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글 싣는 순서 |
①'혁신'인가 '탐욕'인가…플랫폼, 기로에 서다 (계속) |
미국에는 '아마조나이즈드(Amazonized·아마존 당하다)'라는 말이 있다. 특정 시장에 아마존이 진출하면 고객과 이익을 아마존에 빼앗긴다고 해서 나온 신조어다. 한국에서는 '카카오 당하다'는 말이 나온다. 최근 전방위로 사업을 확장하고 있는 카카오에 대한 위기감이 반영됐다. 독점을 지향하는 플랫폼 기업의 생리상 '네이버 당하다', '쿠팡 당하다'라는 말이 나오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정부와 여당이 카카오를 비롯한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각종 규제를 쏟아내고 있다. 그 이면에는 "000 당할까" 우려하는 기존 사업자들과 입점 업체들, 소비자가 있다는 해석이 나온다. 전문가들은 "무조건적인 규제가 아닌 한국적 산업 환경에 맞는 접근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공정위·금융위·정치권 빅테크 규제 논의 '본격화'
금융위는 지난 7일 네이버파이낸셜·카카오페이 등이 금융상품을 비교해 추천하는 서비스를 하려면 금융상품 중개업자로 등록해야 한다고 발표했다. 카카오페이 등 상당수 금융 플랫폼은 계열사나 자회사 등이 취득한 자격을 우회적으로 활용해 영업활동을 해왔는데, 이를 '불법'으로 규정한 것이다. 결국 카카오페이는 자동차 보험료 비교 서비스를 중단하고 이달 24일까지만 제공하겠다고 발표했다.
여당을 중심으로 한 규제 움직임도 본격화하고 있다. 같은 날(7일) 더불어민주당 송갑석·이동주 의원 주최로 '공룡 카카오의 문어발 확장-플랫폼 대기업의 불공정거래 근절 및 대책 토론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송 의원은 "혁신과 성장의 상징이었던 카카오가 소상공인에게 높은 수수료를, 국민에게는 비싼 이용료를 청구하며 이익만 극대화하는 '탐욕과 구태'의 상징으로 전락했다"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어 "국정감사에서 카카오의 무자비한 사업확장의 문제를 강력히 지적하고, 소상공인이 체감할 수 있는 상생 방안을 모색할 것"이라고 밝혔다.
여당은 구체적인 갑질 사례도 수집하고 있다. 민주당 을지로위원회는 지난 7일부터 10일까지 물류·유통, 숙박, 법률·의료·부동산 플랫폼 업계에서의 갈등 사례를 듣는 간담회를 개최했다. 쿠팡, 야놀자, 카카오모빌리티 등이 대상이 됐는데 위원회는 간담회에서 나온 의견을 종합해 업계별 대형 플랫폼에 대한 방안을 발표하겠다는 입장이다.
각종 상황을 종합할 때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이 본격적으로 추진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플랫폼 규제 관련 법안은 8건이 있다. 이 중 하나가 지난 1월 공정거래위원회가 정부 입법으로 발의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이다.
△플랫폼 특성을 고려한 불공정 거래 행위 금지 조항을 신설하고 △영세 입점 업체가 신속한 피해 구제를 받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는 것이 골자다. 이 법안은 지난해 12월 전혜숙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발의한 온라인플랫폼 법안과 주무부처가 겹치면서 9개월간 공전 상태였다. 전 의원 법안이 방송통신위원회를 주무부처로 삼으면서 권한 다툼이 이어졌기 때문이다.
불공정 행위 '도마'…문어발 확장에 "골목상권 침해"
당국이 처음부터 플랫폼 기업에 '규제' 카드를 내민 것은 아니었다. 금융위만 보더라도 네이버·카카오·토스 등의 금융 진출을 적극 유도했다. 하지만 플랫폼 사업자들의 덩치가 커지면서 시장 곳곳에서 '갈등'이 벌어지고 있다. 결국 당국의 태도 변화에는 이러한 상황을 좌시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숙박업계에서는 지배적 영향력을 행사하는 '야놀자'와 '여기어때' 등이 광고와 쿠폰 등을 통해 업주들을 '종속화'한다는 목소리가 크다.
애초 더 많은 영업 기회 등을 노리고 플랫폼에 입점했지만, 이제는 플랫폼에서 나가면 '영업이 불가능해지는' 상황이 왔다. 이 과정에서 마진율이나 영업 자율성 등은 되레 떨어지고 있다는 게 업주들의 주장이다.
