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B컷]22년만의 '골프장 강간살인' 선고…관건은 '공소시효'

99년 7월 차량 착각한 피해자 골프장으로 끌고 가 성폭행
17년 만에 DNA로 '덜미'…범인은 '무기징역' 연쇄 살인범
'살인'이면 시효 남고 '치사'면 시효 만료…쟁점은 '고의성'
끝까지 혐의 부인하는 피고인…일각선 "가석방 노리는 듯"
검사 "피해자 넋 위로" 피고인 사형 구형…17일 1심 선고

21.9.1 서울중앙지법 성폭력처벌법 강간등살인' A씨 공판
검사 "부검 감정서나 의무 기록 살펴보면 피해자는 단순히 우발적 폭행에 의해 사망한 것이 아닌 구체적이고 강력한 치명적인 부위의 폭행으로 인해 살해를 당한 것입니다. 이것은 과실이 있는 범행이 아닌 강간 과정에서 이에 저항하는 피해자에게 화풀이 내지는 살해 고의가 명확히 드러나는 행동이라 할 수 있습니다. DNA에서 피고인의 성관계 행위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이 사건으로 인해 피해자는 젊은 나이에 생명을 잃었고 장기간 미제 사건으로 남아 있다가 뒤늦게나마 과학수사로 피고인을 법정에 세울 수 있게 되었습니다. 피해자의 넋을 위로하고 피고인에게 엄한 처벌을 할 필요가 있음으로 피고인에게 사형을 선고해주시길 바랍니다"
스마트이미지 제공
지난 3월 [법정B컷]으로 소개해 드렸던 22년 전 벌어진 골프장 '강간살인' 사건 기억하시나요? 이후 약 10차례의 재판이 이어지고 수많은 증인신문이 진행된 끝에 지난 1일 검사와 피고인 측의 최후변론과 함께 모든 1심 변론 절차가 마무리됐습니다. 검사는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선고해달라고 요청했고 이제 남은 건 재판부의 판결 뿐입니다. 시간이 꽤 오래 지난 만큼 이 사건이 어떤 사건이었는지에 대해 짧게 설명부터 해보겠습니다.

(관련기사: [법정B컷]22년 전 현장에 남은 DNA…골프장 강간살인범 붙잡다)

1999년 7월 6일 새벽 1시 무렵 목격자의 신고로 서울 강남구 대치동의 한 골프 연습장에서 당시 20살이었던 여성이 의식을 잃은 채 발견됩니다. 하의와 속옷이 벗겨져 있는 점에서 성폭력의 흔적은 명확했고 이에 더해 머리를 포함한 온몸이 피투성이였던 점에서 잔인한 폭행이 있었다는 점도 분명해 보였습니다.

곧바로 수사에 나선 경찰은 피해자가 밤늦게 차를 기다리고 있다가 외관이 같은 흰색 차에 실수로 타게 됐고 운전자와 같이 탄 일행이 피해자를 인적이 드문 골프 연습장으로 끌고 가 범행에 이르렀다는 결론을 냅니다. 하지만 범인은 좀처럼 잡히지 않았습니다. 겁에 질린 목격자는 범인의 정확한 인상착의를 못 봤고 당시는 CCTV가 보편화가 안 돼있던 때였습니다. 결국 의식을 찾지 못한 피해자는 나흘 만에 숨을 거뒀고 잔혹한 범행을 저지른 범인은 영영 잡히지 않을 줄만 알았습니다.

하지만 17년의 세월이 흘러 미궁에 빠진 사건을 풀 단서가 발견됩니다. 'DNA'입니다. 피해자 신체에서 채취한 범인의 DNA가 별도 연쇄 강도살인 범행으로 교도소에서 복역하던 A씨와 일치하는 결과가 2016년 12월 나오게 된 겁니다. 이에 다시 경찰 수사가 재개됐고 검찰의 보완 수사를 거친 끝에 2020년 11월 A씨는 성폭력처벌법상 강간등살인 혐의로 22년 만에 피고인이 돼 재판에 서게 됩니다.

