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의힘이 결국 경선에 역선택 방지조항을 도입하지 않기로 결론내렸다. 대신 100% 여론조사로 정해질 예정이던 1차 컷오프에 20% 책임당원 투표를 반영하고, 최종 경선에서 '본선경쟁력'을 측정하기로 했다. 윤석열 전 검찰총장이 홀로 주장하던 역선택 방지조항이 사실상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선관위는 지난 5일 오후 4시부터 오후 11시까지 약 7시간에 걸친 마라톤 회의 끝에 이같은 결론을 내렸다. 정홍원 위원장은 "1차 경선에서는 당원 의사가 조금 더 들어가야 한다는 생각에 20%의 당원 투표를 반영하고, 최종후보는 당헌당규에 따라 여론조사 50%와 당원 50% 비율을 유지하되, 여론조사에서 본선경쟁력을 측정해 득점한 비율대로 점수를 반영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 위원장은 "지금까지는 역선택을 놓고 안을 만들다 보니 찬반이 자꾸 엇갈렸다"며 "발상의 전환을 해서 '후보의 본선 경쟁력이 얼마나 있느냐'는 시각에서 논의를 진행해 만장일치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다. 지난 3일에 이어 이날 회의에서도 역선택을 놓고 위원들간 입장이 첨예하게 엇갈렸던 것으로 전해졌는데, 역선택 방지조항을 배제하고 논의해보니 결론에 도달했다는 설명이다.
정 위원장은 역선택 논란을 피하는 '발상의 전환'으로 얻은 결과라며 "뿌듯하다"는 소감을 밝혔다. 일종의 절충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역선택' 때문이 아니라 '당원의 의사'를 존중하기 위함으로 이유만 바뀌었을 뿐, 국민의힘 전통 보수층의 답변 비율을 높이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는 본질적으로 같다. 이미 일부 후보 캠프에서는 역선택이라는 표현이 제거됐을 뿐 윤 전 검찰총장에게 유리한 결론이라고 보고 있다.
윤 전 총장은 국민의힘 전통 지지층에서 높은 지지를 받고 있기에 역선택 방지조항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취해왔다. 역선택 방지조항으로 '가짜 지지자'를 걸러낼 수 있다면 더 많은 득표를 얻을 수 있다는 게 캠프 측 주장이었다. 이날 선관위 결론으로 1차 컷오프에서 이들의 목소리가 반영될 기회가 생긴 셈이다.
만약 기존 안대로 여론조사 100%로 컷오프가 이뤄질 경우, 최근 홍준표 의원의 상승세가 가파른 상황에서 줄곧 1위 자리를 지켜왔던 윤 전 총장이 2위와의 격차를 유지하지 못하거나 아예 순위를 빼앗길 가능성이 높아진다. 홍 의원측 관계자는 "만약 1차 컷오프에서 홍준표 의원이 1등을 하면 그 기세가 계속 이어지는 밴드왜건 효과가 발생할 것"이라며 "윤 전 총장 측이 가장 겁내는 부분이 아니겠느냐"고 말했다.
실제로 홍 의원이 순위가 곧 뒤바뀔 것이라 언급했던 '골든크로스'가 여론조사 결과 나타나기도 했다. 경기신문이 알앤써치에 의뢰해 이날 공개한 여론조사(지난 3일~4일 전국 만 18세 이상 1017명에게 실시. 표본오차는 95% 신뢰수준에서 ±3.1%) 결과에 따르면, 국민의힘 대선후보 적합도를 묻는 질문에 홍준표 의원을 지지한다는 응답은 32.5%로 윤 전 총장의 29.1%보다 높았다.
국민의힘 관계자는 "윤 전 총장 측이 1등 주자이면서도 역선택 조항에 홀로 집착한 이유는 1차 컷오프부터 '압도적 승리'의 필요가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며 "이준석 당 대표가 선출되는 과정을 보면서 '밴드왜건 효과'나 승리 가능성이 높은 후보에게 표를 준다는 '전략적 투표' 분위기가 얼마나 무서운 지를 학습한 것 같다"고 말했다.
'외관상' 역선택 방지조항 자체는 도입되지 않았고, 당원 반영 비율도 20% 정도인 상황에서 선관위와 후보들 사이의 갈등은 한고비를 넘긴 모양새다. 앞장서 정 선관위원장의 중립성을 비판해왔던 유승민 전 의원, 하태경 의원은 선관위 결정 이후 "수용하겠다"는 입장을 밝혔다. 홍 의원 측도 비슷한 스탠스를 취할 것으로 예상된다.
앞서 선관위 회의 직전까지 국민의힘 내부 갈등은 최고조에 이르렀었다. 정 선관위원장은 사의를 표명했다가 이 대표의 만류로 사퇴 의사를 접었다. 회의 전 공정경선 서약식에는 경선 후보 네 명이 시위성 불참을 했다.
당장의 갈등은 봉합됐지만 여론조사의 디테일을 정하는 과정에서 각 후보별 유불리에 따라 새로운 갈등이 곧바로 일어나도 어색하지 않은 상황이다. 국민의힘 한 중진 의원은 "역선택 갈등은 이렇게 간신히 마무리된다고 쳐도, 설문조사 방식, 질문 문항 등 갈등의 여지는 충분히 많이 남아있다"고 말했다.