대한숙박업중앙회 정경재 회장은 지난달 23일 열린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법 처리 촉구 기자회견에서 "숙박플랫폼들은 경쟁사보다 유리한 조건으로 최저가를 내세우기 위해 온갖 방법으로 반값 할인을 요구하고 있다"며 "공실을 의뢰한 숙박업소에서는 이들의 요구를 거부하지 못하고 최저가로 팔게 되는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서울에서 모텔을 운영하는 한 업주는 "숙박 플랫폼에 광고비를 내면 할인쿠폰을 받는데 정작 업주가 원하는 시점에 뿌릴 수가 없다. 원래는 단골들에게 뿌렸어야 하는 쿠폰을 자기들 마음대로 휘두른다"며 "심지어 소진하지 못한 쿠폰은 그냥 사라진다. 환불이나 캐시백도 없다"고 밝혔다.
유통업계에서는 알고리즘 문제가 불거졌다. 쿠팡은 자체브랜드(PB) 상품이 입점업체 상품보다 우선 노출되도록 검색 알고리즘을 조작한 혐의로 7월부터 공정위 조사를 받고 있다. 그보다 앞서 네이버는 검색 알고리즘을 바꿔 스마트스토어 상품과 콘텐츠를 최상단에 노출한 혐의로 267억 원의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플랫폼 기업이 경기장을 보수, 유지, 관리하는 것을 넘어 선수로 뛰면서 게임의 룰(알고리즘)을 왜곡하고 있는 사례들이 드러나고 있는 것이다.
플랫폼 기업이 금융, 엔터, 모빌리티 등 각 분야로 영역을 넓히는 문어발 확장도 도마 위에 올랐다. 택시호출 시장 80%를 점유하고 있는 카카오모빌리티는 최근 대리운전 전화콜 1위 업체 '1577 대리운전'을 인수하고 대리운전 시장에 발을 들였다. 그러자 중소사업자들은 "골목상권 침해"라며 반발하고 있다.
이용자들의 인식도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수수료가 오르면, 자영업자나 입점업체들이 요금을 올리게 되고 결국 물가 상승으로 이어진다는 인식에서다. 카카오모빌리티는 이용자들을 대상으로 좀 더 빠르게 배차받을 수 있는 '스마트 호출' 서비스 요금을 기존 1천 원에서 최대 5천 원까지 올렸다가 "사실상 택시비를 올린다"는 거센 비판이 일자 철회했다.
'정책적 특이점' 도래…"산업 이해·방향 설정 중요해"
플랫폼 기업에 대한 규제 흐름은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다. 지난 6월 미국 하원에서는 플랫폼독점종식법 등 온라인 플랫폼 기업을 규제하기 위한 4개 법안이 발의되기도 했다. 현지 언론들은 해당 법안이 통과될 경우 아마존과 애플은 자체 브랜드 판매 플랫폼을 분리하거나 자체 제작 브랜드 판매 사업을 정리해야 할 수도 있다고 전망하고 있다.
EU는 지난해 12월 디지털시장법(DMA)과 디지털서비스법(DSA)의 초안을 발표했다. DMA는 사후규제에 대한 한계를 인식하고 플랫폼 기업의 경쟁제한 및 불공정 행위에 대한 '사전규제'를 강화하는 데 목적이 있다. 플랫폼 기업이 알고리즘으로 자사 서비스를 우대하는 것을 금지한다.
서울대 경영학과 유병준 교수는 "미국과 EU를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플랫폼 기업에 대해 돌아보는 시점이 된 것 같다"며 "플랫폼의 장점도 있지만 어떻게 보면 플랫폼이 너무 확장되다 보니 각종 우려가 나올 수는 있는 시점이었다"고 집었다.
한양대 경영학부 신민수 교수는 "과거에는 플랫폼 기업을 육성하자는 분위기였는데 지금은 옛날 통신사업자 사례처럼 자연 독점의 효과가 떨어지고 있고, 소비자 효용이 감소하고 있다는 분위기가 강한 것 같다"고 봤다.
다만 이들은 무조건적인 '규제'가 능사가 아니라며 정책적 지향점을 제대로 잡고 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한국의 산업 상황이 미국·EU와 다르고, 자칫 섣부른 규제가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는 이유에서다.
유 교수는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필요하다"며 "서비스라는 것이 원래 침투를 하고 나면 수익을 낼 수밖에 없다. 요금을 올리고 수익을 올리는 것 자체를 나쁘게 볼 수는 없다. 어떻게 경쟁을 통해 가격을 조절할 것인가라는 시장적인 접근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EU는 자국 소속의 강력한 플랫폼 기업이 없었고, 미국은 페이스북이나 구글 같은 거대 플랫폼이 작은 플랫폼이 아예 경쟁할 수 없도록 경쟁 왜곡을 하니까 규제에 들어간 것"이라며 "중간격인 우리나라는 어느 수준에서 플랫폼 정책을 펼칠 것인지 방향을 결정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현재는 우리나라 플랫폼 산업이 어디로 갈 것인가라는 질문이 빠져있다"라며 "이를 위한 충분한 토론과 사회적 합의점을 만들어가는 것도 필요하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