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재활용센터 노동자의 죽음…그는 왜 분신을 택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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①한 재활용센터 노동자의 죽음…그는 왜 분신을 택했나?
(계속)

부산 강서구 생곡동 부산시자원재활용센터. 박진홍 기자

"일밖에 모르고 일하는 걸 최고로 즐거워하던 사람이에요. 그 사람들(현 재활용센터 운영진)이 회사를 맡은 뒤로, 노조가 파업하면서 일손이 모자라지니 죽을 듯 살 듯 일을 했는데…"
 
부산 강서구 생곡재활용센터(부산시자원재활용센터) 노동자로 일하다 숨진 A(60)씨 아내 B씨는 고통 속에 숨진 남편을 떠올리며 연신 울음을 삼켰다.
 
A씨는 지난 6월 28일 낮 자신이 일하던 재활용센터 정문에서 몸에 스스로 인화성 물질을 뿌린 뒤 분신했다. 전신 화상을 입고 병원으로 옮겨진 A씨는 7월 13일 오후 끝내 숨을 거뒀다.
 
그는 왜 이런 극단적 선택을 했을까? 아내 B씨에 따르면, 고인이 된 A씨는 부산시가 센터를 운영하던 지난 2019년 6월 재활용센터에 입사했다. A씨는 재활용 쓰레기를 마당에서 선별하는 이른바 '마당 작업'을 맡았다.
 
부산 전역에서 쓰레기가 쉴 새 없이 몰려들었지만 A씨는 힘든 내색 한 번 하지 않고 묵묵히 일만 했다. 그러던 A씨 입에서 처음 힘들다는 말이 나온 건 운영 주체가 바뀐 직후인 올해 3월이었다.
 
아내 B씨는 "지난 3월부터 석 달여 동안 일하면서 힘들다는 말을 많이 했다. 부산시가 센터에서 나가고 대표가 바뀌면서 노조가 파업했을 때"라며 "일 하는 인원이 절반으로 줄어드니 힘들 수밖에 없었다"고 말했다.
 
생곡재활용센터 운영 주체를 둘러싼 갈등은 수년간 벌어져 왔다. 2008년 들어선 센터는 한동안 주민 자치기구에서 운영해 왔으나, 자치기구 대표 자격과 수익금 배분 등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며 주민들이 기존 운영 주체인 일명 '구파'와 반대파인 '신파' 두 갈래로 쪼개졌다.
 
급기야 재활용 쓰레기 반입 중단 사태까지 빚어지자 부산시는 2018년 센터 운영권을 되가져갔으며, 이후 2년간 운영하다가 올해 2월 '신파'에 운영권을 넘겼다. 그러자 노조와 '구파' 측 주민 등이 반발하며 파업과 쓰레기 반입 중단 사태가 또다시 빚어졌다.
 
B씨는 "남편은 일하는 사람이 줄자 기존에 하던 마당 작업에 더해 기계 관리 업무까지 맡게 됐다. 기계를 돌려야 다른 사람들이 일을 시작할 수 있으니까 남들보다 1시간 먼저 출근했고, 1~2시간 늦게 일을 마쳤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은 힘들다고 하면서도 센터에서 '일만 열심히 하면 잘 해주겠다', '제대로 대우해주겠다'고 말했다면서, 자기를 믿어주는 게 너무 감사하다며 붕 뜬 채로 일을 했다"며 "퇴근하면 '이번엔 정말 좋은 사람들이 들어왔다'며 센터 사람들을 입이 마르도록 칭찬하는 게 매일 하루 일과였다"고 덧붙였다.
 
부산 강서구 생곡동 부산시자원재활용센터. 박진홍 기자

그러던 A씨는 지난 5월 센터 측과 근로계약서를 작성하면서 이상을 감지했다. B씨는 남편이 부산시에서 운영하던 때보다 월급이 오히려 더 낮게 책정돼 문제를 제기했고, 이에 센터 측으로부터 60만 원을 더 주겠다는 확인을 받아 왔다고 말한다. 그러나 얼마 안 가 '기존 계약 백지화' 공지가 나오자 결국 폭발했다고 주장한다.
 
B씨는 "남편이 '계약 백지화' 이야기를 듣고 너무 속이 상해 3일 연차를 낸 뒤 노동청, 경찰서에 신고하고 부산환경공단에 가서 피켓 시위도 하며 억울함을 호소했다"며 "그러던 중 동료로부터 '당신 퇴사 당했더라'는 연락을 받았다. 그 연락을 받은 뒤 바로 다음 날 극단적 선택을 했다"고 말했다.

이어 "남편 입장에서는 일 열심히 하면 충분히 보상을 받을 줄 알았는데, 이런 이야기까지 들으니 그 동안 하늘같이 믿었던 사람들에게 철저히 이용당하고 속았다는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고 토로했다.
 
지난 6월 28일 부산 강서구 생곡동 부산시자원재활용센터 내 A씨가 분신을 시도한 현장. 부산소방재난본부 제공

이에 대해 센터 측은 근로계약 관련 내용을 충분히 설명했으며, 강제 퇴사는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센터 관계자는 "A씨 근로계약 당시 임금을 올려주기 위해 직무수당을 올렸는데, 최저임금 계산이 잘못돼 기본급이 내려갔다며 A씨가 문제를 제기했다"며 "수당에 보너스까지 하면 결과적으로는 임금이 오르는 상황이었지만, 기본급 문제를 제기하니 다시 확인해 계약서를 쓰자는 취지로 백지화 공지를 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A씨를 퇴사시켰다는 건 전혀 사실이 아니며, A씨나 다른 직원들이 노동청에 제기한 수십 건 모두 무혐의 결론이 났다"고 덧붙였다.
 
시민단체는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한 배경에는 센터 운영권을 둘러싼 갈등과 부산시의 안일한 대응이 있다고 지적한다.
 
부산경남미래정책 안일규 사무처장은 "이권을 둘러싼 갈등으로 노동자 근무 조건이 악화했고, 그로 인해 A씨가 극단적 선택을 하게 됐다"며 "주민 갈등과 쓰레기 대란은 운영권을 넘길 때부터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일"이라고 말했다.
 
이어 "운영권을 넘긴 부산시가 분쟁이 발생하자 아무런 움직임을 보이지 않은 데에는 '복잡한 일에 휘말리기 싫다'는 보신주의 사고가 깔려 있다"고 꼬집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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