보시다시피 수사 과정은 결코 녹록치 않았는데요. 특히 DNA라는 움직일 수 없는 '물증'에도 A씨가 살인의 혐의를 좀처럼 인정하지 않으며 피의자를 특정한 후에도 기소까지 오랜 시간이 걸렸습니다. 이에 A씨 주장을 탄핵하기 위해 더 많은 증거들이 수사 과정에서 수집되며 A씨가 재판에서 무죄 주장을 뒷받침할 정황은 많지 않은 상황. 이제 사실상의 마지막 남은 관문은 하나. 바로 '공소시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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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내용을 읽다가 의문이 든 분이 계실 겁니다. '1999년에 발생한 사건인데 20년이나 지난 지금 처벌이 가능하지?' 실제로 이 사건이 재판까지 오게 된 것은 매우 극적인데요. 사건 당시 법 기준으로 이 사건 시효는 성폭력처벌법 상 강간등살인죄가 적용될 사건으로 본다면 15년(만료시점 2014년) 살인의 고의가 떨어지는 강간치사죄로 본다면 10년(2009년)입니다. 어느 쪽으로도 현재 기준으로서는 시효가 끝난 것이죠.

하지만 법이 계속 바뀌며 진범만 잡는다면 처벌 가능성이 생기게 됐는데요. 2010년 성폭력 범죄에 대해 유전자 등 죄를 증명할 과학적인 증거가 있는 때에는 공소시효가 10년 연장된다는 규정이 신설됩니다. 그리고 2015년 7월 31일에 이 시점까지 시효가 만료되지 않은 사건을 포함해 '살인 범죄'에 대해 시효를 폐지하는 이른바 '태완이법'이 실시됐습니다.

결국 이 사건을 성폭행이 병행된 '살인'으로 본다면 두 차례의 법 개정을 거친 끝에 처벌이 가능합니다. 반면 성폭행은 했지만 살인의 고의가 없는 상황에서 결과적으로 피해자가 사망했다는 '치사'가 된다면 실체적 진실 발견 여부와 무관하게 법적인 처벌은 불가능하게 되는 거죠. 정리하면 살인의 고의성 여부가 피고인을 처벌할 수 있을지 여부의 관건인 셈입니다.

21.9.1 서울중앙지법 성폭력처벌법 강간등살인' A씨 공판
재판장 "요약하면 살인의 고의가 있는 경우 시효가 완성이 안 되고 치사가 되거나 기타 다른 죄가 성립하는 경우 시효가 완성이 된다는 것이죠?
 
검사 "그렇습니다"
 
재판장 "살인이냐 치사냐 이 부분이 핵심 쟁점 중 하나인데 이 부분 최종 검토해서 피고인에게 살해의 고의가 있었는지 여부에 대해 검사와 변호인은 여러 경우의 수를 상정해서 한번 의견서를 내주십시오"

재판부도 검찰과 피고인 양 측에 이에 대한 의견을 선고 전까지 제출을 요구하는 등 '살인의 고의'가 이 재판의 쟁점이 되고 있는 점은 명확합니다. 반면 A씨는 수사에 이어 재판에서도 여전히 살인의 고의를 떠나 성폭행 자체도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죄가 확정되지 않은 '피고인' 신분이니 원칙적으로는 어떤 주장도 가능하겠지만 수집된 증거와 각종 정황에 비춰본다면 납득이 어려운 주장으로 보입니다. 살펴보겠습니다.


그는 피해 여성과 성관계를 합의 하에 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를 부검한 당시 의사의 증언 등에 비춰보면 피해자의 신체에는 강압의 흔적이 명확히 남아있습니다. 당시 상황을 어렴풋하게 목격했던 증인은 사건 당시 피해 여성이 범행으로 인한 것으로 추정되는 비명을 계속 질렀다고 진술하고 있습니다. 피해자가 사건 당시 자신이 기다리던 차가 아닌 다른 차에 잘못 올라탔다는 전화를 지인에게 했던 점 또한, 수사 결과 드러났습니다. 모두 강제로 이뤄진 모두 합의된 성관계의 가능성을 일축하는 증거 및 정황들입니다.  

