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혁신'인가 '탐욕'인가…플랫폼, 기로에 서다 ②녹색 공룡 가니 노란 공룡 온다…'공동체'는 어쩌다 '제국'이 됐나 ③금융 정복 나선 '카카오'…뒤늦게 깨달은 "바보야, 문제는 규제야" ④'전방위 압박'에 '백기 든 카카오…"미래 때려잡을라" 우려도 (끝) |
골목상권 침해와 계열사 신고 누락 등으로 논란의 중심에 선 카카오가 일부 사업 철수와 소상공인 지원을 위한 기금 조성 등 상생방안을 발표했다. 국민 앱 카카오톡의 인기에 기댄 '문어발식' 확장으로 온라인 플랫폼을 주름잡던 카카오가 여론의 압박과 규제당국의 칼날에 백기를 든 셈이다.
정부여당은 플랫폼 '갑질'을 규제하는 법안 처리를 추진하고, 다음달 국정감사에서 '송곳' 질의를 예고하는 등 규제 움직임이 본격화하는 와중이어서 카카오의 시련은 계속될 공산이 크다. 다만 플랫폼 규제가 미래산업의 혁신과 성장을 저해할 수 있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스마트호출 폐지 등 '골목 상권' 침해 논란 사업 정리 및 철수
카카오는 이와 동시에 플랫폼 종사자와 소상공인 등 파트너들과의 지속 가능한 성장을 이어가기 위해 공동체 차원에서 5년간 상생 기금 3천억원을 마련할 계획이다.
최대 5천원의 택시 스마트호출 서비스와 대리운전 전화콜 1위 업체 인수 등으로 여론의 뭇매를 맞은 카카오모빌리티는 별도로 입장을 내고 기업 고객 대상 꽃·간식·샐러드 배달 중개 서비스를 철수하기로 했다.
아울러 돈을 더 내면 카카오 택시가 빨리 잡히는 기능인 '스마트호출'을 폐지하기로 했다. 가입 기사에게 배차 혜택을 주는 요금제 '프로멤버십' 가격은 9만9천원에서 3만9천원으로 낮춘다.
서울에 이어 지역별로도 '가맹택시 상생 협의회(가칭)'를 구성해 전국 법인 및 개인 가맹택시 사업자들과 건강한 가맹 사업 구조 확립을 위한 논의를 진행할 계획이다. 대리운전 중개 수수료는 고정 20%에서 수급 상황에 따라 0~20% 변동을 추진한다.
창업자인 김범수 의장은 "최근의 지적은 사회가 울리는 강력한 경종"이라며 "카카오와 모든 계열 회사들은 지난 10년간 추구해왔던 성장 방식을 과감하게 버리고 사회적 책임을 다하는 성장을 위한 근본적 변화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공정위 직권조사 대상 된 '케이큐브홀딩스'에서 가족 모두 퇴사하기로
카카오는 특히 공정거래법 위반 혐의가 포착된 투자전문업체 '케이큐브홀딩스'를 사회적 가치 창출에 집중하는 기업으로 전환하기로 했다. 케이큐브홀딩스는 2007년 1월 소프트웨어 개발·공급업 등을 목적으로 설립된 회사로, 김 의장이 주식 100%를 보유하고 있다.
올해 초 김 의장이 자신이 가진 카카오 주식을 가족에게 증여한 데다 두 자녀의 케이큐브홀딩스 재직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각에서는 김 의장이 지주회사 격인 이 회사를 통해 '경영권 승계'를 준비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까지 제기된 마당이다.
공정거래위원회는 카카오가 최근 5년간 제출한 '지정자료'에서 케이큐브홀딩스와 관련한 자료가 누락되거나 허위로 보고된 정황이 있다고 보고 직권조사에 나서기도 했다. 카카오는 금융 자본과 산업 자본을 따로 떼는 '금산분리 규정'을 위반한 정황도 있다.
