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쇄' 대출 조이기…대출 빙하기 시작되나

농협은행 대출 중단에 이어 국민·하나 대출 축소까지…도미노 대출절벽 우려
풍선효과로 대출절벽 현상 가속화될 수도
고승범 위원장 "취약계층 안전판 바탕으로 가계부채 강력 대응"
이사철 실수요자·생계자금 수요도 여전…금융당국 고심
금융당국 '핀셋 규제' 고심하지만 쉽지 않아

고승범 금융위원장. 박종민 기자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기조에 따라 은행들이 일제히 대출 문턱을 높이고 있다. 농협은행에서 시작된 대출 중단 사태가 국민은행에 이어 하나은행의 대출 축소로 이어지면서 올해 말 최악의 '대출 절벽'까지 예상되는 상황이다.

확고한 대출규제 의지…고승범 금융위원장 "총량관리 내년까지"

금융당국의 기조는 확고하다. 고승범 금융위원장은 지난 27일 은행회관에서 열린 경제·금융시장 전문가 간담회에 참석해 "우리 경제·금융시장의 가장 큰 잠재 리스크인 가계부채에 대해 강도높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취약계층에 대한 안전판'을 전제로 했지만 당분간 강도높은 대출 규제는 계속될 것이란 점을 시사한 것이다. 그는 "총량 관리의 시계(視界)를 내년 이후까지 확장하고, 대책의 효과가 나타날 때까지 강도 높은 조치들을 지속적・단계적으로 시행해나갈 것"이라며 내년까지 규제가 이어질 것이란 점도 밝혔다.
서울 시내 아파트. 이한형 기자

문제는 대출을 필요로 하는 실수요자들이 여전히 많다는 것이다. 올해 초부터 대출규제가 이어져왔지만 주택가격은 계속 급등했다.

특히 올 가을 이사철이 되면서 가계대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전세대출 수요는 줄지 않을 전망이다. 코로나19 상황도 계속 이어지면서, 생계자금 대출에 대한 수요도 가라앉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가계대출 역대급으로 늘어…'풍선효과'로 가속될 것

28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 23일 기준 KB국민·신한·하나·우리·NH농협 등 5대 은행의 가계대출 잔액은 700조 6574억원으로 지난해 말 보다 4.57% 늘었다. 금융당국이 제시한 올해 가계대출 증가율 목표치(연 5~6%, 내년 4% 수준)를 넘지는 않았지만 한계치에 달한 상황이다.

은행별로는 농협은행의 증가율이 7.33%(125조5870억원)로 가장 높았다. 이어 △하나은행 4.89%(131조4827억원) △국민은행 4.31%(168조8297억원) △우리은행 3.72%(135조2052억원) △신한은행 2.61%(129조5528억원) 순이다.

목표치를 초과한 농협은행은 이미 지난달부터 가계대출을 중단한 상황이다. 이어 최근 국민은행과 하나은행도 일부대출을 축소, 제한했다. 신한은행과 우리은행은 상대적으로 여유가 있지만 타행이 대출을 조이면서 그 수요가 이들 은행으로 옮겨가는 '풍선효과'가 나타날 가능성도 적지 않다.
서울의 한 시중 은행 외벽에 전세 대출 상품 관련 안내문이 붙어 있다. 연합뉴스

한 시중은행 관계자는 "대출을 중단하지 않은 은행도 상대적으로 대출 총량 소진 비율이 매우 높은 상황"이라면서 "만약 은행들이 연쇄적으로 대출을 축소하거나 중단하게 되면 풍선효과로 대출 절벽 현상은 더욱 가속화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풍선효과는 제1금융권에서 그치지 않는다. 대출규제로 은행 문턱이 높아지자 자연스레 제2금융권으로 수요가 몰린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8월까지 보험사와 저축은행, 여신전문회사 등의 가계대출은 15조8천억원 규모로 나타났다. 2019년 같은 기간 3조2천억원, 2020년 4조5천억원과 비교하면 3배 이상 많은 수치다.

대출 규제 계속돼 문 좁아져도 괜찮을까…취약계층·실수요자 우려↑

이사철을 앞두고 실수요자 대출이 늘어날 전망인데다 '빚투'로 대변되는 투자심리 역시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이에 따라 금융당국의 대출 규제 기조는 당분간 강력하게 이어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한국은행이 기준금리 인상과 함께 저금리 시대의 종결을 예고하면서 가계의 이자 부담이 급격히 늘 것이란 우려도 제기된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한국은행은 "코로나19 재확산의 영향으로 가계의 소득여건 개선이 제약되는 가운데 대출금리 상승 압력이 커지면서 취약부문을 중심으로 가계의 채무상환 부담이 크게 늘어날 가능성을 경계해야 한다"라고 지적한 바 있다.

또 다른 시중은행 관계자는 "규제와 실수요자에 대한 정책을 어떻게 양립해 나갈지가 관건이 될 것이다. 이사철이 되면 대출 수요가 높아져 양쪽을 다 관리해나가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김소영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는 "가계부채 상황의 심각성을 고려할 때 증가속도를 늦춰야 하는 필요성은 분명하다"면서도 "정부도 취약계층이나 실수요자를 배려하겠다는 기조지만, 가계부채 규제가 급작스럽게 강화되다 보니 아직 체감하지 못하는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좀 더 완만하게 줄이는 방법, 총량규제와 선별규제의 조화를 이루는 방법을 보다 세심하게 검토해나갈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금융당국은 차주별 DSR(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 규제 조기 도입 등 규제 강화를 예고하면서도 전세 가격별 대출 차등 등 실수요자를 배려할 수 있는 '핀셋 규제'를 고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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