A씨는 그가 아닌 그의 형이 범행을 저질렀다고는 주장도 하고 있는데요. 정작 그의 형은 사건이 발생한 시점 무렵에 강원도 여행을 가있던 점이 재수사 과정에서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모종의 이유로 사망했는데요. 이미 죽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형에게 주된 책임을 떠넘기려 했다는 게 경찰과 검찰의 시각입니다. 실제로 이 사건 재판에서는 죽은 형의 지인이 증인으로 나와 당시 강원도 여행을 갔었다는 취지로 진술하기도 했습니다.

2003.1 수원지법 '강도살인' 혐의 A씨 1심 판결 中
미리 준비한 청테이프로 손과 발을 묶어 항거불능케 하고 피해자의 바지 뒷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어 그 안에 있던 현금 10만 원, 신용카드를 빼앗아 이를 강제로 취했다. 계속하여 피해자에게 "비밀번호를 말하라"고 요구하며 무릎으로 피해자의 가슴과 목 부위를 누른 상태에서 주먹으로 배 부위를 수회 때리기도 했다. (중략) 피해자로부터 신용카드 비밀번호를 알아내려 했지만 실패한 후 수사기관에 대한 신고를 지연하기 위해 청테이프로 피해자의 손과 발 외에 입과 눈을 막고 몸통을 묶어 피해자는 그 무렵 현장에서 경부압박으로 인한 질식으로 사망하여 피해자를 살해했다

이 사건 이후에도 A씨가 성범죄만 아니었을 뿐 같은 지역에서 비슷한 범행을 일삼은 점도 고려할 부분입니다. 그는 2001년 8월부터 2002년 6월까지 강남구 일대에서 5건의 특수절도, 8건의 강도상해 그리고 2건의 강도 살인을 이어가다 경찰에 붙잡혔는데요. 당시 범행도 1999년 사건과 비슷하게 차를 공범과 몰고 다니며 취객 등을 차에 태운 뒤 인적이 드문 곳으로 끌고 가 폭행한 뒤 청테이프 등으로 입과 코를 막아 살해하는 식이었습니다.

그럼에도 A씨는 선고 전 마지막 재판에서까지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쉽게 납득이 가지 않는 주장들을 이어가는 이유를 이 사건 수사에 깊게 관여한 한 관계자는 그가 가석방을 기대하고 있기 때문인 것 같다고 설명했습니다. 2002년에 구속된 A씨는 무기징역을 선고받기는 했지만 교정시설에서 모범생활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이제 수감 기한에 따라 가석방 심사 대상자를 눈앞에 두고 있는데 이 사건에서 유죄를 받으면 모든 계획이 물거품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것이죠.

21.9.1 서울중앙지법 성폭력처벌법 강간등살인' A씨 공판
A씨 "지금은 무기징역을 받아 살고 있지만 그 당시에는 범죄를 한 적이 없습니다. 검사님이 공소장을 보냈는데 그 내용을 읽어보니 사실과 다릅니다. 저는 피해자분을 다치게 한 적도 살해한 적도 없습니다. 네 분 검사님이 바뀌면서 자백 만을 원했었는데 계속 법정에 세워달라고 했습니다."


과거의 일에 대해 현재 시점에서 실체적 진실이 어떠한 형태라고 100% 단언하기는 어렵습니다. 하지만 지금 나열한 정황들을 생각해볼 때 A씨의 주장이 "뻔뻔하다"는 생각이 드는 것은 이 재판을 지켜본 기자만의 생각은 아닐 것 같습니다.

영원히 알 수 없을 것 같던 사건의 진상. 17년의 시간 만에 'DNA'에서 사건을 풀 실마리가 나왔고 이제 남은 건 법원의 판단입니다. 살인의 고의성과 연결되는 '공소시효'가 법적 진실에 도달하는 데 남은 마지막 관문인 상황. 검사는 법정 최고형인 사형을 구형한 가운데 오는 17일 재판부가 어떤 판단을 내릴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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