송 대응 능력이 떨어지는) 중소기업으로서는 부담이 된다"며 "기술 침해 사건 만이라도 미국 등의 '증거개시제도'(디스커버리 제도)가 도입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디스커버리 제도는 소송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전에 소송 당사자들이 상대방에게 증거 제출을 요구하는 제도다. 만약 증거를 제시하지 않으면 법원의 벌칙을 받거나 패소하게 된다. 미국에서는 기술 침해 사건의 90% 정도가 소송에 들어가기 전에 디스커버리 단계에서 합의된다는게 김 변호사의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대체로 디스커버리 제도 도입에 대해 찬성하는 여론이지만 정작 입법 단계에 가면 '적극적인 경영활동이 어려워진다'는 대기업의 주장에 번번히 막히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또 '징벌적 손해배상'에 대해서도 "우리나라는 손실의 3배 이내에서 배상하도록 돼 있는데, 미국은 무조건 3배를 배상하도록 '트레블 데미지'(treble damage) 원칙을 적용하고 있다"며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배상하도록 한 것이 삼영기계의 1.64배"라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