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9일 정권수립 73주년을 맞아 개최한 심야 열병식은 과거 열병식과 비교되는 이색적인 형식과 내용으로 개최됐다.
지난 10월 10일 당 창건 75주년 기념일과 올해 1월 14일 8차 당 대회에서 열린 심야 열병식과 달리 국가 방위력을 과시할 수 있는 첨단 무기는 일체 등장하지 않았다.
대륙간탄도미사일(ICBM)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등 전략무기는 물론 중거리 탄도미사일 등 신형 전술무기도 찾기 어려웠다.
대신 소방차와 트랙터 등 민간의 생활 장비가 등장했다.
방사포 실은 트랙터, 주황색 방역복장의 코로나 부대 등장
농기계인 트랙터에 122㎜ 방사포와 대전차 미사일을 실은 모습이 다소 어색한 조합으로 보이기도 했는데, 북한은 이를 "유사 시 침략자와 그 졸개들의 머리 위에 섬멸의 불벼락을 들씌울 멸적의 포 무기들을 실은 뜨락또르"라고 설명하기도 했다.열병식에 참여한 모든 사람들이 마스크를 쓰지 않은 가운데 주황색 방역복장에 방독면까지 쓴 채 등장한 코로나19 방역부대가 눈길을 끌었고, 군견 수색부대와 말을 타고 행진에 참석한 사회안전군 특별기동대도 시선을 모았다.
'민간 및 안전무력열병식' 으로 호칭, 과거 열병식과 차별화
북한은 이번 열병식을 '민간 및 안전무력열병식'이라고 불렀다. 핵심은 '민간'에 있는 것으로 보인다.북한의 지방 단위, 기업소, 협동농장, 대학 등 각계각층에 조직되어 있는 570만 명의 노동적위군, 즉 민간 예비군을 동원했다. 우리 경찰에 해당하는 '사회안전무력'도 참여했다.
북한이 이번 열병식에서 정규군의 각종 첨단무기가 아니라 민간 단위의 무장력을 선보인 것은 여러 의도가 있는 것으로 보인다.
우선 국가방위력 자체의 과시 보다는 민간에 광범위하게 조직되어 있는 예비군 조직을 동원함으로써 내부 단결과 체제 결속을 꾀한 것으로 풀이된다.
민간 열병식과 경축 야회 등 축제분위기로 인민 사기진작
북한의 정권 수립일을 맞아 열병식과 경축야회 등을 통해 축제 분위기를 띄움으로서, 코로나19와 대북제재 등 3중고로 지친 인민들의 마음을 모으고 사기를 진작시킨 것이다.김영수 서강대 교수는 "정규군에 비해 보조역량으로 평가받던 민간 및 안전 무력의 존재감과 자긍심 고취에 이번 열병식은 톡톡한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여건도 좋지 않아 과거 심야 열병식처럼 규모를 키울 수도 없는 상황에서 가성비가 높은 선택을 함 셈"이라고 평가했다.
내부 단결의 키워드는 '우리국가제일주의'
내부 단결의 핵심 키워드는 역시 김정은 위원장이 문을 열었다는 '우리국가제일주의'이다.이일환 당 비서는 연설에서 "어제 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현 난국을 타개하고 사회주의건설의 새로운 고조기, 격변기를 열어나갈 것"이라며, "김정은 동지의 영도 따라 고귀한 투쟁으로 지켜내고 떨쳐온 우리 식 사회주의를 끝없이 빛 내이며 우리 국가제일주의기치아래 모두가 굳게 단결하여 공화국의 무궁한 번영을 위해 힘차게 싸워나가자"고 호소하기도 했다.
아울러 각계각층의 예비군들을 열병식으로 동원함으로써 각각의 일터에서 5개년 경제계획의 수행에서 더욱 분발할 수 있도록 독려한 측면도 있는 것으로 보인다.
민간 동원으로 5개년 경제계획 수행 분발 독려 의도도 엿보여
임을출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노농적위군은 수백 만 명에 달하는 북한의 광범위한 민간 예비 무장력이지만 평시에는 경제건설의 핵심역량"이라면서, "내부 노력자원을 총동원하는 기폭제로 이번 열병식을 활용하는 의도가 있다"고 분석했다.리일환 당 비서가 이날 연설에서 "우리 국가와 인민은 어제 날과 마찬가지로 앞으로도 일심단결의 위력으로 현 난국을 타개"할 것이며 "공화국 정부는 자력자강의 원칙에서 모든 것을 우리 힘으로, 우리 식대로 해결해나갈 것"이라고 강조한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된다.
체중 감량으로 예전보다 훨씬 생기있는 모습으로 등장한 김정은 위원장은 과거와 달리 이번 열병식에서 직접 연설을 하지 않았다. 일심단결의 중심으로 열병식 주석단에 서면서도 구체적인 대외 메시지를 발신하지 않은 것이다. 북한은 또 '민간 및 안전무력열병식'이라는 호칭에 걸맞게 각종 첨단 전략·전술무기를 일체 배제했다.
대외 군사메시지 배제가 대외 메시지라는 평가도 나와
그러나 이 자체가 대외적인 군사 메시지라는 평가도 있다.북한이 영변 원자로 가동에 이어 이번 열병식에서 과연 무엇을 들고 나올까 하는 우려가 제기되는 상황에서 김 위원장의 연설을 생략하고 내부 단결에 초점을 맞춘 민간 열병식을 부각시킨 것은 결국 외부를 향한 메시지의 수위 조절로 보이기 때문이다.
김형석 대진대 교수는 "북한은 지난해 10월과 올 1월 열병식에서 대륙간탄도미사일과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 등 자체 개발한 전력무기를 이미 선보였고, 그 다음 단계가 우려되는 상황에서 민간 열병식을 선택함으로써 대외적인 상황관리를 한 셈"이라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