카카오의 이날 발표에 따라 이 회사에 재직 중인 김 의장의 부인과 자녀 등 가족은 모두 퇴사하기로 했다. 향후 이 회사는 미래 교육이나 인재 양성과 같은 사회적 가치 창출에 집중하는 기업으로 전환된다. 더불어 콘텐츠와 기술을 바탕으로 글로벌 비즈니스를 적극적으로 강화해 나갈 예정이라고 회사는 설명했다.
정부여당, 카카오 등 플랫폼 기업 향한 규제 움직임 본격화
카카오의 '백기'에도 국내 대형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겨냥한 '갑질 규제법' 등 규제 움직임은 더욱 강화될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민주당은 앞서 구글의 '인앱결제' 강제화를 막는 법안 통과를 주도한 데 이어 국내 대형 플랫폼의 갑질 관행을 대대적으로 손보겠다는 뜻을 여러 차례 내비쳤다.
김부겸 국무총리도 지난 13일 국회 대정부질문에서 "카카오가 중소기업이 어려울 때 오히려 문어발식 확장을 한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라며 "새로운 플랫폼 기업이 혁신을 이루는 게 아니라 오히려 독점적 재벌들이 하던 행태를 되풀이한다면 이에 대한 감시와 감독이 들어가야 하고 필요하면 강제적 조치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국회에 발의된 플랫폼 규제 관련 법안은 이미 10건을 넘어섰다. 그동안 공정거래위원회와 방송통신위원회의 권한 문제, 업계 반대 등에 부딪혀 계류 중이었다. 여당이 조속한 입법 의지를 내비치면서 법안 처리에 속도가 붙을 전망이다. 여당은 내달 국정감사에서 '송곳' 질의로 입법 필요성을 강조한 뒤 법안 통과에 나설 방침이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소속 민주당 의원들은 김범수 카카오 의장과 이해진 네이버글로벌투자책임자를 고용노동부 국정감사 증인으로 신청할 예정이다. 야당 소속 의원들도 증인 채택이 필요하다는 분위기여서 국회로 불려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
사실 파괴적 혁신과 새로운 사업모델 창출을 성장 동력으로 삼는 플랫폼 기업은 생리상 '독점'을 지향할 수밖에 없다. 최근 10여년 간 성장을 거듭한 온라인 플랫폼 시장의 불공정거래 행위 문제는 우리나라에서만 불거지는 논란이 아니다. 유럽연합과 일본은 이미 이를 규제하기 위한 입법을 마친 상태다.
미국의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6월 '아마존 킬러'로 불린 32세의 리나 칸 컬럼비아대 로스쿨 교수를 미국 독점규제 한 축인 연방거래위원회(FTC)의 최연소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아마존은 "칸 위원장이 아마존과 관련한 사안을 열린 마음으로 검토할 것으로 볼 수 없다"면서 위원장 '기피 신청'을 하기도 했다.
결국 지난 1995년 시애틀의 차고에서 온라인 서점으로 아마존을 시작했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는 경영 일선에서 손을 떼기로 했다. 현지 외신은 새 최고경영자(CEO)인 앤디 제시에게 아마존의 성장을 유지하는 동시에 미 행정부와 의회가 벼르고 있는 반독점 규제의 칼날을 회피하는 과제가 주어졌다고 평가했다.
다만 플랫폼 기업에 대한 무분별한 규제가 우리 기업의 혁신을 막는 발상이라는 반론도 업계를 중심으로 제기된다. 권세화 한국인터넷기업협회 정책실장은 "플랫폼은 국경이 없다. 국내 플랫폼 업체를 과도하게 규제해봐야 국내 산업만 망가지게 된다"면서 "해외 기업들이 우리나라 시장을 장악하고 난 다음에 왜 성장 못했냐고 따져봤자 소용이 없다"고 말했다.
서용구 숙명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대형마트 규제가 과연 인근 상권이나 소상공인에게 도움이 됐느냐"면서 "일방적이고 획일적인 규제는 플랫폼 비즈니스처럼 지금 만들어지는 산업에서는 더 위험하다. 플랫폼을 때려잡는 건 마치 미래를 때려잡는 것과 똑같다"고 비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