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당장 그랜드 슬램을 달성할 사람이요? 바로 당신입니다."
세계랭킹 1위 노바크 조코비치(세르비아)는 고개를 떨궜다. 패배 직전까지 몰린 상황. 수건으로 눈물을 훔친 뒤 다시 코트에 섰지만, 경기를 뒤집기에는 이미 격차가 컸다. 1969년 로드 레이버(호주) 이후 52년 만에 찾아온 캘린더 그랜드 슬램의 기회를 놓쳤다.
하지만 조코비치는 승자의 손을 들어줬다. 눈물을 닦고, 다음 주인공으로 챔피언 다닐 메드베데프(러시아)의 이름을 외쳤다.
조코비치는 13일(한국시간) 미국 뉴욕의 빌리진 킹 내셔널 테니스 센터에서 열린 US오픈 남자 단식 결승에서 세계랭킹 2위 메드베데프에 세트스코어 0대3으로 완패했다. 앞서 올해 열린 세 차례 메이저 대회(호주오픈, 프랑스오픈, 윔블던)을 모두 석권한 조코비치의 캘린더 그랜드 슬램(한 해 열린 4대 메이저 대회 모두 석권)도 좌절됐다.
또 메이저 대회 남자 단식 최다 우승 기록도 깨지지 않았다. 로저 페더러(스위스), 라파엘 나달(스페인)과 조코비치가 20회로 동률이다.
상승세의 메드베데프를 통제하지 못했다. 조코비치는 단 한 세트도 따내지 못한 채 2시간 15분 만에 무릎을 꿇었다.
메드베데프는 1973년 ATP 랭킹이 도입된 후 세계랭킹 1위를 꺾으면서 첫 메이저 타이틀을 따낸 5번째 선수가 됐다. 특히 우승까지 단 한 세트(8강)만 내주면서 최근 30년 US오픈에서 가장 적은 세트를 내주고 우승한 선수로 기록됐다.
러시아 선수로는 2005년 호주오픈 마라트 사핀 이후 16년 만의 메이저 대회 우승이다.
조코비치의 캘린더 그랜드 슬램을 보기 위해 1962년과 1969년 캘린더 그랜드 슬램을 달성한 레이버도 관중석을 찾았다. 하지만 조코비치는 9살 어리고, 자신보다 10cm가 더 큰 메드베데프를 제압하지 못했다.
메드베데프는 "우선 팬들과 조코비치에게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면서 "누구에게도 말한 적이 없지만, 지금 말하겠다. 나에게 조코비치는 테니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라고 세계랭킹 1위를 향한 존중을 보여줬다.
조코비치도 승자를 축하했다.
조코비치는 메드베데프를 향해 "지금 당장 그랜드 슬램을 달성할 사람이 있다면 바로 당신"이라고 축하한 뒤 "비록 승리하지는 못했지만, 팬들의 응원 덕분에 기쁘다. 코트에서 특별한 감정을 느낄 수 있어 행복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